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국내 거주 중국 동포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의 하나는 바로 자녀 교육이다.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낯선 세상과 맞닥뜨려야 하고, 이들을 돌봐야 할 부모는 녹록지 않은 교육 현실에 신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동포들은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녀 교육에 더 힘을 쏟는다.
◇ 언어 장벽과 생활고에 '숨어버리는 아이들'
1층 한 켠에 있는 교실 세 곳에서는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한 교실에서는 풋풋한 얼굴의 10대 4명이 칠판에 쓰인 '반갑습니다'를 따라 읽고 있었다.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곳의 수강생은 70% 이상이 조선족 청소년이다. 한국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던 가족의 초청으로 최근 1년 내 입국한 아이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8월 엄마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동미선(18·여) 양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답답했는데 이곳에서는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동 양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한족 학교에 다녔고, 가족 대부분이 한국에 건너가 있다 보니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중도입국한 중국 동포 청소년 가운데 동 양과 비슷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많은 동포가 한국으로 오면서 현지 동포사회의 해체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조선족 학교가 줄어드는 데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가 많다 보니 특히 젊은 세대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가 서툰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외부 생활 자체가 어렵고, 또래 집단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 부모가 일을 나가면 종일 집에 홀로 남겨지는 아이가 많다.
조선 동포 청소년을 위한 주말학교를 운영하는 문민 재한동포교사협회장은 "말이 안 통해 지하철조차 탈 수 없는가 하면 학교를 가려고 해도 한국어가 안 되고, 입학 절차가 복잡해 집에서 숨어 지내는 아이가 많다"고 전했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 거주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제출해야 하는 데다 학교마다 요구 서류가 달라 고충을 호소하는 동포가 적지 않다.
어렵사리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언어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는다. 듣고 말하는 데 문제가 없는 아이들도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해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이들은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가 없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버거워한다"며 "고학년일수록 그런 현상이 심하다"고 전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넘어온 동포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자녀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
지난해 말 11살 된 손자를 한국으로 데려온 이모(70·여) 씨는 "집에 볼 사람이 없어서 3월에는 학교를 보낼 생각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교육청에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라는데 식구들이 다 일이 바빠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 학교 밖 동포 청소년들의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인 데도 학교 밖에 머무는 조선족 청소년이 상당수에 이른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는 뜻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거주하는 만 19세 미만 조선족 동포 4만 3천890명 가운데 취학 연령대인 만 7∼18세 청소년 수는 2만 6천299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교육부 조사 결과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조선 동포 학생 수는 9천215명에 불과했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보면 세 명 중 두 명은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는 셈인데, 이마저도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부처별로 집계 방식이 다르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인가 학교 재학생과 불법체류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방치되는 동포 청소년들의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스마트폰, 인터넷, TV 등에 빠져들곤 한다. 심각한 중독 증세에 우울증까지 더해져 관련 기관의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산업 현장으로 내몰리는 아이들도 있다.
무지개청소년센터 박상현 교사는 "경제적 이유로 공부보다는 취업에 관심을 갖는 동포 청소년이 많다"며 "교육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바로 일에 뛰어들 경우 그들의 부모처럼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 '한-중 잇는 다리로'…"정체성 존중해야"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은 각 교육청과 연계한 위탁기관, 민간 단체, 대안학교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동포 청소년의 특수성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동포 청소년에게 일방적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문민 회장은 "동포 아이들은 한국과 중국을 모두 잘 알아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면서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로 성장하려면 아이들을 한·중 양국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인실 경인교대 한국다문화교육연구원장도 "다문화 교육은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동화 교육보다는 조선족 동포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동포 청소년만을 위한 학교를 세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을 중심으로 법무부 퇴직 공무원들과 중국에서 교사로 일했던 동포들이 의기투합해 올 상반기 조선족 밀집 지역인 서울 대림동에 대안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 원장은 "동포 교사들이 한국어부터 교과 교육까지 조선족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칠 계획"이라며 "동포 아이들이 한국의 제도권 교육에 잘 적응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