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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규억 - 평생을 교육사업과 인민에 헌신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1월29일 16시18분    조회: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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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기구수리기록책》을 펼쳐보며 회억을 더듬고있는 채규억로인

[길림신문 신정자 기자 2010-11-29]우리 신변에 종신토록 사회와 대중의 리익을 도모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로인 한분이 계신다.

그가 바로 길림성교육청 민족교육처 전임 부처장이고 정청급간부인 채규억(83세) 로인이다.

그는 통화시 교육국으로부터 《30년 교육사업 영예상》을 받았으며 리직후에도 장춘시 조선족 사회단체의 사업을 위해 기여가 많아 장춘시인민정부로부터 《장춘시우수사회단체사업자》란 칭호를 받아안았다.

감은의 마음 예서 키우기 시작

채규억로인은 자신이 사회와 대중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생각하게 되는것은 언제나 감은의 마음에서였다고 말한다.

채규억로인은 훈춘 하다문향에서 태여나 8세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그때 31세 인 어머니는 두 아들 (채규억과 5살짜리 남동생)을 데리고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두운 산길을 헤매며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 두 아들을 공부시켰다. 채규억 또한 어린 나이지만 어머니께 효도를 하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채규억로인은 자식들을 위해 풍상고초를 겪으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을 적신다.

채규억로인은 자신이 교원사업을 선택하게 된것은 계몽교원이였던 리승호선생님의 사상과 영향을 입게 된것이라며 감격해한다.

어린 시절 채규억은 여기저기 떠돌이를 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5학년부터 훈춘시 해성소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때의 담임은 리승호선생님이였는데 젊은 교원이였지만 여러가지 활동을 벌이는가운데서 학생들의 특점을 장악하고 개성을 발전시키는데 모를 박았다. 하여 채규억은 리선생의 고무격려하에 훈춘시(당시 도합5개 소학교였음) 주산시합에 참가하여 2등의 영예를 따내기도 했고 학급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벌일 때마다 사회자로 단련받기도 했다. 또 소학교를 졸업할 땐 가정경제난으로 국민고등학교 입학시험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집까지 찾아와서 시험에 꼭 참가해보라는 리선생님의 반복적인 설복에 못이겨 시험에 참가했더니 수험자가 도합 247명가운데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공부를 견지하였다. 공부에 열중한 그는 또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교원으로 되려는 꿈을 키웠다.

41년을 교육사업에 일체를

중학교를 졸업한후 그는 19세에 훈춘 하다문향 쌍신촌 민영학교 교원으로, 이듬해에는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뒤 선후로 훈춘초중, 연변2고중(현재 연변1중), 연변4고중(지점 훈춘) 등 학교들을 전전하면서23세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31세에 길림성교육청 민족교육과에 전근, 그 이듬해에 길림성 민족교육과 부과장으로 임명되였다. 34세에는 기관당총지 전직부서기, 42세에는 룡정《5.7》간부학교 교원, 43세부터 선후로 룡정혁명위원회 부주임, 룡정동성김시룡농업대학 부주임, 연길현사범반 학급담임교원 겸 물리학과 실험지도를 하였다. 51세에 또다시 길림성교육청에 전근되여 민족교육처 부처장, 기관당위 전직부서기, 기관당위 전직제2서기로, 57세에는 통화사범학원 당위서기로 있었다.

채규억로인은 60세에 길림성 교육청에 또다시 전근, 그 이듬해에 리직을 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어디에서 수요되면 어디로, 가는 곳마다에서 민족교육사업에 혼신을 불태웠다.

길림성 교육청에서 사업할 때 그는 매년 소수민족교육경비를 (길림성 산재지역소수민족학교만 상대로 한 경비임) 유용하게 지불하기 위해 그는 꼬박 4년동안 친히 하향을 하여 산재지역학교들의 상황을 료해, 조사하였는데 1년에 근 20여차씩 하향, 연인수로 손님 170여차 접대하였다. 그외 전화상담은 헤아릴수 없었으며 편지만도 1년에 150여편을 받았다. 자신의 깊은 료해와 세밀한 조사에 근거하여 그는 유수, 연하 등지에 중소학교를, 류하, 매하구에 중학교를 건축하는데 각각 10만원씩 보조금을 보내주었고 또 학교시설에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짬만 있으면 소수민족학교들을 시찰하고 학교발전에 관심과 정확한 지도를 하였다. 그리하여 민족학교운영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오늘날 유수, 매하구, 류하 등 조선족중소학교들에서 민족의 후대양성보금자리가 있게 되였고 민족교육을 발전시킬수 있게 된것은 당년 채규억처장의 적극적인 지지, 따스한 혜택과 갈라놓을수 없다.

일체는 인민을 위해 봉사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고 리직후 채규억회장은 《로간부대학》에 다니면서 보건, 가정용전기 등 훈련반에 참가하여 졸업증서를 4개나 탔으며 컴퓨터까지 사용할수 있다. 그는 정청급 로간부이지만 군중들과 고락을 함께 겪으면서 《뢰봉을 따라 배우는》 봉사활동에서도 언제나 앞장에 섰다. 그의 《전기기구수리기록책》에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개인집들의 주소와 고장이 난 라지오에 대한 기록과 수리상황이 기록되여 있으며 필요한 때는 집까지 찾아가서 수리해주군 하였는데 1994년에는 220여차나 수리했다. 어떤 때에는 청년들과 함께 거리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는데 록음기거나 라지오를 들고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으면 고객들이 남기고 간 주소에 따라 찾아가서 봉사해주군 하였다.

2001년부터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회장 직무를 맡고 6년동안 력임하면서 동북3성을 비롯한 무순시, 대련시, 길림시, 할빈시 등 지역에서 로인사업경험교류회를 열어 로인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또 변철호로인, 김수영로인과 함께 로인들의 건강과 생활에 유익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로인생활》이란 잡지를 4년동안이나 꾸려 로인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였다.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 로인은 친히 인쇄소, 우편국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잡지들을 꼭꼭 부쳐보내 로인들이 제때에 잡지를 받을수 있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채회장은 또 건강하게 장수하는것이 가장 중요한것이라며 필요한 때는 로인들에게 강의도 했다.

채규억로인은  고령임에도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위원회, 장춘시조선족부녀협회,《장백산》잡지사, 장춘시조양구조선족로년협회 등 조선족사회단체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협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리하여 장춘시인민정부로부터 《장춘시우수사회단체사업자》란 칭호를 받았고 길림성, 장춘시 차세대관심위원회로부터 《영광상》,《공헌상》을 받아 안았으며 2006년 장춘시로인협회는 《시민족단결모범선진단위》로 명명받았다.

하지만 그는 《저는 기실 해놓은 일이 없습니다. 감은으로 일체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려고 노력했을뿐입니다》라며 후회없는 여생을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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