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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균-방송예술에 몰부은 심혈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5월7일 08시31분    조회:8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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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 리창균연출의 실적

국가1급연출인 리창균씨는1982년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에 발을 들여놓아서부터 지금까지 성우,연출,업무단장 등 직무를 맡고 연변조선말라지오텔레비죤방송문예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 공로자의 한사람이다.

타고난 예술기질

1953년 연길시에서 태여난 리창균씨는 어린시절에 벌써 예술과 관계되는 모든것에 대해 다 흥취를 갖고있는  열혈소년이였다.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것은 영화였는데 식구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다녀와도 자기의 생각이며 분석까지 보태가면서 금방 본 내용을 생동하게 구술하여 영화를 다시 보는듯한 감각을 안겨주군 했다.

집집의 생활형편이 그닥 넉넉치 못하던 그시절에는 한번에 10전씩밖에 들지 않는 영화관람도 실컷 시켜줄수 있는 가정이 얼마 안되였다.그래서 때론 부모님들과 통사정을 해가면서 영화관에 드나들었고 무릇 공짜로 영화를 볼수 있는 장소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당시 리창균씨의 집은 연변대학부근에 있었는데 한달에 한번꼴로 연변대학체육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영화상영이 있었다. 그때마다 평소에 얌전하고 고지식하기만 하던 리창균씨는 창문을 뛰여넘으면서라도 외래인의 입장이 단속되여있는 체육관안에 들어가 기어코 영화를 관람하고야 말았다.

무용에도 소질이 있는 그는 연길시2중에 진학한후 학교선전대에 들어가 무용종목에 출연하기도 하고 공연안내를 맡기도 했으며 1970년 2월 화룡현 덕화공사 룡연대대에 하향을 해서는 이튿날로 공사에 불리워가 문예선전대를 조직할 임무를 맡았다.이렇게 농사일을 하루도 해보지 못하고 문예종목 창작과 련습에 몰두하게 된 그는 그해 8월 현문예콩클에 참가하고나서 화룡현문공단에 무용배우로 취직할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전문문예단체의 무용배우생활을 시작한 그는 《홍색랑자군》에서는 홍상청역을,《첫발자국》에서는 군의역을 맡으면서 주역으로 활약했고 무용극본창작도 제법 해내면서 예술기량을 부지런히 쌓아갔다.

1978년,길림시조선족문화관에 전근해서 문예창작을 맡은 그는 길림시조선족예술단 설립을 위한 준비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전직창작원으로서 주로 극본과 가극창작에 전력하였고 본인이 창작한 가극 《심청전》에서 심봉사의 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1982년,고향 연길에 텔레비죤방송국이 일떠서고 멀지 않아 자체의 TV극을 제작하게 된다는 희소식이 전해왔다.어려서부터 영화에 집착해오고 언제든지 자기의 힘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는것이 꿈이였던 리창균씨에게 있어서 이것은 오매불망 그려오던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칠수 없다고 생각한 리창균씨는 무작정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에 찾아왔다.자아소개를 하고나서 방송극과 텔레비죤극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낯모를 젊은이를 두고 강태억감독은 그 용기에 탄복해서인지 아니면 그 실력이 궁금해서인지 실기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아가 청아…》하며 가극 《심청전》의 한대목을 선보인것이 결국 그의 라지오텔비죤문예생애와 이어졌고 그때로부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박차를 가하게 되였다.

라지오텔레비죤문예의 활무대에서

고향에 돌아와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의 성우로 된 리창균씨는 끓어넘치는 열정으로 방송극의 출연과 배음에 참가함과 동시에 극본창작,연출 등 실무를 꾸준히 연찬하였고 3년이 지난 1985년부터는 업무단장 겸 연출직책을 떠메고 방송극 및 텔레비죤극 배음 제작에서 한몫 감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변지구는 텔레비죤이 금방 보급되던 시기여서 자체의 TV극은 어쩌다 한번씩 제작하고 대부분은 한어말작품을 역제방송하는 실정이였다.이에 그는 동료들과 손잡고 방송극에만 익숙했던 성우들의 기질을  텔레비죤극의 배음기교에 적응시키고저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그 보람으로 조선말로 번역제작된 텔레비죤련속극 《갈망》,《오신》,《뉴욕에서의 북경사람》,《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금분세가》 등 수많은 작품들이 가가호호의 안방에 전해져 광범한 조선족시청자들의 과외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되였다.

이기간 리창균씨가 제작주임,극무주임,연출을 맡은 많은 작품들이  《준마상》평의와 전국조선말라지오텔레비죤작품평의에서 상을 따내였고 오학철,허화자 등 출중한 성우들이 용솟음쳐나오면서 연변의 라지오텔레비죤무대는 보다 활기를 띠게 되였다.

단지 성우로서의 작용으로 날로 향상되는 시청자들의 심미적수요와 방송예술단의 운명과 발전을 운운할수 없다는데 주의를 돌린 리창균씨는 또 소품,TV극 등 자체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사업에 많은 정력을 투입하였다.

1994년에 연변력사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죤련속극 《갈꽃》(15회)을 제작하게 되자 부분적 성우들을 거느리고 제작사업에 참여하게 된 그는 극무주임을 맡은외 남주역인 화가 허근의 형상을 출중하게 창조해내여 연변의 첫 텔레비죤련속극 출품과 더불어 좋은 영향력을 과시했다.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의 성우들이 배우의 신분으로 텔레비죤형광막에 등장하여 연변의 성공적인 텔레비죤극 전망을 과시한 이 작품은 그해 동북3성 《금호상》평의에서 수상의 영예를 누리였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장춘영화촬영소 합작으로 된 텔레비죤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에서 리창균씨는 제작주임을 맡았고 장춘영화촬영소 제작으로 된 영화 《태양을 따라》에서는 주인공 정률성의 계몽스승 안박사의 배역을 출중하게 수행하여 표창을 받았다.

찰떡궁합

《청춘극장》,《별없는 밤》 등 많은 라지오방송극과 《리정표가 없는 오솔길》,《흰구름의 길》 등 10여부의 텔레비죤실화극, 《흥부와 놀부》,《까치 울던 날》,《다리》,《어머니의 생일》 등 30여부의 텔레비죤소품을 세상에 내놓은 리창균씨는 지난온 나날을 더듬으며 20여년간 방송예술단을 함께 이끌어오던 리하수단장을 떠올리군 한다.

리창균씨는70년대 화룡현문공단에서 함께 근무한적 있고 선후로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에 전근하여 오랜 시간 각기 악대와 극대의 사업을 책임지고 어깨나란히 사업해온 리하수선생님과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있다.일찍 화룡문공단시절 무용극 《첫발자국》에서 리창균씨는 남주역인 군의역을 맡고 리하수선생님은 작곡을 맡았는데 이것은 서로의 예술적기량을 가늠할수 있는 단계가 되였고 따라서 향후 합작가능성을 잉태하는 좋은 연분이기도 했다.

녀류소설가 허련순씨의 작품 《우주의 자궁》을 개편한 텔레비죤극 《녀자는 무엇입니까》는 연출에 리창균, 음악에 리하수로 성공적인 합작을 이뤄낸 대표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두 사람의 구슬땀이 고이 슴배인 이 작품은 중앙텔레비죤방송 1채널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였고 연변시청자와 해당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끝없는 추구

영화 《태양을 따라》 촬영때문에 섬북에 다녀오면서 내지의 선진적인 영화텔레비죤문화와 전업의식을 감수하게 된 리창균씨는 현시대 영화와 텔레비죤극에 투입되는 제작비와 설비들을 보면서 《좁쌀과 보총》에 의거하여 뒤따라가겠다고 모지름을 하는 연변의 현상태에 대해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한동안의 고민끝에 이런 차이를 줄이는 길은 꾸준한 노력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끈질긴 탐구와 연찬에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극본창작에서라도 락오자로 되지 않을 결심을 굳혔다.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연출 및 영화기교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하고 하루에 《3시간 영화, 련속극 보기》규칙을 드팀없이 지켜오고있다. 그외에도 시간만 있으면 컴퓨터에 마주앉아 동영상도 제작하고 온라인을 통한 동업자들과의 교류를 증진하면서 진로탐색에 열중하고있다.

방송예술단 업무단장직무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연출만 담당하고있는 리창균씨는 최근에 《교씨네 아홉자매》,《흥망은 우리가》 등 텔레비죤련속극의 역제를 완성, 《염색공장》의 연출준비를 기본상 마무리하고 허련순씨의 작품을 각색한 방송극 《뻐꾸기는 울어도》의 준비사업과 더불어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 설립 30돐 기념행사를 위한 일들에 전력하고있다.  리창균씨의 꿈은 제한된 시간내에 자체의 극본과 연출, 자체의 설비와 제작진으로  훌륭한 텔레비죤련속극을 만들어내는것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등산도 하고 적당한 휴식과 신체단련에도 시간을 할애하면서 다채로운 삶을 영위해간다는 리창균씨가 멀지 않은 앞날에 이 꿈을 꼭 이룩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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