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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철- 하역부(装卸工)가 사장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9월29일 14시59분    조회:2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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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적인 분위기로 회사를 세운 청도림운비닐박막회사..
 

다부진 체격에 륜곽이 선명한 얼굴 그리고 억실억실한 눈매를 가진 젊은 기업인인 서정철씨가 요즘청도 세간에서 화제를 낳고있다.

무역으로 상승가도를 달리던 그는 생산과 수출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목표로 최근에 정식으로 림운비닐박막회사를 오픈했는데 오픈 당시 현지인과 한국인을 포함한 근 200여명의 래빈이 모여 서정철씨의 개업을 축하했다.

길림성 화룡시 룡문향이 고향인 서정철씨(72년생)는 연변의 최고 명문고중인 연변1중을 졸업하고 중국 해양대학에 진학, 대학에서 철학과 국제경제무역을 전공했다. 대학 2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자체로 해결해왔다. 그는 주말이면 한국사람들의 통역을 맡아 한달에 몇백딸라를 벌었고 대학 3년부터는 대학교의 언어학원 강사로 뛰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해결했다.

자기 스스로 생활기반을 형성해가면서 대학교 공부가 사회생활의 전부가 될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다른 학생들이 학교에 남거나 공무원취직을 위해 악을 쓰고 공부할 때 “공부와 경제”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학업을 원만히 마쳤다.

1994년 ,당시의 정책으로 인해 졸업후 연변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연변행을 포기하고 “청도은하불야성”의 사장통역으로 취직하고 시장경제의 물결속에 육신을 맡겼다.

당시의 로임은 3000원, 공무원으로 취직한 동창생들의 5배이상 되는 로임이였다. “은하불야성”이 사정으로 인해 여러 가지로 되는 문제에 휘말리게 되자 그는 련운항으로 자리를 옮겨 “오뚜기식품회사”의 사장 통역 겸 영업과장으로 취직하였다.

오뚜기회사에 몸 잠그고있는 2년 동안 합작기업의 한계를 보아낸데다 일부 인위적인 난제는 대학생인 그로서도 도저히 풀수 없음을 발견하고 그는 다시 청도로 진출했다.

그러나 그의 이번 선택은 방황의 시작이고 아픔과 성찰을 거듭할수 있은 계기였다. 3000원씩 로임을 받던 그가 취직할 합당한 자리는 없었고 높아진 그의 눈은 도저히 높이를 낮출수 없었다. 그는 날마다 트럼프를 치고 게임을 놀고 술마시고 허송세월을 하였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였다.

전국 우수교원이였던 그의 어머니는 로련한 교원답게 질책 대신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하나 아들인 너는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잘하고있을거다”고 하면서 용기를 내여 현실을 정시할것을 바랐다.

어머니의 전화 한통은 그의 식어가고있던 가슴에 의욕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그렇다. 이렇게 허송할순 없다. 무슨 일이든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리라.”

운명의 기묘한 일치라고 할가, 누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갔던 그는 교하비닐박막유한회사의 리훈부장을 알게 되었다. 리훈부장의 알선으로 그는 하역부(装卸工)로 취직했다. 비록 한달 로임은 고작 900원에 불과했지만 그는 달갑게 현실을 접수하고 취직하였다.

“머리를 숙일 땐 숙여야 하지요. 한달 로임 3000원을 받을 때는 용돈이 그냥 모자라던것이 900원을 탔는데도 그냥 돈이 남았습니다. 아마 피땀으로 번 돈이여서 그런가 봅니다.”

서정철씨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감회깊게 말했다.

그는 자기가 명문대졸업생이고 예전에는 잘 나가던 관리일군이였다는것을 깡그리 잊은채 래일을 위한 초석으로 열심히 일하였다. 그는 하역부로 일하면서 대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배웠으며 종업원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되겠다는 경험을 터득하게 되였다.

그때 서정철을 회사에 입사 시켰던 리훈부장은 후날 서정철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서정철은 눈에 불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의욕으로 부글부를 끓고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 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가장 어렵고 추접한 자리에 배치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석달후 , 회사에서는 그를 생산관리부문에 옮기고 현장관리를 맡아하게 되였다.

얼마후 회사가 래서 교하서료회사 지앤이 (GNE)를 새로 설립하게 되자 그는 총경리 조리로 발령을 받았고 회사 설립부터 가동까지 전반과정을 눈과 몸으로 직접 익혀나갈수 있었다.

어느날 정도진사장은 서정철을 본 회사로 소환시키고 배운 전업을 써먹으라고 하였다. 2500여명 종업원을 갖고 있는 교하비닐박막은 전세계 비닐박막시장을 석권하고있는 세계최대의 회사였고 타포린업계의 <대학교>로까지 불리고있었다.

그는 타포린무역을 시작하고 대만, 한국, 일본 등 지의 무역인들과 거래하면서 무역인의 스타트를 산뜻하게 떼기 시작하였다. 하역부로 있었던 석달 경험은 그에게 보약이였다. 그에게는 어렵고 두려운 일이 없었다.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는 회사의 인정을 받았고 거래업체의 믿음을 샀다. 그는 거래업체에서 샘풀을 요구하면 한번 두번 심지어 30번까지 만들어 보내면서 주문을 따냈다.

교하비닐박막에서 열심히 타포린 무역을 하면서 무역업을 익혔던 서정철은 2004년 동료 3명과 합작하여 무역회사를 오픈하였다.

2007년, 그는 무역회사에 지분과 자기기 확보했던 가장 큰 바이어를 다 넘겨주고 독립의 길을 걸었다. 비록 회사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똑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동반자들을 대했기에 지금도 세사람은 <형님동생>하면서 절친하게 보내고있다.

"아직 성공했다고는 할수 없지만 여기까지 온걸 돌이켜 보면 남에게 베풀고 욕심을 버린게 가장 큰 성공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철씨의 속심말이다.

교육세가의 자식이여서 그런지 그의 온몸에는 인테리의 수양이 푹 배여있었다. 그는 취재를 받으면서도 기자의 속기를 헤아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말고를 터갔다.

취근 서정철씨는 자금루적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자 림운비닐박막회사를 정식으로 오픈하고 생산과 수출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림운>은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데 매우 깨끗한 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깨끗한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고 항상 자식들을 가르쳐 왔다. 자궁암에 걸려 석달밖에 못산다는 판결을 받고도 강의하고 쾌활한 성품으로 병마를 이겨내고 3년이 지난 오늘도 날마다 손군들하고 통화하시면서 만년의 행복을 누리시는 그의 어머니는 어쩌면 그의 심목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바이어를 다 주고 나온 상황에서 새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그의 안면에는 수심이라고는 없다. 젊음이 자본이고 해내면 된다는 생각이 세포마다에 넘치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평생 아기자기 살아온 부모님들의 슬하에서 큰 소리 한번 못 듣고 살아왔고 언제 한번 누구를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150여만원을 투자하여 6000여평방메터 부지면적에 150여명 종업원을 거느린 사장이 되였음에도 그의 몸에는 겸손함과 부드러움이 배여있다. 종업원들을 최대한 레우해주려는것이 그의 소원이다. 음식, 숙박시설, 이 모든것을 그는 최고로 해주고있으며 어렵고 힘든 일은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있었다. 한달에 4-5차 생활개선을 시키고 돼지갈비를 푹 삶아다 먹고싶을 때까지 먹게 한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대비해 뜨거운 물로 항상 샤워할수 있도록 했다.

그는 달마다 한번씩 종업원에게 생일파티를 열어준다. 생일축하음악과 함께 서서히 울려퍼지고있는 사랑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애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떤 애들은 태여나서 처음 생일 케익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는 회의를 할 때마다 사장이 어떤 일을 더 해주었으면 좋겠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자기가 최선을 다하고있는것 같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많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베풀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세상 모든 일은 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서정철씨는 아버지가 항상 가르쳐 준 이 말을 자기의 인생좌우명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것이 곧바로 오늘의 주인공 서정철씨의 최대의 꿈이다.

큰 아들 서봉호(10살)와 늦둥이 딸 서유진(3세)을 거느리고 부모의 높으신 가르침을 항상 명기하며 이쁜 안해와 함께 세상 부럼없는 생활을 하고있는 서정철씨, 그는 자기의 회사도 가족처럼 편하고 행복한 터전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현재 서정철씨는 청도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으로 뛰면서 조선족사회에 두각을 내밀고있다. 경제위기의 충격속에서 많은 회사들이 주춤이고있는 마당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서정철씨, 우민족 기업인들이 새로운 비전으로 발전을 가져온다면 그보다 더한 기쁩은 없을 것이락 말한다.

연변일보 허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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