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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귀춘-청도소수민족경제발전촉진회 부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6월18일 08시31분    조회: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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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현귀춘

《어르신》...청도조선족들은 이렇게 부른다
청도소수민족경제발전촉진회 현귀춘부회장 만나본다



현귀춘  프로필:
1937년 5월 25일 조선 출생, 룡정시 해란촌에서 동년을 보냄.
1958년 할빈 전력대학을 다니던중 군입대.
선후로 국방대학 후근학원 지휘계 졸업, 고급경제사, 중국인민해방군 136사 후근부 부장, 해방군 총후근부 산동련락처 주임, 중국신흥그룹 청도수출입회사 당위서기, 중국신흥그룹 대련수출입회사 당위서기 겸 총경리 력임.
1998년 정년퇴직, 지금까지 청도소수민족경제발전촉진회, 청도시소수민족련합회, 중한경제발전협회 부회장(국가 부속기구) 등 력임.

[청도시정부로부터 받은 영예]
청도시민족단결진보모범개인, 산동성민족체육 선진개인.

불완전한 집계에 따르더라도 청도에는 현재 조선족이 근 20만명, 관내에서 최대 조선족집거지로 불리우며 개혁개방후 조선족의 새 터전으로, 《제2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청도에는 현지 조선족들에게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위상과 존경을 받는 현귀춘이라는 분이 있다.  청도시 조선족들은 다들 그를 친절하게 어르신(원로―元老)이라고 부른다.

정부와 조선족사회를 오가면서 대변자와 교량 역할을 해온 그는 올해 73세 고령이지만 청도 조선족들과 정부가 언제 어디서 부르면 당년의 군인과 공산당원의  열정을 안고 달려간다.

청도조선족단체의 산모

현귀춘은 가마니를 짜서 번 돈으로 학비를 마련해준 부모님 덕에 할빈전력학원에 입학했으나 더 학비를 잇지 못하는 등 원인으로 심양군구 자동차수리기공학교에 신병으로 입대를 하게 되였다. 반장으로부터 사무장, 조리원, 과장, 후근부 부장, 공장관리국 부국장 등 승직을 계속하게 되였다.

청도에 오게 된것은 1988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에서 산동련락처 주임으로, 다시 부대기업인 중국 신흥청도수출입공사 당위서기와 대련수출입공사 당위서기 겸 총경리로 퇴직할 때까지 보냈다.

한중수교이후 한국기업들이 우후죽순마냥 청도시 곳곳에 기업과 공장을 개설하면서 조선족들도 따라서 진출하고 독자적으로 음식업과 써비스업, 제조업을 하는 탄탄한 회사들이 륙속 일떠서게 되였다.

1997년 김명남과 남일주가 현귀춘을 찾아왔다. 이들은 청도시에 가장 일찍 진출한 조선족 기업가와 유지인사로 조선족기업협회 설립건을 두고 현귀춘의 의견을 청취했다. 당시 조선족기업은 이미 알려진것만 40여개이며 직장인으로 출근하고있는 조선족들은 기수부지이므로 흩어진 조선족들이 단합해 더 큰 힘을 이루고 발전하자면 선두를 이끄는 조직체가 필요하고 그들의 인도와 옳바른 길잡이로 조선족단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해 12월 서라벌에서 조선족기업협회를 설립하고 김명남은 초대회장으로, 현귀춘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였다. 그후 현귀춘은 김명남의 회장사업을 지지했으며 6년째 3대 회장들이 바뀌면서도 시종 든든한 초석이 되여주었다.

청도시정부 소수민족경제발전추진회 부회장에 추대

2001년 청도시정부는 소수민족 류동인구가 많아지고 한국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소수민족경제발전추진회를 설립할 필요성을 느끼였다. 설립 당시 사급간부이고 공산당원인 현귀춘을 일치하게 부회장으로 추대하게 되였다. 한편 현귀춘은 앞으로 조선족들이 청도에 정착하고 조선족권익을 수호하자면 청도시 소속 단체에 가입하고 직접 몸 담그어야 한다는것을 느끼고 쾌히 승낙, 위임장을 받았다. 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던 조선족기업협회는 그가 소수민족경제발전추진회 산하의 분회로 귀속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하게 되였다. 그후로 로인회, 부련회 등 많은 조선족단체들이 설립되면서 현귀춘원로는 고문 등으로 초빙되였고 지지와 도움을 주였으며 행사와 회의에 참가해 보귀한 발언을 해주어 힘을 북돈아주었다.

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초대회당 남룡해)가 새로 설립되자 현귀춘은 또 이를 청도시소수민족경제발전추진회 소속으로 만들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청도에는 새로운 기상들이 계속하여 나타났는바 조선족 문화인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새로운 단체가 고고성을 울림으로써 청도 문화민족으로서의 이미지 향상, 조선족후대 교양문제를 적시적으로 해결해나가게 되였다.

2000년도에도 김장웅씨가 조선족학교를 설립할데 대한 지지를 얻고저 찾아왔다. 그때도 현귀춘은 마침 청도에 조선족들이 대거 정착하고 많은 가정들에서 청도호구를 취득했지만 아이들을 보낼 조선족학교가 없는것을 가음아프게 생각했다면서 적극적으로 지지, 당지 관련부문과 교섭했는데 믿음직한 법인대표와 경제안받침이 될 기업인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제기되였다. 하여 현귀춘이 법인대표로, 조선족기업회 김명남회장이 경제후원인이 되기로 하면서 이촌에 민영학교인 이창구조선족소학교를 정식 개설하게 되였다. 이창구조선족소학교는 13명 조선족아이들로부터 발전해 현재는 부속유치원도 갖고있는 학교로, 후에는 조선족학교가 새로 개교하면서 이 두 학교에는 천여명의 어린이가 공부하고 즐겁게 뛰놀고있다.

올해 3월, 청도조선족로인총회 5주년을 맞으면서 현귀춘은 자기 궤춤을 털어 지원하였으며 당지 고위급간부가 여기 행사에도 참가하냐고 묻자 민족의 사명감으로 행사에 참가하지만 그것보다 더 자랑스런 심정으로 꼭 참가해야 할 자리라고 소중한 말을 남겼다.

현귀춘은 이밖에도 한국인들의 청도 정착도 도왔는데 도합 인민페 1억여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사심을 조금도 부리지 않았다. 그는 또 청도보세구관리위원회와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경제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발벗고 뛰는 《급시우》

2006년 동북조선족축구련의회가 청도서 조선족제9차축구대회를 개최하려고 청도시체육국에 신청했지만 취소되면서 개최날자까지 미루게 되였다. 이때도 현귀춘은 소수민족경제발전추진회 명의로 나서서 체육국에 《청도에 조선족이 20여만명에 달해 하나의 새로운 생활권으로 간주하고있으며 또 중한친선에 큰 공헌을 하고있는 관계로 우의, 친선, 단결, 화합이 목표》라는 조선족축구대회의 중요성을 력설하면서 허가를 내릴것을 바랐다. 하여 체육국에서는 끝내 동북조선족축구련의회 최광륜회장을 만나 싸인을 했으며 현귀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9차조선족축구대회는 그해 가을 성공적으로 개최되였다.

청도 조선족은 개혁개방 이전에는 도합 138명뿐이였지만 현재 청도시 호구를 가진 조선족은 1만 5천여명에 달하며 새 아파트를 사서 살고있는 조선족은 그보다 더 많은 몇만명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20여만명의 조선족이 한국기업과 써비스업 혹은 자영업 등 령역에서 일하고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외에도 한국인들이 10여만명이 상주하는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우리 민족 새 판도가 형성되면서 많은 조선족 유지인사들이 청도생활에 우리 말 방송이 필요하지 않겠는가고 제기했다. 재작년말부터 현귀춘과 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가 연변위성TV 청도락지문제를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자금난이 걸림돌로 나서면서 현귀춘은 정부회의석상에서 소수민족정책과 우리 조선족,한국인들의 립지와 우세, 자랑거리와 공헌을 렬거하면서 계속하여 섭외중이다.

청도시정부에 조선족사회관련 네가지 제안

지난 6월 2일, 청도시민족사무국, 시위통전부 좌담회에 참석한 현부회장은 조선족관련 네가지 문제를 두고 발언했다.

교육문제: 일본과 미국 등지에는 수만명의 조선족들이 살고있으며 지어 많은 지역에는 이미 조선족판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민영학교가 없다. 청도에는 이미 조선족 민영학교 두개가 있는데 천여명 어린이들이 공부한다. 하지만 나머지 어린이들이 현지 학교에 다니면서 현지 학생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이를테면 학잡비를 많이 내는것이다. 또 우리 민족 언어를 상실해가고있다. 청도에도 조선족 공립학교가 설립돼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이 민족우대정책과 학잡비 등 면에서 혜택을 받아 더 많은 어린이들이 시림놓고 공부할수 있고 뛰놀수 있는 터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년활동장소문제: 동북에는 우리 조선족로년활동장소가 거의 다 마련돼있다. 청도에 있는 우리 조선족 로인수는 알려진것만 해도 1500여명에 25개 소속협회가 있는데 매 협회마다의 조선족로인활동실은 거의 다 조선족 자제나 개인기업인들이 후원을 해서 해결하는 상황이다. 당지 관련부문에서도 적극 협조를 해서 소수민족로인들이 만년을 행복하개 보낼수 있도록 로인활동실을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위성TV락지문제: 한국인과 조선족이 거의 30여만명으로서 이는 전국 조선족인구의 1/7 이상을 차지하며 절대다수 조선족들이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듣고 볼수 있는 연변의 위성TV락지를 희망하고있는데 빨리 선차적인 문제로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수민족 간부가 적은 문제: 류동인구가 많고 소수민족이 많으며 조선족집거구가 생겨났고 한국인이 중국에서 60%를 차지하는 산동이다. 소수민족 간부가 많아야 소수민족정책실시가 잘될것이며 그들이 듣고 느끼는 진정한 의견과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귀담아 들을수 있으며 정확한 해결책과 답변을 내놓을수 있다.

청도조선족사회 건강발전에 조언

현귀춘은 청도조선족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두고 의미심장하게 조언했다.

그는 조선족들이 많아지고 발전함에 따라 청도에서의 조선족들의 단결과 화합, 조선족의 위상수립문제, 중한 우의발전에서 아직도 미비한 문제점들이 드러난다고 하면서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것을 안타까와했다. 하여 륙속 《우리는 청도조선족》, 《문화민족으로서의 이미지향상에 힘씁시다.》 《조선족은 중한우의발전에 기여하자》 등 칼럼을 신문지상에 발표해 청도 조선족들이 한마음한뜻으로 특수환경에서 더 단결하고 단결속에서 더욱 화합하고 발전해가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많은 사회공명을 일으켰다.

현귀춘은 이렇게 소수민족경제발전촉진회 부회장으로 활약하면서 특수환경속에서 정부와 조선족사이를 오가며 조률하느라고 심혈을 기울였다. 정부에는 우리 민족의 위치와 생활해결 문제를 수차 제기하고 응당한 대우를 받을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며 우리 조선족들한테는 찾아봐야 할 문제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타행에서 사는 우리 조선족들이 더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청도조선족 민영기업은 천여개로 총 투자가 15억여원, 년리윤세금액은 해마다 3억원에 달한다. 현귀춘은 성, 시 해당 부문의 조선족사업과 기업정황 료해에 《산동조선족개황》을 조사연구해 참고로 제공했으며 수차례 국가 민위와 성, 시 고위관부들도 모시고 조선족기업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하여 조선족기업의 우수한 점과 해결점들을 제때에 반영할수 있게 되였다.

최근 금융위기 및 로무인건비가 인상되고 외자기업 우대가 축소됨에 따라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앞다투어 철수를 하게 되면서 우리 조선족기업들도 따라서 큰 격랑에 휘말리게 되였다고 현귀춘원로는 지적했다.

그는 한국기업에 의존해서 살아가던 악어와 악어새의 인연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되는 시기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를테면 한국기업에서 기술을 배웠거나 그로 인해 일감을 맡아 시작한 가공기업들이 그늘을 벗어날수 없어한다고 말하면서 조선족기업들이 대담히 내수를 적극 개척, 확대하고 기구 최소화, 랑비 최소화 등 방책으로 불황의 위기를 이겨나가는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류일복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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