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봉관- 반세기 교향곡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5월22일 11시05분    조회:72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

흔히 기자들을 일컬어서 발로 뛰는 사람들이라 칭한다. 견문이 많아야 현장감이 있는 신문기사를 많이 써낼수 있다느 말로 풀이된다.  하지만 음악가가 발로 뛴다면 보편적인 통념을 거부할수도 있다.

그런데 이 통념을 깨친 음악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민 간음악집》(이하 음악집으로 략함)을 펴낸 김봉관음악가다. 이 음악집에는 음악가가 50여년동안 수집, 정리한 1050수의 민요작품들이 수록되여 있는데 수학적인 개념이 작동하는 계량단위에서 1050쪽이라는 부피보다도 4키로그람이란 무게로 정의해보면 정답이 나올듯도하다. 책을 무게로 계산하면 무식이 파도친다고 비난할수도 있는데 이 책을 받아들 때 첫 느낌이 지나칠 정도로 무겁다는것이다. 그만큼 이 무게에 정비례되게 작가의 심혈이 깃들어 있다면 독자들은 그제야 깨도가 될것이다. 장장 반세기동안 수집했고 작가가 6년동안 정리하고 오선보에 올리기까지 그야말로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 전설이 숨어 있다.



2



선사시대로부터 시작된 우리민족의 민간음악은 구전력사가 길고 그 수가 많고 전파령역이 넓은것이 특징이다. 민간음악은 선률적인 측면에 서는 우리민족음악의 기초이고 가사적인 측면에서느 민족시가가 그 모체로 된다. 구슬도 꿰여야 보배라고 민간에 산적한 민간음악은 발굴해야 그 가치가 발휘된다.

건국후 자지주정부는 많은 인력, 물력을 투입하여 민간문예를 수집,정리하게 했는데 민간음악도 이 시기부터 발굴되고 정리되기 시작했다. 자치주제1임서기 주덕해는 “불끄러 가는 소방차의 속도로 민간예술발굴, 정리 사업을 다그치라” 고 호소했다. 때를 맞추어 1961년 국가문화부와 중국음악가협회에서 련합통지를 발부하여 국가적인 범위에서 문간문예 정리 사업에 사업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시기가 첫번째 정리시 기였는데 김봉관음악가는 이 시기부터 정리사업에 참가했다. “연변문간 문예연구소조”가 발족되면서 《가야금곡집》과《조선민가집》이 내부자료 등사본으로 5집까지  편찬되였다. 하지만 가석하게도 문화대혁명시기에 분실되거나 소각되였다.

1978년 국가문화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와 중국음악가협회의 “2000년 까지 중국의 예술집성을 완성할데 대한 지시” 정신에 따라 연변에서는 6인음악발굴소조를 발족시켰다. 당시 이들의 설비라야 고작 새장구하나와 “601”표 카세트록음기한대, 록음테프 4개가 고작이였다. 이때로부터 두번째로 시작한 민간음악 발굴사업 강행군이 시작되였다. 김봉관음악가는 당시 39세였는데 6인조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지라 20키로그람이나 되는 새장구를 메고 하루에 20-50리씩 걸어다니기가 일쑤였다. 마을에 찾아가면 로인회관에(당시는독보조)찾아가 먼저 술상을 차리고 오락을 이끌어내면서 민간예술인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당시 정리사업에 참가했던 6명가운데서 김봉관음악가만은 술을 마실줄 몰랐는데 록음, 기보, 정리 사업은 당연히 김봉관음악가의 몫이였다.

현재까지 연변에서는 도합 세차례에 달하는 민간예술발굴사업을 진척 시켰는데 김봉관씨는 세차례의 발굴사업에 다 참가한 음악가로 남았다. 이 시기부터 연변의 문화일군인들은 국내의 250여개 현시와 650여개의 마을(지점)을 답사했고 만여명에 달하는 민간예술인들을 방문했고 3000여 수에 달하는 민요, 판소리를 청취했고 그 중에서 1000여수에 달하는 민간 음악작품을 발굴 정리했다.


3



김봉관음악가는 올래 70세인데도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룰줄 알고 음악소프트웨어를 능란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눈물나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도합 세차례에 정리사업에 참가한것만치 김봉관음악가의 손에는 방대한 자료가 남아 있었다. 2002년도에 이런 소식 을 입수한 한국충북대학으로부터 한국에서 출판할 의향을 전해왔다. 이때로부터 1년반동안 출판에 넘길 음악원고를 정리하였다. 정리한 원고꾸 레미를 메고 한국으로 나갔는데 출판사측에서 손으로 옮긴 음악원 고(오선보가 부착된 원고)는 채납할수 없다고 했다.컴퓨터에 입력했다가 다시 이동하드로 출력한 원고를 쓴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부끄러운때가 바로 그 날이였습니다. 컴퓨터를 모른다는 말이 왜 그리도 얼굴이 달아 오르던지” 김봉관음악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 온 후 중고컴퓨터를 얻어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시 일년동안 1500수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이제 남은 7곡만 입력하면 완성되는 판에 음악소프트웨어 가 기능을 잃으면서 오선보가 하얗게 되고 긴 오선보만 한줄 달랑 건너가는 현상이 나왔다. 너무 애가 타서 전문가들을 찾아 다녔는데 모두가 모른 다고 했다. 마지막에 심양에 찾아가 전문가의 도움을 청했는데 전문가는 소프트워 문제가 아니라 낡은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문제라고 회복할수 없다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은 이런 겨우를 두고 생긴 말이다. 새 컴퓨터를 사고 다시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컴퓨터에 입력한 후 다시 이동하드에 다시 입력했는데 이번에는 손녀가 이동하드에 유희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서  하드에 정착한 음악소프트웨어와 이동하드 까지 고장냈다.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간신히 완성하여 한국 으로 다시 나갔는데 출판사측에서 보더니 오선보가  한국의 “휘날레” 판본 이 아니고 “앵콜”판본이라 사용할수 없다고 했다.

재기의 의욕도 바야흐로 잃어가는데 어느날인가 주당위선전부 채영춘 부부장과 주문화국심수옥국장이 김봉관음악가를 찾았다. 이렇게 되여 김봉 관씨가 50년동안 심혈을 기울인 《음악집》이 고고성을 터지면서 출판 되였다. 남희철교수의 말대로《음악집》은 “진, 선, 미” 를 골고루 갖춘 책이고 중국조선족 음악의 가장 보귀한 책으로 남았다.


글/사진 최국철 허성기자

연변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리상표 리사장,오미자재배로 공동 치부600무 오미자재배단지 만들어 치부 기반 다져    전업합작사 세워 이웃 농민이 부유해지도록 선도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기자, 김유권 =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안구 흥륭진 동승촌의 농민전업합작사 리상표 리사장(48세) 는 600무 오미자재배...
  • 2009-03-08
  • 빙설우에 피여난 한떨기 진달래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 조선족 김봉령선수 일화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듯이 각고의 노력으로 빙설에서 꽃을 피우는 조선족처녀가 있다. 그녀가 바로 국가녀자아이스하키(冰球) 주력선수인 김봉령선수로 이번 할빈 대동회에서 중국녀자아이스...
  • 2009-03-07
  • 1.이 시는 연변의 농민시인 리근영의 “갈대밭에서”란 명시다. 시골의 촌옹이 거친 일밭에서 주은  시라고 도무지 믿기 어려울만치 주옥 같은 시다. 그래서 리근영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상식선이 파괴된다. 농민시인중에서 안도의 김일량시인과 쌍벽을 이루는 리근영시인은 올해 70세로 로구[老身]...
  • 2009-03-05
  • 김군룡은 자신이 음악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저절로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미술이라는 전업을 택했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 자신도 자기한테 풍부한 음악적재질이 있음을 몰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매일 하는 손풍금련습이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
  • 2009-03-04
  • 국내의 첫 녀힙합그룹인 T.G.4는 노래 《날아라》 등으로 인기상승가도를 달리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또 련속극 《아들딸들》, 《나비야 날아라》 등의 주제곡들을 불러 실력을 인정받았고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각 연예프로에 출연하여 여러가지 상을 받았으며 2004년에는 CCTV-1의 음력설야회에 출연하여 전국...
  • 2009-03-03
  • 하얼빈에서 부르는 애국가, 안중근… 3·1절 90돌…안중근 의사 조카며느리 안로길할머니를 찾아“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3·1절을 앞두고 중국 하얼빈에서 애국가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벌판을 떠돌던 우리 동포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
  • 2009-02-28
  • 2003년 본사에서 조직한 《제1차 연변10대최우수아나운서평의》에서 단연 1등의 영예를 따낸 국가1급아나운서 주옥란, 당년에 왕청현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사업하던 그녀는 현재 연길시텔레비죤방송국 특집부에서 만드는 《삶의 터전》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청취자,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다...
  • 2009-02-26
  • 밀입국 동포 ‘딱 한번만 더 구제 해주자’ 호소2002년 1월초엔 노무현 새정부 <국민정책참여센터>에‘불법체류 동포 구제방안’ 정책 건의서 제출…현실로 이루어져연변의 대표 브랜드(상표)로 통하는 ‘풍무뀀성’을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케 한 국옥현 한국분점 대표(사진)와 ...
  • 2009-02-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