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미영-상지시조선족문화관 관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7월6일 11시02분    조회:82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언제나 민족문화사업의 선두자가 되여 
상지시조선족문화관 관장 리미영의 사업에서

 

(흑룡강신문=하얼빈)김동규 기자= 상지시에 가면 20여년을 조선족문화사업에 자신의 심혈을 고스란히 기울여 온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문화관 관장인 리미영씨다. 문화사업이란 경제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오늘 많이는 중시를 받지못하고 경비난으로 이끌어 나가기가 가장 힘겨운 사업이다. 하지만 리미영관장은 25년이란 세월을 문화사업에서 여러가지 애로를 극복하면서 오늘은 상지시조선족문화관이 상지시조선족들의 문화중심으로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터전으로 가꾸었으면 민족전통음악과 무용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무대로 만들었다. 

1984년 리미영씨가 상지시조선족문화관으로 왔을 때만 하여도 곁방살이에 사무실이라는것이 책상 몇개가 전부였다. 어릴때부터 조선족무용과 음악에 흥취를 가지고 있던 리미영씨는 락심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키우기 위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때만 해도 민족문화사업이 중시를 받지못하는 때라 일을 하려고 해도 걸음마다 걸림돌이 생겨 가는곳마다 랭대를 받았다. 1992년도 춘절을 앞두고 조선족성악콩클을 조직하려고 보니 콩클을 벌릴 돈이 없었다. 리미영씨는 돈을 주겠다고 대답한 한 기업인을 찾아갔는데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리미영씨가 8차나 찾아갔어도 돈을 받지못했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리미영씨는 울고 말았다. 돈을 받지 못한 설음보다 민족전통문화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것 같아 쓸쓸하고 외로웠던것이다. 그해 리미영씨는 16차나 기업인을 찾아가 끝내는 기업인을 감동시키고 돈을 얻어다 문화관 령도들의 관심과 사회지성인들의 지지하에 상지시에서 처음으로 조선족성악콩클을 성공적으로 조직하였던것이다. 

1994년 리미영씨는 상지시조선족문화관 관장으로 되였다. 관장으로 되는 날 리미영씨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몇년간의 문화사업에서 비롯 보람도 있었지만 문화사업을 하려면 남다른 인내력과 분투정신이 없으면 안된다는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자신의 중임을 피부로 감지했던것이다. 조선족문화관 관장이란 결국은 민족문화의 대변인으로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코기러기로 활동해야 된다는것을 자각하고난 리미영씨는 모든 사업을 깐지게 짜고들었다. 

리미영씨가 관장으로 된 후부터 상지시조석족문화관에서는 해마다 여러가지 민족전통이 다분하고 조선족들이 환영하는 활동을 조직하였고 제한된 사업경비를 쪼개쓰면서 조선족무용학습반을 비록한 문화사업을 활기차게 펼쳐나갔다. 리미영씨는 문화사업을 하면서 하나의 좌우명이 있는데 그것은 조선족들의 문화생활에 유익한 일이면 어떤 곤난이 있어도 해야한다는것이였다. 리미영씨는 언제나 자기를 민족문화의 대변인이라는 사명감을 잊지않고 수시로 자신을 단속했고 민족문화사업을 한다는 자부심을 안고 문화사업에 몰두하였다. 

지금 상지시조선족문화관에는 '소년무용반' '민족전통악기반' '성인무용반' '중로년무용반' '건강무용반'이 있고 명절때마다 문예콩클을 비롯한 각종 문화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상지시조선족문화관에서는 사회공익사업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리미영씨의 노력과 성과는 사회의 긍정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리미영씨는 상지시문화관을 대표하여 중한로년예술절에 참가하였는가 하면 2008년 12월에는 한국으로부터 민족사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리유로 '한민족청년상' 을 받기도 했다. 지금 리미영씨는 상지시 정협위원, 할빈시인대대표, 할빈시당대표, 할빈시부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리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 박철수 北 외자유치 경제 구원투수가 돼대풍투자그룹 총재로 임명… 北 외자유치 총책으로中 휘발유 팔며 신뢰 얻어… 작년 '남북 비밀접촉' 중개說 북한은 최근 국가개발은행(산업은행 역할) 설립 방침을 밝히면서 이 은행의 외자(外資) 유치를 담당할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대풍그룹) 상임부이사장 ...
  • 2010-01-27
  • 청아한 목청의 민요가수 — 렴수원 렴수원 프로필 1989년 연변예술학교 성악전업 졸업. 1989년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독창배우. 1999년 연변가무단 독창배우. 2003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학부 졸업. 2004년 상해음악학원 성악학부 졸업. 1990년 전국《장성컵》민족음악콩클 독창1등상. 1992년《연변의 여름》예술절 독...
  • 2010-01-27
  • 성장 이끌어 내려면 유망사업에 과감히 투자하라—연변미주통상대사 박현우회장을 만나연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언제든 연변을 돕고싶다”는  연변미주통상대사 박현우회장은  10년 가깝게 연변대외교류추진사업에 진력하여왔다.  지난 1월 21일, 연변의 발전가능...
  • 2010-01-25
  • 1 2010년 음력설맞이문예야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를 들을수 있고 새로운 가수를 볼수 있다. 20일 오후,  기자는 편집부에서 연변TV방송국에서 마련하는 음력설맞이문예야회참가차로 연변에 온 가수 정성씨를 만났다.양광상품(阳光尚品)문화전파회사 김광호사장이 소속사 배우 정성(郑晟)씨는...
  • 2010-01-22
  • —왕청현 배초구진중학교 전건성교장의 이야기 현성과 왕복 50여킬로메터 떨어진 가야하강반에 자리잡은 시골학교로 매일 도시락을 챙겨가지고 통근하면서 학교의 교수환경을 개변시켜 시골학교의 “코기러기”로 불리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왕청현 배초구진중학교의 전건성(36세)교장이다. 199...
  • 2010-01-20
  • 한 녀가수의 예술사랑 가족사랑지난세기 80년대~90년대 연변가요계에서 자신의 립지를 굳게 다지고 조선족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안았던 청년가수 장경옥, 이쁜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그 목청도 좋았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늘 조용하게 웃는 미소는 상냥한 이미지를 부여해 과연 “최진사네 셋째딸&rdquo...
  • 2010-01-18
  • 89세 리옥금 녀사의 이야기 “당과 인민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두려울게 없었다.” "우마보다 못한 머슴살이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인된 행복이 목숨이상으로 귀중했다.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다."이는 일생을 나라와 인민을 위한 사업에 바쳐온 리옥금(89살)할머니의 페부에서부터...
  • 2010-01-13
  • 한석윤 프로필 1943년 3월 훈춘현 태양촌 출생.1967년 8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2003년 5월 중국조선족소년보 정년퇴직재직기간 총편집, 사장, 고급편집, 명예문학박사 사회직무중국작가협회 회원.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연변작가협회 부주석(2기 련임)연변기자협회 부주석(3기 련임)중국소년아동신문잡지사업자협회 ...
  • 2010-01-13
  • "태신" 온돌판넬 절반 중국 주름잡아전국 수십개 도시에 총대리점 300여 개수십만 세대 안방에  "태신" 의 "온정"전해성공 비결 "신용을 남기면 이윤이 남는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전영매 기자 = "태신" 전기판넬 하나로 거의 절반 중국 대륙을 주름잡고 ...
  • 2010-01-12
  • 준비된 길을 걸으며 펴내는 절절한 와인인생—청도원석벽지유한회사 석진덕리사장을 만나 변화가 불가피한 시대에 국내포도주시장이 하나의 시장으로 잡혀져 있지만 제한적으로 경쟁력이 좁혀져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침해를 받고 있다. 이같은 국내포도주시장에 변화를 꼭 이끌어내려는 사람이 있다. 일찍 연변에서 연...
  • 2010-01-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