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철-연변촬영가협회 주석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5월13일 15시35분    조회:84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셔터에 묻어나는 고향산천
—연변촬영가협회 박철주석을 찾아서


촬영이 더 이상 소수 사진가들의 특권이 아닌 대중예술이 되였다고는 하지만 연변촬영가협회 박철주석의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시원함에 그만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변촬영가협회에 자신보다 예술성이 뛰여난 회원들이 너무나 많다며 극력 추천하는 박철주석한테서 협회를 이끌어나가는 힘있는 리더십을 보았다.

2008년 12월부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사업을 맡게 된 그는“공화국 건립 60돐 및 협회 설립 50돐” 그리고 “개혁개방 30년”이라는 타이밍에 맞춰 짧디짧은 1년여 사이에 많은 일들을 해놓았다.

지난해 8월에 조직한 제3기 중국 연변국제촬영문화주 및 중국 두만강국제촬영문화관광절은 연변촬영사에 전례없는 장거라고 호평받고있다. 그도그럴것이 연변국제촬영리론포럼을 비롯하여 36명 국내외촬영가의 사진전, 연변 8개 현,시의 촬영예술전람회, 개혁개방 30돐 촬영전람회를 동시에 조직했는데 도합 2000여점의 작품을 전시해 전례없이 방대한 규모와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문화절기간에 또 화룡 남평, 룡정 삼합 등 여러 곳에 민속풍조촬영기지를 마련했는데 당지군중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접대사업을 빈틈없이 배치하여 활동참가자들의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을뿐만아니라 연변의 특색문화를 널리 자랑하는데도 일조를 했다.

협회 설립 50돐을 맞으며 《50년 연변사진순례》라는 두툼한 작품집을 출판해냈고 연변촬영가협회 회보인 《연변사진》제13기도 출판했다.

창작이 있고 교류가 있는 협회만이 살아있는 협회라며 박철주석은 지역간, 나라간의 활발한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1기 연변관광촬영전”, “공화국건립 60돐 맞이 촬영, 미술, 서예전” 등 다수의 전람회를 조직하는외에도 회원들과 함께 연변 8개 현,시에서 조직하는 각종 전람회에 적극 참가하여 좋은 성적들을 따내는 등 각 현, 시 사이 정보소통과 교류를 추진시켰다.

지난해 5월에 북경국제전람중심에서 펼쳐진 중국 제12기 국제촬영장비영상기자재박람회기간에 연변촬영가협회와 중국촬영가협회 정보중심에서는 련합으로 “연변민족풍조촬영작품전”을 조직했는데 전람이 끝난후 주최측에서는 모든 작품을 소장했다.

지난해 6월, 박철주석은 연변촬영가협회와 한국사진작가협회 강릉분회와의 촬영예술교류협의에 싸인함으로써 앞으로 보다 활발한 국제적교류활동을 이어나갈것을 약속했다.

박철주석은 정통성만을 고집하는 고루한 예술가가 아니라 정보화시대의 흐름에 발맞출줄 아는 문화리더이기도 했다. “연변촬영”사이트를 개통, 운영하고 “리상”컵,  “현대”컵 온라인촬영전을 성공적으로 조직했을뿐만아니라 “연변촬영살롱”을 설립하고 12만원을 투자해 내부설비를 장만함으로써 협회회원, 촬영애호가들에게 더없이 좋은 예술의 장, 교류의 터를 마련해주었다.

주정부 기관사무관리국 부국장 등 본직사업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어디에서 이렇듯 무궁무진한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놀라울따름이였다. 그것도 계획에만 그친것이 아니고 이미 성적표를 사회에 보란듯이 내놓은 그, 웬만한 정력과 체력의 소유자가 아니였다.

연변촬영가협회를 이끌어나가면서 사실 겪는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단순히 촬영에 대한 열정만 갖고 림하기엔 정신적, 시간적 여유로움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협회특성상 사회각계에 흩어져있는 회원들을 한번 조직하기에도 많은 정력이 들었고 활동경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바로 주석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 생각하는 박철주석, 자기희생정신이 없이 어찌 협회의 리더가 될수 있겠느냐며 그는 “복무”,“공헌” 이 두마디로 수없이 자신을 편달한다고 한다.

박철주석은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박력이 있을뿐만아니라 철저하기까지 했다.

연변촬영가협회에서 지난해 건립 50돐을 맞으면서 두만강발원지로부터 시작하여 훈춘지역 바다합수목까지 답사창작활동을 조직했는데 250여명이 함께 움직인 큰 활동이였다. 타지에서 며칠동안 숙식하며 창작활동을 해나가던중 험난한 지세때문에 차 한대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출발전에 인신보험까지 해놓은 등 워낙 사전준비가 철저했기때문에 별 탈 없이 잘 처리되였고 활동은 원만한 마무리를 지었다고 한다.

촬영이란 사실 참 어려운 공정이라고 한다. 벼르고 별러 어쩌다 차례지는 휴식일에 십여킬로가 넘는 촬영장비를 메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하늘의 조화는 예측키 어렵다고 기후적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촬영을 접고 그 다음해를 기약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이러한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렌즈에 고향산천의 절승경개를 담아냈을 때, 고생스럽게 찍은 사진들중에서 단 한장이라도 예술성이 뛰여난 작품을 건졌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수 없으며 온갖 피로가 싹 가셔지고 또다시 무궁무진한 힘이 솟는다고 한다.

박철주석은 연변촬영가협회의 근본취지가 예술의 발전과 사회를 위한 복무라고 했다. 현재 동북아지역 개방과 선도구개발을 추진하고있는 가운데 관광산업이 급부상하고있으며 이와 더불어 선전사업이 따라가야 하는데 바로 촬영이 여기에서 한몫 크게 감당해야 한다고. 그것이 연변촬영가협회가 장기적으로 밀고나가야 할 일이고 또한 이런 사회적공헌이 뒤받침될 때라야만 예술성도 운운할수 있다고 한다.

“문화적지조를 격상하고 친구를 널리 사귀며 사회를 위해 복무하고 신체를 단련한다.”자신이 촬영생애에서 얻은 감수를 박철주석은 이같이 재치있게 대답했다. 촬영장비를 메고 고향산천을 즈려밟으며 구석구석에 살아숨쉬는 만물을 렌즈에 담아내는것이 그렇게 좋다면서도 그는 자신보다도 연변촬영가협회의 회원들의 창작활동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더한다.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광동지역 모바일 부품 선두주자 [심수 할루야전자 올들어 매출 실적 1억 2000만달러] 조선족 기업인 남화섭 총재(42세)가 이끄는 심수 할루야전자유한공사는 중국 최고의 모바일 부품 판매, 개발회사로의 비전을 꿈꾸며 이 분야에서 광동지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고신기술 분야의 부품 수출입 무역이 주업인 이 회사...
  • 2005-09-07
  • [정의의 부를 위한 사업] —한국 '731부대죄증'연구소 소장 허유선생 인터뷰 '저가 중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731부대에 대한 료해는 교과서나 영화를 통해 약간 아는 정도였습니다. 1990년도 사업차로 중국에 왔다가 중국의 731죄증진렬관을 참관하게 되였는데 그때 일제침략군의 잔인무도한 폭행에 격분을 금치 못했...
  • 2005-09-06
  • 중국 문단에서 어색한 세대로 불리우는‘70후’ (70년대 생을 말함) 작가들은 상하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군체로서 4년전부터 ‘미녀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였을뿐 실력파들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70후’작가군체에 ‘미녀작가’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력파도 없지 않았으며 ‘미녀작가’속에서도...
  • 2005-09-06
  •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이웃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과의 내왕이 밀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의 위치도 두드러집니다. 일찌기 공화국이 창립되기 전인 1940년대에 이미...
  • 2005-09-05
  • 베이징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한국부 엄춘연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기로 약칭함) 엄춘연(이하는 엄으로 약칭함) 기: 안녕하십니까? 엄: 안녕하십니까? 기: 바쁘신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본인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립니다. 엄: 저의 회사는 베이징시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 회사라고 하는데...
  • 2005-09-05
  • 기: 오늘의 문화현장에서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부장으로 다년간 활약하면서 많은 텔레비죤문예프로를 제작하셨고 또한 많은 훌륭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신 고창모선생님과 이야기를 자리를 함께 했다. 음악에 뜻을 두게 될 때는 언제부터였는지? 고: 집의 부친이 바이올린을 켰고 삼촌이 첼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
  • 2005-09-05
  • 베이징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김영 지배인과의 인터뷰 [img count='1' width='350' img] 사회자: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전통산업의 양적 팽창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산업에 대해 아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IT산업의 육성을 21세기초 국가의 중점산업 발...
  • 2005-09-01
  • 중앙민족대학 김명숙 선생님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전부 기로 약칭함) 김명숙(이하는 전부 명으로 약칭함) 기: 올해 7월이면 학생들이 졸업이잖아요. 현재 반급의 32명 학생들의 취직 방향은 어느정도 실현돼 가고 있습니까? 명: 취직은 학생들이 아직 자기가 취직한 자리를 공개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한두달 정도...
  • 2005-09-01
  • 중국기업문화촉진회 조선족연의회 김정섭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자)안녕하십니까? (사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녜, 오늘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주시고 방송국까지 찾으시여 감사합니다. 백마강음식점 하면은 베이징에서 참 오래됐다는 인사을 받게 되는데요, 최초 영업을 시작한지는 언제지요? (사장) 백마강음식점은 19...
  • 2005-09-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