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그 후]
폭염 속 통학버스에 방치… 아직도 유치원생 부모는 웁니다
주임교사 執猶, 원장도 징계 면해… 유치원 폐쇄 명령도 취소
중국 동포라 복지혜택도 못받아… 간병비 등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
"'엄마~'라고 한 번만 불러주면 좋겠어요."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동구 전남대병원의 한 격리 병실. 이모(38)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말없이 누워 있는 아들 최모(5)군의 손을 잡고 눈물을 떨궜다. 최군은 지난해 7월 불볕더위 속 유치원 통학버스에 7시간 넘게 방치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설 명절 다음 날인 29일이면 사고를 당한 지 6개월이 된다.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눈 깜박임과 하품, 재채기 같은 무의식적인 움직임 외에는 외부 자극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가 호흡을 하고 있을 뿐 음식은 액체 형태로 코에 꽂힌 튜브를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지난해 7월 유치원 통학버스에 7시간여 동안 방치됐다가 의식불명에 빠진 최모군이 23일 전남대병원 격리 병실에 누워 있다. 눈 깜박임, 재채기 같은 무의식적인 움직임만 보이는 정도다. 최군의 어머니 이모씨는“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는데…. 꼭 깨어날 걸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최군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 지난해 10월 격리 병실로 옮겨졌다. 장기간 입원해 있는 사이 수퍼박테리아의 일종인 VRE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에 감염돼 격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고열과 뇌 손상을 동반하고, 심장과 위장 기능이 떨어져 하마터면 생명의 끈을 놓칠 뻔했다. 이씨는 "얼마 전까지도 아이가 수시로 발작을 일으키거나 강직 증세를 보이고 음식물을 토하곤 했다"며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6개월 전 사고 당일 아침 최군은 평소처럼 집 앞에서 배웅하는 엄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광산구의 한 유치원으로 가는 통학버스에 올랐다. 갖고 싶어하던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을 받은 이후엔 응석을 부리지 않고 제법 의젓하게 굴었다고 한다.
오전 9시 10분쯤 유치원에 도착한 버스엔 어린이 9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인솔 교사 정모(29)씨는 먼저 내린 아이 8명만 데리고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차 안에 남은 아이가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차 밖에서 고개만 안쪽으로 넣어 훑어봤던 것으로 드러났다. 버스기사 임모(52)씨도 차량 외부 세차를 하고, 오전 9시 50분쯤 유치원 인근 대로에 버스를 주차했다. 7시간여가 지난 오후 4시 30분쯤 버스로 돌아온 임씨는 낮 최고기온이 35.3도까지 치솟은 폭염으로 달아오른 버스 안에서 쓰러져 있던 최군을 발견했다.
"겁이 많은 아이가 버스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울음을 삼키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이씨는 "이런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지 기약이 없지만, 희망을 포기할 순 없다. 아이에게 약속한 장난감을 사줄 날이 꼭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6개월 동안 하루 24시간 내내 아들 곁을 지킨다. 치료비는 버스공제조합에서 대주고 있지만 간병비 등은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이다. 광주의 한 전자제품 부품 생산 업체에서 월 250만원 안팎을 받고 일하는 최군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생활을 꾸리기가 힘겨운 형편이다.
중국 동포인 최군의 부모는 중국에서 결혼을 하고 친지가 있는 광주로 와서 정착해 아들 둘을 낳았다. 한국 영주권을 신청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국적이 중국이어서 현 국내 복지제도로는 마땅히 지원받을 길이 없다. 사고 직후 이어졌던 민간단체 등의 도움도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최군의 동생(3)은 고모가 돌봐주고 있으나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광산구 관계자는 "공공복지 지원은 어렵지만 민간단체들과 연계해 피해 어린이와 가족에 대한 후원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후 검찰은 유치원 인솔 교사와 버스기사, 주임 교사를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인솔 교사에게 금고 8개월, 버스기사에게 금고 6개월, 주임 교사에게는 금고 5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광주교육청은 해당 유치원에 폐쇄 명령을 내리고, 원장과 주임 교사에 대해 해임 처분을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해임 처분 무효 결정을 내렸다. 해당 유치원 원장이 먼저 교육청에 교원 징계 요청을 하고, 교육청이 징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유치원 원장이 '나를 징계해 달라'고 교육청에 요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원은 유치원의 폐쇄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였다. 현재 해당 유치원은 정상 운영되고 있으며, 원장과 주임 교사도 근무를 하고 있다.
이씨는 "제 아이는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데, 가해자 쪽 처벌은 너무 가볍다"면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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