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배규식 박사를 위시한 조사연구팀(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박사, 연변대학교 안명철 교수, 방미화 박사 동참)이 중국의 베이징, 샹하이, 칭다오, 연변(연길, 화룡, 용정), 장춘, 심양, 대련 등 조선족 청년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도시를 순회하면서 112명의 조선족 청년들을 면담, ‘조선족 청년들의 중국 내 이주와 노동시장 진출 연구’를 펼쳤다.
이와 관련 기자는 얼마 전 여의도에 있는 한국노동연구원 사무청사에서 배규식 박사를 인터뷰했다.
중국 도시 진출 조선족청년들의 노동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연구나 중국 조선족 집거지에 대한 연구가 많은데, 재중 조선족 동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재중 조선족 청년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아서 이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다. 또한 재중 조선족 청년들이 부모 세대들과 달리, 산업화된 중국에서 새롭게 정착해서 사는 방식이 재중 조선족 동포들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획했다.
조선족청년들이 어떤 국적의 기업에 많이 취직했고 그 이유는?
조선족 동포청년들이 가장 많이 취업해 있는 기업은 아직도 재중한국기업이었다. 물론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베이징, 칭다오, 샹하이, 텐진 등이 그러한 것 같았으나 일본기업이 많은 대련 등에서는 일본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이 많은 등 지역에 따라 적지 않는 차이가 있었다. 조선족 동포청년들이 재중 한국기업에 많이 취업한 이유는 한국기업이나 조선족 동포 청년 양측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기업은 중국땅에 투자를 한 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사무직, 전문직, 관리직 등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되고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조선족 청년들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해 왔다. 또한 조선족 청년들로서도 한국기업에서 비교적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난데다 조선족 청년만이 한국기업의 수요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에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워서 한국기업에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양자 사이에 갈등이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적, 공생적인 협조관계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기업에 취업한 상당수 조선족 청년들은 일본유학을 다녀왔거나 일본어를 능숙하게 잘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본기업들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잘 하고 일본문화에 익숙한 조선족 청년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일본어를 가르쳐왔고 일본어를 잘 하며, 일본유학생 출신들이 많은 조선족 청년들이 일본기업에도 취업하기 유리한 조선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대련, 심천 등지에서는 일본기업에 취업한 조선족 청년들이 많은 것이 당연했다.
조선족청년들과 한국기업의 상호의존 관계가 지속될 것인가?
몇 년 전부터 그 의존 관계가 일정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기업들은 중국시장을 더 깊게 파고 들기 위해 그리고 중국고객이나 관계자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한족 가운데 한국어를 잘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마침 한국에서 유학을 한 한족학생들이 중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유학을 한 한국학생들도 한국기업에 취업하려는 조선족 청년들에게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과거 보다 중국 공무원, 사업단위, 대기업들의 월급이 오르고 대우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중국의 위엔화 가치도 높아져서 과거와 같이 한국기업에 다니는 매력이 떨어졌다. 한국기업에서 부장까지 승진하기도 어려운 한계에 따라 한국기업에서 장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인식, 한국기업에서 조선족 청년들을 필요에 따라 한국식으로 힘든 일을 할 것을 요구하고 정작 대우는 한족들에게 잘해 주거나 같게 대우하는 등 문화적 갈등경험도 한국기업 취업을 선택하는 선호도를 떨어뜨렸다. 조선족 대졸자들이 여전히 한국기업에 많이 취업하고 있으나 요즈음 조선족 대졸자 중 명문대 출신들은 한국기업을 잘 가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기업들이, 특히 내로라하는 한국대기업들이 조선족 대졸자 중 명문대 출신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좀 더 대우를 개선하고 승진의 길을 더욱 넓게 뚫어주고, 국제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적극 보장해 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언어우세 등 조선족 대졸자들의 취업 우세 여전한가?
조선족 젊은이들이 재중 한국기업이나 일본기업에 취업할 때 언어능력, 문화적 수용성, 의사소통능력에서 한족들에 비해 앞서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월급이 약간 높고 대우가 나은 일본기업이나 한국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유학한 한족 청년, 중국에 유학한 한국청년들이 한국기업 취업을 두고 재중 조선족 청년들의 경쟁자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조선족 대졸자 청년들이 중국기업, 중국의 공무원, 사업단위나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능력, 중국어능력 등에서 한족들보다 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언어능력만이 아니라 전문성이나 숙련도, 그리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익혀서 쌓은 귀중한 경험 등에서도 조선족 청년들이 한족보다 앞서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조선족 청년들이 언어능력, 전문성과 경험 등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쌓지 않으면 재중 한국기업에서도 중국기업에서도 경쟁력이 없어 취업을 하기 어렵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좋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한중 수교 후 조선족 중장년층의 상당한 인원이 돈 벌러 한국으로 가면서 혼자 혹은 조부모에게 맡겨진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하고 있는데 이들의 상당수의 학력이 전보다 못할 뿐 아니라 이렇게 큰 자녀들의 사고방식이 안이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재중 조선족 청년, 부모들이 좀 더 분발하고 세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중국에서 대졸자가 한해에 700만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취업이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가운데는 부모들의 살뜰한 보살핌과 지원속에 좋은 교육을 받고 고급인력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조선족 청년들도 적지 않다. 이들 전문 혹은 고급인력으로 교육받거나 훈련된 인력은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일본기업은 물론 다국적 기업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런 조선족 인재들은 동아시아에서 각 문화를 비교적 잘 이해하면서도 편중되지 않는 시각과 수용성을 갖고 있어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인재로 자리매김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와 같이 대학만 졸업하면, 한국기업이나 일본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국,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의 노동시장에서 대졸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설픈 언어능력으로는 이제 통하기 어렵다.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를 수준 높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언어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언어능력은 수단에 불과하다. 대학의 전공을 발전시키거나 자기 나름의 전문성, 숙련도, 풍부한 경력 개발을 통해서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학만 가면 그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기 분야에서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조선족 청년들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대졸, 석사 등 학력만 높인다고 언제나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지는 않다.
조선족청년들의 보편적 직장생활 만족도는 어땠나?
한국기업, 일본기업에서의 만족도는 생각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중국기업이나 공공사업단위에 취업한 조선족 청년들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다. 한국기업이나 일본기업에서는 승진이나 발전가능성의 한계 때문에, 주어진 역할의 한계 때문에 그리고 한국기업의 경우 일은 한국사람처럼 대우는 한족과 같게 해 주는 이중성 때문에, 그리고 중국기업이나 공공사업단위에서는 한족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중국어 언어능력, 관계의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고 그로 인해 직장생활을 그리 만족스럽게 보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도시 진출 조선족청년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었나?
조선족 청년들은 승진과 생애경력이 보장되는 직장을 원하고 있지만, 중국과 같이 동적으로 변화하고 빨리 성장하거나 망하는 등 부침이 심한 환경에서 그런 보장을 해 주는 직장을 구하기는 공무원이나 일부 공공사업단위를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중국의 대졸 청년 노동시장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경험과 숙련, 전문성이 떨어지는 평범한 대졸자들은 넘쳐나는데 비해, 정작 경력이 있고, 전문성과 숙련도가 높은 경력자들은 오히려 부족하여 이들 사이의 임금과 대우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데, 조선족 청년을 포함한 중국의 대졸 청년들이 이상은 높으나 실제 직장에서 부딪치는 현실 사이에 격차가 크기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 불만족, 기회의 부족 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족 청년들은 여기에 더하여 한국기업에서도 중국기업에서도 자주 중간적인 존재로서 인식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중국과 한국, 일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잘 살리기 보다 오히려 그 약점이 드러나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조선족 청년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 위해 언어능력개발,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적극적인 태도, 전문성 갖추기 등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족청년들의 민족정서와 민족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도시에 진출한 조선족 청년들은 한국기업에 취업을 하고 대도시의 조선족 신집거지역(베이징 왕징, 칭다오 이창구 등 지역)에 거주하여 한국인들 그리고 조선족들끼리 접촉이 많은 경우에는 민족정서, 문화 등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한국의 현대문화 특히 노래, 드라마 등을 한국의 젊은이들과 같이 공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국기업에 취업한 조선족 청년들을 포함하여, 한국인 혹은 같은 조선족과의 접촉이 적고 한족과의 접촉이 많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조선족 청년의 민족정서가 약화되고 한족사회에 동화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었다. 조선족 청년들은 몸담고 있는 회사나 조직에서 한국인 혹은 조선족과 접촉하는 경우 이외에도 조선족 신집거지에서 접촉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 연변, 흑룡강성, 요녕성의 조선족향이나 진에서와 같이 조선족 사이의 긴밀한 유대를 기반으로 한 언어와 문화, 관습이 공유되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교동창이나 친한 조선족 선후배 사이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고 조선족 청년들 사이에 정보, 협력을 위한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다지만, 주류인 한족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해지면서 과거에 조선족 집거지에서 조선족 중심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약화되고 도시의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조선족 청년들의 다수가 자녀를 낳은 경우 한족학교에 보내겠다고 답하는 것은 대도시에 조선족 학교가 없는 사정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설령 조선족 학교가 있어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경우에도 조선족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한족학교에 보내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것은 도시에 진출해 살고 있는 조선족 청년들이 중국어의 능통한 활용, 그리고 한족과의 네트워크가 중국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선어를 배우는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경우 향후 현재 조선족 청년들의 자녀들이 조선어를 배우지 않는 경우에는 그리고 조선족 집거지역도 없거나 약하고, 한족과의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된 가운데 살아가는 경우 조선족의 한족화, 한족동화는 다음 세대에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운데에서도 재중 조선족 청년가운데에서 글로벌 인재 혹은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인재로 크는 사람들은 한족 사회에 일방적으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의 경제적 분업과 경제적 상호의존 속 통합이라는 지역화상을 이용할 수 있는 엘리트들은 여전히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조선족의 정체성과 강점을 살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선족 청년들 가운데 한국이나 한국기업과 관련을 갖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현재 조선족의 정체성이나 언어, 문화를 일정하게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대졸 출신으로 중국의 대도시, 연안도시에 진출한 조선족 청년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갖기는 하겠지만, 신집거지와 같이 모여있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강력한 결집력을 가진 사회로 뭉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의 왕징이나 청도의 이창구와 같이 조선족들이 신집거지에 모여사는 현상도 동시에 지속될 것으로 본다. 현재 도시에 사는 조선족 지도자들이나 기성세대가 사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조선족 청년들이 중국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도 조선족 청년들의 나름대로 독자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도시에 사는 조선족 지도자들이나 기성세대들이 조선족 청년들이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 포럼 등을 통해서 미래 중국사회, 개인의 발전 전망을 열어주면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도록 하는 것을 적극 도울 때 가능할 수 있다. 가령 조선족 청년포럼 등을 열어 각계, 각국의 다양한 지도자,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연이나 발표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지적 리더십을 구축하고 발휘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단순히 중국 주류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통합되고 긴밀화되고 있는 한중일 그리고 남과 북 사이에서 조선족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매개역할, 상호 이해하면서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언어능력, 전문적 역량, 시각을 갖추어 나간다면,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동아시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핵심적인 지위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조선족청년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조선족 청년들에게 쉽지 않겠지만, 한국어, 중국어, 일어, 영어 중 4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언어능력, 동아시아 3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 그리고 자기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는 어려운 노력을 통해서, 한, 중, 일의 어느 나라 청년들도 하기 어려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문하고 싶다. 조선족이라는 것을 약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강점이 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중국의 도시에 진출한 조선족 청년들이 개인적으로는 물론 보다 집단적으로 진로, 지위, 역할을 개척하려는 노력들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집단적 학습, 공동의 네트워크마련, 전문지식에 대한 접근 그리고 앞선 선배들이 자문이나 멘토역할)을 이루고 장벽이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 선배, 전문가, 기업가, 고위관리자들의 지혜와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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