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촌 '혁명렬사비'도 심하게 풍화돼
(흑룡강신문=하얼빈)윤운걸 길림성 특파원="'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이하 기념비로 략칭) 주변 란간이 망가지고 청소도 하지 않아 쓰레기가 흩날리는가 하면 층계 틈새에서 풀이 자라 보기 흉하다. 뿐만 아니라 청산촌 '혁명렬사비'(이하 렬사비로 략칭)도 세월의 비바람속에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풍화되여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안인옥 연변광영원 전임 주임이 제보했다.
추석을 맞이하면서 안인옥 전임 주임의 제보대로 기념비를 찾아보았더니 대문 동쪽 벽 타일이 볼품없이 떨어져 흉물스러웠고 기념비로 올라가는 통로는 쑥대밭에 덮여 있었으며 계단을 오르기 전 마당은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여 락엽과 함께 이리저리 흩날렸고 계단 틈새에는 잡초가 자라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기념비에까지 올라가니 어느때 헌화했는지도 모를 마른 꽃다발이 이리저리 뒹굴었고 바닦 타일도 몇곳이 깨여졌는데 보수하지 않았다. 더우기는 란간도 끊어졌거나 떨어진채로 방치되여 있었다.
또한 렬사비는 잡초가 자라 쑥대밭을 방불케 했고 비석자체가 풍화되여 원형을 거의 찾아볼수 없었다. 지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혁명렬사비'라는 글씨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였다.
청산촌 박죽철농민은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청산촌 구역이지만 산은 림장의 소유로 되여 있다. 그러나 림장에서 전혀 관할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우리 촌에 관할권을 주면 잘 관리할수 있다. 우리는 관리비도 요구하지 않으며 관할권만 주면 로인협회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겠다"고 말했다.
알아본데 의하면 이곳은 중국내 관광객은 거의 찾지 않지만 해마다 관광 성수기이면 한국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이 기념비는 일찍 중국 중앙정부의 비준을 거쳐 2001년 8월 31일에 준공되였다. 또한 기념비 자리에 워낙 렬사비가 있었는데 기념비가 세워지기로 결정되면서 렬사비는 기념비 동쪽 평지에 옮겨졌다.
자료에 따르면 청산리전투 또는 청산리대첩은 1920년 10월 김좌진, 라중소, 서일, 리범석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을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련합 부대가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 천수평, 완루구 등지의 10여차례로 간도에 출병한 일본제국 륙군과 전투를 벌인 총칭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