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정부는 위명 여권 사용자가 적발되면 법정에 세워 형사 처벌을 하고 추방해 10년간 국내에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많은 중국동포들이 어떻게든 적발되는 것을 피하려고 음지로 숨어들고 있고, 상당수의 중국동포가 '과거'에 발목이 잡힌 채 불안한 나날 속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국적 잃고 가족과도 생이별 = 한국에 귀화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던 중국동포 출신 이송화(40·여·가명) 씨에게 2013년은 악몽 같은 한 해로 기억된다. 위명 여권을 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붙잡혀 간 것이다.
법무부는 이 씨의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출국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씨는 이미 중국 국적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국제 미아'가 된 이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귀화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내 강제추방은 일단 면했다. 법무부가 소송 기간 강제추방 집행을 유보한 것이다. 1심에서 지고 최근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 상고심에서 지면 이 씨는 한중 양국 국적을 모두 잃고 어느 곳도 갈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귀화를 했다가 위명 여권 사용 전력 때문에 국적을 박탈당한 박옥화(40·여·가명) 씨도 이 씨처럼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잃은 경우다. 이 씨도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국적을 한 번 포기한 이들에게 좀처럼 다시 국적을 내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정부는 일단 이들을 출신 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중국 등 원래 국적을 이미 포기한 상태에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 이들은 무국적자로 살아가면서 당국의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명 여권 문제 때문에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동포 최향옥(70·여·가명) 씨는 남편, 자녀와 함께 몇 년 전 영주권을 얻어 한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위명 여권 전력이 드러나 지난달 출입국 당국에 붙잡혀 중국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중국 국적이 있어 돌아갈 나라가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지만 가족이 모두 한국에서 새 터전을 마련한 상황에서 홀로 중국에서 최소 10년을 살아야 할 처지다.
◇ "걸리느니 차라리 불체자로"…불법의 악순환 = 10년 전, 20년 전의 일이 언제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 모른다는 두려움은 중국동포사회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12년 정부가 얼굴과 지문 인식 시스템을 전면 가동하면서 과거 두 개 이상의 여권 정보를 썼던 중국동포들은 출입국심사대를 거쳐 외국에 나가는 일은 꿈도 못 꾼다.
정동주 행정사는 "우리 사무실을 통해 한국 국적을 딴 중국동포가 뒤늦게 위명 여권을 쓴 적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중국에 갔다 올 수 있느냐고 묻기에, 나가지 말고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권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합법 체류 신분임에도 과거 위명 여권 문제가 드러날까 봐 기한 내에 출국하지 않고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방문취업(H-2) 등 합법적인 비자를 얻어 국내에 들어왔지만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체류 기간을 연장하거나 중국으로 귀국하려는 과정에서 위명 여권 사용 전력이 드러날까 봐 아예 기한 내 출국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출입국사무소나 공항 등 관청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 행정사는 "위명 여권은 사건 발생 시점이 언제든 시효 없이 처벌한다는 것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장"이라며 "정상 비자를 받고 들어온 사람도 주변 사람이 공항 같은 곳에서 위명 여권으로 잡혀 10년 동안 못 들어오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아예 장기 불법체류의 길을 택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장기 불법 체류자로 지내다 보면, 생활에 여러 신분상의 제약이 따르고 정신적으로도 위축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봉순 재한조선족연합회 회장은 "박춘봉 사람 같은 경우도 위명여권을 쓴 적이 있고 불법체류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며 "불법체류가 아니고 가족과 함께 잘 살고 있었으면 이런 사건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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