밀입국 동포 ‘딱 한번만 더 구제 해주자’ 호소
2002년 1월초엔 노무현 새정부 <국민정책참여센터>에
‘불법체류 동포 구제방안’ 정책 건의서 제출…현실로 이루어져
연변의 대표 브랜드(상표)로 통하는 ‘풍무뀀성’을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케 한 국옥현 한국분점 대표(사진)와 인터뷰를 가졌다.
국 대표는 전남 광주출신의 한국인으로 연변의 풍무뀀성 대표의 여동생과 결혼한 사이로 일명 ‘연변 사위’로 통한다.
연변 풍무뀀성은 본점이 중국 연길시 단결로에 위치해 있으며 1500평방미터 크기에 종업원이 105명이 근무하는 대형식당이다. 연길시에만 6개의 분점이 있다. 연길시내에서만 풍무뀀성에 근무하는 종업원이 500여명이 넘는다. 연변의 대표적인 기업형 식당이라 말할 수 있다. 연길뿐만 아니라 2003년 11월엔 용정 1분점을 시작으로 안도시, 화룡시, 매하구시, 왕청현, 도문시, 산동성 청도시, 길림성 장춘시 등 중국대륙 곳곳으로 진출하고 있다.
한국분점이 들어선 것은 2001년 4월, 서울 구로구 대림역 1번출구 가에 지하식당으로 시작되었다.
기자는 그때부터 그곳을 즐겨 찾았었다. 언제나 가면 연변에서 온 동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만남의 장소였고, 당시 기자는 중국동포를 처음 접한 때라 기회의 장소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동포들이 대부분 불법체류 상태였기 때문에 편안한 장소가 아니면 대화하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였다. 결국 중국동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국옥현 대표와 같은 제3자를 만나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써 국옥현 대표만큼 중국동포와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이도 드물 것이다. 기자를 만나면 항상 중국동포들이 현재 갖고 있는 애로사항을 들려준다. 밀입국으로 들어와 고생하는 중국동포 이야기며, 중국 현지에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허위 초청 내지 위장결혼을 알선해 돈을 벌려는 브로커들의 행태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심각한 지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타향의 봄’을 부른 연변의 대표 가수인 김성삼 씨의 사망소식을 기자를 통해 한국에 처음 알려준 이도 국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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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국옥현 대표를 정식으로 만나 인사치레를 하게 된 때는 2002년 1월초이다. 당시 노무현 새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는 서울중심가 광화문에 <국민정책참여센터>를 설치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새정부에 새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었다. 그때 국옥현 대표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중국동포 정책 관련 제안서를 작성해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취재 중이던 기자가 그 사실을 알고 정식으로 국옥현 대표를 만나 중국동포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국 대표가 작성한 제안서 내용은 “지금의 동포정책 이대로는 안된다. 중국동포들이 고국에 와서 불법체류하며 생활을 하지만, 한국사회에 와서 힘든 일을 하고 숙련공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다. 정부는 불법체류 하고 있는 중국동포를 강제추방하고 나가라고 하고, 필요한 인력 수요 때문에 1년씩 연장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지금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면 안 나간다. 재입국을 보장해주는 출국 정책을 펼쳐 불법체류 동포들을 구제해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 대표는 300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고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국민정책참여센터에 제출했다.
그때 제출한 제안이 받아들여졌는지, 노무현 정부는 2005년, 2006년 두 번에 걸쳐 동포귀국지원정책을 펼쳐, 불법체류 상태에 있던 8만여 중국동포들이 구제를 받고 지금은 방문취업체류자격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국옥현 대표는 이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안타깝고 아쉬운 점이 있다. 밀입국자로 들어온 동포들 문제이다. 현재는 밀입국으로 한국에 오는 동포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밀입국해 들어온 동포들이 적지 않았다. 국 대표는 밀입국으로 들어와 생활하는 동포들의 현재 상황을 사례를 통해 들려주었다.
첫 번째 사례, 98년 에스파니아 선박 선원으로 취업해 선원증으로 한국에 들어와 머물게 된 동포이다. 이것 역시 정식 한국여권을 갖고 출입국사무소를 거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밀입국자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국적 동포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다. 그러나 밀입국자이기 때문에 결혼신고를 못하고 사실혼 관계에서 동거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 밀입국으로 들어와 건설현장을 돌며 일해온 동포이다. 그는 청춘을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은 건설현장에서 반장급으로 일하며 회수 못하고 깔려 있는 돈이 3억원 정도, 최근 건설 불황으로 그 돈을 당장 거둬들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돈을 줘야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적 약점을 이용해 신고하여 추방시키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신고 당해 강제추방 당하면 3억원이라는 돈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된다.
세 번째 사례, 온 가족이 한국국적자로 한국에서 생활을 하지만 홀로 밀입국자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에 가면 부모 형제 아무도 없다.
국옥현 대표는 “내가 만난 대부분의 밀입국자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고 막가파식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며 “밀입국자에 대한 구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빗대어 이런 주장도 펼친다. “북한의 남파 간첩인 경우, 예전에 홍보문구에도 ‘자수하여 광명찾자’ 라는 말이 있어 한국사회를 전복시키려 들어온 간첩이 자수할 경우 포상도 해주지 않았냐”며 “중국동포들이 밀입국으로 들어왔지만 한국사회에 인력으로 기여한 자들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국 대표는 올해에는 밀입국 동포들의 구제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관심을 쏟겠다고 말한다. ‘연변사위’로 통하는 국옥현 대표의 심정을 담은 이야기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분점은 지난 1월 8일 대림동에 제 3 분점을 내었다. 중국에서 한국에 정식으로 진출한 중국 식당으로서 제일 큰 규모로 성장해 가고 있다. 국 대표는 한국음식업협회 구로지회 감사를 맡고도 있다. 그는 올해 4월경 치러지는 구로지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도 내비쳤다. 그 이유는 구로구내에 중국식당이 많은데, 여기에 관심을 갖고 중국식당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국옥현 대표의 연변동포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때는 연변에서 자녀를 두고 한국에 온 동포들의 동영상을 찍어 연변의 한 학교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어 부모와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고 장학금을 몇 해 동안 지원해주기기도 하였다.
<인터뷰=김용필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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