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채순희- 태평양미용병원 원장의 도전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4월14일 08시35분    조회:83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채순희-오래가는 향기 오래 가는 녀자
—조선족 녀성기업인 태평양미용병원 채순희원장의 도전하는 세상

사람들은 흔히 "마음"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그런데 정말 마음의 위대함을 속속들이 인식하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은것 같다. 연길시태평양미용병원의 채순희원장은 인생의 성공을 거머쥐는 비결은 바로 "마음"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에게 보내는 강한 메시지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고 행동하게 만드는 진실한 "마음", 바로 그것 말이다.

미치도록 내 삶을 살고싶었다.

"고민해보지 않으셨어요?  더 나은 더 좋은 삶에  대하여...저는 지금도  현재에 안주하거나 주변을 탓하고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려움을 극복해가면서 인생의 묘미를 발견하군 합니다..." 올해로 태평양미용병원을 설립한지 17년째가 된다. 채순희원장은 인생이란 더 나음을 위하여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극복하고 치렬하게 고민하면서 그 성공의 희열을 만끽할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녀자나이 36살까지  연변량식식료품공장 화험실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평범 한 여자로, 안해로 , 어머니로 매일 안주하며 살아왔었다. 그러던 그녀는 아이가 커가면서 갑자기 인생을 너무나 허무하게 보내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났다. 미치도록 더 일을 하고싶었고 발전적인 자기 모습, 꿈을 이루게 하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거기에 그의 창업의욕을 더욱 움직인건 다름아닌 동생들이였다.

그때 동생들이 연길시에서 "몽니탄"이라는 미용미발점을 운영하고있었는데  그녀도 동생들과 함께 창업해보고싶었다. 그러나 평범한 안해로서의 역할만을 기대하는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안해의 말에 펄쩍 뛰며 반대하였고 친지들도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건 아쉬운 일이라며 신중하게 고려할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일에 목말랐던 그녀는 미련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다섯 남매가 각자 7500원이라는 자금을 출자하여  몽니탄미용미발원을 서시장부근에다 옮기고 미용미발과 학원강습을 병행하는 영업을 시작하였다. 채순희는 그곳에서 2년간 전문 미용을 맡고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면서 신심을 가졌고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였다.

"다섯 형제가 한곳에서 일하면서 인력랑비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가?" 단골손님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그녀의 뇌리에는 자체로 미용원을 꾸리려는 욕망이 꿈틀거렸고 그의 이런 생각을 동생들도 받아들여  1993년 2월 동생과 함께 "몽니탄"에서 분가하여 "태평양미용미발쎈터"를 개업하였다.

잃는것도 배움이다.

창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부푼 꿈을 안고 거창하게 시작한 "태평양미용미발쎈터"는 된서리를 맞았다. 신용이 우선인 미용미발점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무작정 규모만 덩치 크게 만든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거기에 기술이 결핍하고 경험도 부족하여 개업한지 8개월만에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은건 20여만원이라는 빚뿐이였다.

"마음이 아팠어요. 물론 당장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여유를 잃은것도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빚을 갚으러 뛰여다니고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느꼈던 허무함이 저에게는 가장 큰 짐이였어요."  하지만 이러한 경험과 실패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투자"가 돼버렸고  실패로 인한 어깨의 짐이 모두 공부가 되였다고 한다.

규모는 작더라도 신용과 믿음으로 고객을 끌면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가야 한다는것을 깨달은 채순희는 1993년 11월에 다시 8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작은 집을 세맡고 태평양미용원을 차렸고 신용과 믿음 , 친절과 미소로 미용원을 찾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최대한 만족시켰다. 얼마 안되여 단골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면서 태평양미용원을 찾는 손님들도 줄을 이었다.  

그런데 또 난제에 봉착하였다. 그때 미용용품은 대부분 광주로부터 구입하였는데 사용과정에서 채순희는 심각한 품질문제가 있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수시로 가짜제품이 판을 치고있어서 스스로도 자신을 굳게 믿는 손님들한테 장담할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관련 서적도 보고 전문가에게 문의도 하면서 중약재로 피부막을 만들 처방에 머리를 짰다. 우선 그녀는 의약회사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필요한 약재들을 사온후 배합하여 가루를 내서는 자기 얼굴에 먼저 시험해보았다.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하여 그는 피부미용에 좋은 중약팩을 개발하였고 이는 인차 손님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중약팩개발에서 단맛을 본 그녀는 개업 5주년때에는 1000평방메터되는  건물을 확보하고 화상, 성형미용외과에서 명망이 있는 전문의를 모셔들이고 "태평양미용병원"의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7년이 흐른 오늘 태평양미용병원은 첨단의료설비뿐만아니라 높은 의술과 의덕을 겸비한 30여명의 의료진을 갖춘 탄탄한 기업으로 발돋움하였으며 17년간 한번의 의료사고도 없는 "계약과 신용을 지키는 기업"으로, 2006년에는 중국미용협회로부터 "중국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신임하는 미용성형기구"로 평의되였다.

나는 매일 스스로 주문을 건다

  태평양미용병원의 가장  큰 자산은  풍부한 림상경험을 가지고있는 근 30여명에 달하는 최고의 인력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데는 사업가 채순희원장의 마력이 있음은 두말할나위가 없을것이다.

미용은 단순히 외곽적변화에만 그치지 말고 심리적, 감성적으로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다듬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채순희원장은 실제로 자기 개발에 있어서 경제적투자와 정신적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다.

근 17년간 미용업에 종사하면서 그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공부에 대한 끈은 놓은적이 없다. 1993년부터 그는 해마다 국내외 미용계의 학술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으며 1997년에는 한국 피어리스미용학원에서 1년 연수한 뒤를 이어 일본, 오스트랄리아, 유럽의 여러 선진국을 찾아 미용, 성형의 추세를 직접 체험하고 고찰하였다. 미용병원의 원장으로서의 전반 기업의 능률적인 경영을 위하여 그는 또 2001년부터 연변대학 의학원에서 의학보건림상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연변대학 직업녀성문화연구반에서 공부하였고 2005년에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다.

때론 공부하기에는 훨씬 넘긴 나이에 너무나 공부에 욕심을 내는 그녀를 보고 친구들이  "밑빠진 항아리에 물붓는게 아닌가"고 롱담을 건네면 그녀는 "콩나물은 밑빠진 항아리에 놓고 물을 주지만 그래도 잘만 자라지 않냐고? 나도 콩나물처럼 잘 자라고있다"고 정색해서 대답한다 .

스스로 "공부의 끈은 놓지 말자"고 시작된 그녀의 주문은 요즘은 "무엇을 하고싶다"에서 "무엇을 할수 있다"고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주문들이 많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들은 마치 정신적 비타민처럼 나를 생기있게 만듭니다. 주문을 외우다 보면 어쩐지 멀지 않아 반드시 그런 날이 올것 같은 오고야말것 같은 기분, 아니 확신이 온몸에  퍼지니까요"

하기에 주정협 위원으로, 인대 대표로  미용협회 회장  등 사회 각계로부터 여러가지 직무를 감당하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할 때에도 채순희원장의 꿈을 향한  주문은 끊을줄 몰랐다...  오늘도 채순희원장의 주문은 진행형이다...

오래 가는 향기, 오래 가는 녀자

채순희원장은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운 외모를  가지고있다 특히 그녀의 세련된 옷차림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패선뿐만아니라 인테리어 등의 감각도 뛰여나다. 하기에   7층으로 된 그녀의  미용병원에 들어서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녀자는 70세가 돼도 그 나이 또래의 남들이 볼때 차를 같이 한잔 하고싶은 마음이 들게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조선족녀성들은 세심하고 감성적이라고는 큰 장점을 가지고있는데 이게 얼마나 큰 장점인가요 그래서 저는 조선족녀성으로서 제가 미용업에서 일할수 있고 또 녀성들을 위해 아름다움을 창조해 줄수 있다는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또 저의 녀성직원들에게 항상 아름다운 녀성이 되는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죠."

채원장의 이 말에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섬세하고 감각적인 면에서 뛰여난 녀성은 여러 분야에서 꿈을 가지고 도전해볼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많은 조선족녀성들이 자기의 숨은 재능과 잠재력을 모르고 외국출국에만 열을 올릴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일과 분야에 꿈을 가지고 도전하면 언제든지 성공의 희열을 느낄수 있다는 이야기다.

채원장의 이 말에는 또 녀성은 언제나 "자기관리"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편하고 쉽게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채원장 역시 자기관리가 아주 엄격하리만큼 철저한 사람이다. "강한것은 아름답다"는 말처럼 그녀의 고운 외모와 함께 또 다른 내면의 강인함으로 아름다운셈이다.

"만약 나에게 성공의 열쇠가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꿈을 키우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해줄것입니다. 희망을 놓지 말고 세상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인생의 목표우에 세우라고!"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향기가 있는 멋진 녀성으로 남기싶다는 채순희원장,그녀는 오늘도 미래를 항해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의 응원을 보낸다.
장연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서도소리 뿌리 찾는 조선족 젊은이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옌볜(延邊)에는 우리의 가락이 잘 보존돼 있지 않습니다. 뿌리를 찾고 싶어 한국에 왔습니다."중국 지린(吉林)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옌지(延吉)시에서 나고 자란 이홍관(29)씨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부르던 민요인 서도소리의 ...
  • 2011-03-01
  • [특별인터뷰] 최수송의 작가정신과 작품을 들어본다중국 연변의 곳곳에 조선족을 주제로 한 조각(彫塑)물들이 많다. 중국 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은 물론 화룡, 도문, 용정에 설치된 조각들 대부분이 조선족 조각가 최수송 선생의 작품들이다.  <원예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황소(黃牛)>, &...
  • 2011-02-28
  • [길림신문 2011-02-25 유경봉 박광익 특약기자] 딸의 독일류학꿈을 이뤄주기 위해 상경 《독일에 류학가고싶다》는 8살 어린 딸의 말 한마디에 연길에서 공직을 사퇴하고 북경에 진출한지 11년, 그동안 딸의 꿈을 이뤄주고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조선족사회의 《스타부부》가 있다. 그들이 바로 망경 박태국제(博泰...
  • 2011-02-28
  •   —재한 중국동포학자 김범송 박사 인터뷰   (흑룡강신문=하얼)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2010년 12월 김범송(조선족, 남, 45세) 한국외국어대학 외래교수는 본인의 다년간 연구결과물, '동아시아 인구정책 비교연구-한중일 출산정책을 중심으로'이란 연구저서를 펴냈다. 이에 앞서 김범송 박사는 2007년 7월 중한문...
  • 2011-02-21
  • [김월녀 프로필] 1988년―1992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학부 1997년 중앙민족가무단 입단 2000년 KBS―TV 《가요무대》《열린음악회》 출연 2002년 한국《국제 꽃박람회》중국홍보대사, 한일월드컵 홍보위원 한중,문화교류 10주년 축하공연 2003년 MBC SBS 가요콘서트 출연 2004년 KBS 《체험삶의 현장》출연 2005부터 여러...
  • 2011-02-15
  • 민중속에 뿌리내리고민족전통음악의 거목 김남호선생 [연변일보 2011-02-14 허국화 기자] 중국조선족의 음악 발전과 보존, 창작과 연주,  평론 등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조명한 김남호선생의 《중국조선족 전통음악 대중음악론》이 일전에 한국 민속원에 의해 출간되였다.600여쪽에 달하는 이 저서에서...
  • 2011-02-15
  • 《평양화랑》에 전시된 미술작품들 북경서 민족의 미술문화 전파해 가는 연변나그네 [길림신문 2011-02-09 박광익 특약기자] 북경시 조양구 망경 남호동원 122호 박태국제 1층에는 조선화가와 중국조선족화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전시판매하는 《평양화랑》이 있는데 이 화랑의 주인이 바로 화랑경영만 20여년 해온 선구...
  • 2011-02-09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1-28)남영선 특약기자 = 녕안시의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문화거리에 가면 민족진료소라는 간판을 걸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매일과 같이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는 의사가 있는데 그가 바로 이 진료소의 리경덕(51세)의사이다.   1982년 흑룡강중의약대학 중의전업을 졸업한 리경덕의사는 녕안시...
  • 2011-01-29
  • -북경청구식품유한회사 리영숙리사를 만나  [길림신문 2011-01-28 유경봉 박광익 특약기자]소학교학력에 짠지장사출신의 한 평범한 조선족녀성이 6만원으로 북경에 진출한지 20년도 안되는 사이에 자신의 탁월한 혜안과 담략으로 자산 2억여원을 가진 갑부로 탈바꿈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가 바로 북경청구식품(&...
  • 2011-01-28
  • '대한' 추위속 연신 찬물 몸에 쏟아붙는 연기 보여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1-21) "한통, 두통, 세통..." 관람객들이 셈을 세는 소리, 환호소리, 응원소리가 송화강환락곡(欢乐谷)에서 터져나온다.   20일, '내한 기인' 김송호(조선족, 55세)가 '대한'의 추위속에서 90통의 얼음 섞인 찬물을 ...
  • 2011-0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