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은택 감독(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한양대 교수)은 여전히 연변 FC의 정신적인 지주로 기억되고 있다. 최 감독은 1987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의 때 연변 오동(현 연변 FC)의 추명 부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1997년 최 감독은 2부리그 강등 위기에 처해있던 연변 팀의 요청에 따라 지휘봉을 잡는다. "그런 식으로 공 차려면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을 거면 논밭 갈고 부모님께 효도라도 해라" 등 선수들의 정신 자세부터 뜯어고쳤다. 혹독한 체력훈련과 한국축구의 선진 전술을 가미하며 팀을 변화시켰다. 만년 하위권이던 연변은 1997년 돌풍을 일으키며 1부리그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코치들과 선수들은 물론 조선족 팬들은 그를 학장님·교수님으로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무엇보다도 전원 공격·전원 수비를 표방하며 화끈한 공격축구로 중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당시 중국 언론은 "보는 이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연변은 그해 '최고 발전상'을 받았고, 최감독은 중국 최고 감독상을 수상했다. 최 감독은 건강상의 이유로 1년만 지휘봉을 잡은 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연변 팬들은 13억명의 중국을 놀래킨 그를 잊지 못한다.
최 감독의 활약 이후 김정남·차범근·박종환·이장수 등 한국 지도자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했다. 1941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최 감독은 송도중-한양공고-한양대를 거쳐 육군과 대한중석팀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1967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68년 모교인 한양대 감독을 맡았고 1971년 고교대표 상비군 초대 감독에 올랐다. 1973년부터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며 2년간 독일에서 유학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코칭 스쿨을 빼놓지 않는 학구파 지도자였다. 1979년 당시 최연소인 41세의 나이로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됐고 한양대 교수로도 임용됐다. 1984년에는 K-리그 포철(현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았고, 1982년 국가대표팀을 이끌기도 했다. 평소 폐가 좋지 않던 그는 2007년 2월 향년 6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최원창 기자[gerrard11@joongang.co.kr
2009.12.02 11:30 입력
중국조선족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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