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북한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을 국내로 밀반입해 투약하거나 판매한 탈북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유통한 필로폰은 최소 3만명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분량으로 확인됐다.
필로폰 공급처는 주로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조선족이었고 북한 주민이 직접 가담한 정황도 나왔다. 실제 북한산 필로폰의 다량 유입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이용일 부장검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탈북자와 조선족 등 13명을 구속기소하고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탈북자만 총 16명이다.
이들의 필로폰 밀반입, 판매·투약 행위는 2014년 2월부터 최근까지 2년에 걸쳐 집중됐다.
‘돌비늘’로 불리는 운모판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필로폰에서 나오는 연기를 여기에 담아 코로 흡입하게 된다.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탈북자 최모(53·구속기소)씨는 작년 9월부터 올 2월 사이 필로폰 140g을 들여와 이 가운데 120g을 주로 국내 정착한 탈북자 동료들에게 판매했다. 그가 들여온 필로폰은 4천600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검찰은 최씨가 두만강 접경지역에서 북한 주민을 접촉해 필로폰을 사들인 것으로 파악했다.
탈북자 조모(58·구속기소)씨는 중국 단둥에 연고를 둔 조선족 백모(54·구속기소)씨로 부터 필로폰을 구입해 탈북자 사회에 유통했다.
검찰은 여러 정황상 이들이 취급한 필로폰이 북한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조씨는 검찰 조사에서 "최씨가 북한산(産) 필로폰을 구하러 중국에 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복수의 탈북자로부터 "함흥·청진 등 함경도 지역에서 생산된 필로폰을 단둥으로 운반해 거래하거나 북-중 국경지역 브로커를 통해 두만강을 건너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진술도 나왔다.
인구 250만명의 중국 최대 국경도시인 단둥을 비롯해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 하구 등 접경지역은 북한산 마약의 대표적인 거래 루트로 꼽힌다.
다만, 검찰은 북한산 필로폰의 원제조자와 유통 주체는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약사범들 사이에 북한산 필로폰은 순도가 높아 환각 효과가 좋고 오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제품의 2배 이상으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데도 수요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짝퉁'이 유행한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피의자 중 유일한 한국인인 최모(30·구속기소)씨 역시 탈북자를 사칭해 가짜를 팔다가 적발됐다. 그는 조선족으로부터 출처 불명의 필로폰을 1g당 15만∼25만원에 산 뒤 북한산으로 속여 50만원에 팔아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일부 탈북자 사이에 필로폰 투약이 꽤 널리 퍼졌던 사실도 확인됐다.
최씨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부인 김모(45·구속기소)씨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했다. 조씨는 아들(29·불구속 기소)과 필로폰을 나눠 흡입했다.
심지어 여성 탈북자 강모(33·불구속기소)씨는 필로폰 투약 일주일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국내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약이 부족해 필로폰이 마치 진통제처럼 쓰이기도 하고, 경조사 때는 축·조의금 역할을 하는 등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탈북자는 필로폰 밀거래·투약이 큰 죄가 되는지 몰랐다고 얘기하는 등 준법의식에 문제를 드러냈다"며 "마약범죄의 중독·위험성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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