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피해지서 봉사하려 사표
"한국이 우릴 품어줬듯이 이젠 우리가 이재민 도울 때"
"비극을 뻔히 보고도, 남의 나라 일이라고 못 본 척해도 될까요? 눈을 감아도 참혹한 모습이 떠올라 가난한 중국동포(조선족)들도 생업을 접고 이곳에 함께 왔습니다."
21일 '긴급호소문'이라고 적힌 한 통의 문자가 기자에게 날아왔다.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복지시설 '지구촌 사랑 나눔'의 김해성(53) 목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였다. 김 목사는 "태풍 하이옌으로 눈물의 땅이 된 필리핀 타클로반은 현재 아무도 돕지 않는 적막한 곳이며, 아직도 구조대원이 손을 쓸 수 없는 아수라장"이라고 썼다. 그는 지난 12일부터 열흘째 타클로반 아니봉 마을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김 목사와 함께 필리핀을 찾은 이들은 식당, 염색 공장 등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중국동포 5명이다. 이들은 김 목사가 필리핀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따라나섰다. 2005년 한국에 온 박성화(여·51)씨는 "남편, 자식 모두 놔두고 혼자 돈 벌러 한국에 왔을 때 정말 춥고, 배고프고, 무서웠다"며 "고마운 한국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영 이재민의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를 잘하는 조경철(54)씨는 "여기선 10만원이면 150명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할 수 있더라"며 "물도 마음 놓고 못 마시는 게 20년 전 내 모습을 닮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들은 매일 2000명의 주민에게 닭죽을 나눠주고 있다. "아이들이 그릇과 비닐봉지에 닭죽을 받아들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라며 넙죽 인사한다"고 김 목사는 전했다. 그는 "도움을 받기만 하던 중국동포들도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 걸 깨닫고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계창주(52)씨는 "모두가 다 날 무시할 때, 따뜻하게 품어준 단 한 명의 한국인 덕분에 희망을 갖고 살았다"고 했다. 계씨는 어눌하지만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한테 '틴독(현지어로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말하면 '타클로반!'이라고 대답해요. 보잘것없는 저로 인해 희망을 갖는 아이들을 보니까 가슴이 벅차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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