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지난해 8월 23일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의 한 중국음식점에 중국인 손님 네 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음식점 주인인 화교 왕모(53)씨를 찾아 자신들을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라고 소개하고 왕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중국인 Y(46)씨는 금괴 10개를 왕씨에게 보여주며 "인천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땅을 파는 작업을 하던 중 항아리에 담겨 있는 금괴를 발견했다"고 운을 뗐다.
Y씨는 왕씨의 반응을 살피며 "120g짜리 금괴 120개, 520g 상당의 금불상 6개를 시세보다 싼 2억4천만원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금'을 좋아하는 민족적 특성을 자극한 것이다.
항아리 속에서 금괴와 함께 발견된 유서도 보여줬다.
항아리를 땅에 묻은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는 '가족과 모두 연락이 안 돼 금괴 등이 들어 있는 항아리를 땅에 묻으니 발견한 사람이 가족에게 찾아주거나 좋은 일에 써달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거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양씨는 금괴(순도 99.7%) 일부를 즉석에서 쇠톱으로 잘라 왕씨에게 "감정해보라"고 선물로 주는 선심을 쓰기도 했다.
왕씨는 "현재 현금이 없다"며 나중에 다시 거래할 것을 제안했다.
일단 음식점을 빠져나온 Y씨 등은 한 달여만인 9월 21일 음식점을 다시 찾아가 거래를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Y씨 일당의 뜻대로 일이 처리되는 듯했다.
문제는 왕씨가 2014년 부산에서 비슷한 수법을 사용하던 중국인 사기단이 경찰에 검거된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그해 10월 28일 화교 장모(60)씨가 운영하는 부산시 남구의 한 중국집에서 장씨에게 금괴처럼 도금한 공예품 100개와 금불상처럼 도금한 공예품 2개를 주고 2억원을 받아 달아난 중국인 2명이 검거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기임을 직감한 왕씨는 이날 거래를 거절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거래를 이루지 못한 Y씨 일당이 금괴 등이 든 가방을 차량 트렁크에 넣으려던 순간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압수된 금괴 등은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
Y씨 일당은 지난해 8월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화교를 대상으로 가짜 금괴·금불상을 진품으로 속여 판매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40여일 동안 호텔에 함께 머물면서 범행 대상이 될 화교를 물색했다. 서점에서 화교명단 책자(중국상인회명부)를 구입하기도 했다.
국제 택배를 통해 중국서 들여온 금괴와 금불상은 구리와 아연으로 만든 3천원 상당의 값싼 공예품에 불과했다.
법원은 이들의 죄질이 중한 것으로 보고 네명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대전지법 형사1단독 채승원 판사는 가짜 금괴·금불상, 유서 등을 미리 준비한 뒤 범행 대상자를 물색하는 역할을 맡은 Y씨 등 2명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나머지 공범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년 2월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채 판사는 "국내 거주하는 불특정 화교 다수를 범행대상으로 물색하는 등 범행 수법이 대담하고 치밀하다"며 "한국과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들과 화교들 사이에 불신을 가져옴으로써 사회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책임회피에만 급급할 뿐 반성하는 태도가 전혀 엿보이지 않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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