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 2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한 젊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전달받은 체크카드로 범죄 피해 금액을 꺼내는 이른바 '인출책'이었다. 그는 인출을 지시받은 카드 13장을 갖고 있었다.
붙잡힌 강모(19)씨는 전날 한국에 입국한 대만 국적이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전화로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70대 노인을 속이려 한 보이스피싱 범죄 시도가 있었다. "계좌가 도용돼 위험하니 돈을 인출해 집안에 두라"고 속인 후 몰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이때 실제 집안에 들어가 돈을 들고나오는 역할을 맡은 조직원은 말레이시아인 Y(22)씨였다. Y씨는 자국 조직에서 미리 교육을 받고 한 달여 전 입국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밝혔다.
지난해 6월에는 중국계 보이스피싱 총책으로부터 여행 경비를 지원받아 국내에서 피해 금액을 훔쳐 전달하던 말레이시아 국적 L(30)씨가 강원도 강릉에서 검거됐다. L씨는 전주지법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이 한국에서 활동할 조직원으로 현지인을 파견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인출책과 전달책은 한국인이나 한국에 사는 중국 동포를 활용하던 종전 범행 수법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강씨 등의 사례처럼 보이스피싱 조직 입장에서 현지인을 한국에 보내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 상황에도 어두워서 효율성도 떨어진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을 파견하는 이유는 뭘까?
경찰과 전문가들은 일단 한국인 모집이 예전에 비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단순히 범죄에 활용될 통장만 제공해도 입건된다. 조직에 속아서 실수로 제공해도 예외는 없다. 인출책이나 전달책으로 활동하면 횟수나 가담 정도와 상관없이 구속될 정도로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관내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해 입건된 수만 1천200명에 달했다. 이중 인출책, 전달책으로 활동한 116명은 예외 없이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인출책이나 전달책은 대부분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가끔 가담 정도가 약한 경우 기각이 되긴 하지만 대부분 영장이 발부된다"며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면 쉽게 검거되고, 엄한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늘어나 한국인 포섭이 예전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정에 어둡다는 점도 조직 입장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범행 수행에는 불편하지만, 만약 잡혔을 경우 국내 다른 조직원이나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인 조직원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한 명을 잡으면 한국의 다른 점조직이나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되기 쉬운데, 혈혈단신으로 외국에서 온 경우에는 말도 잘 안 통하고 정보도 없어 수사 확대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직원이 인출한 돈을 빼돌리는 '사고'의 위험성이 낮다는 점도 장점이다. 연고도 없이 항공료와 숙박비 지원을 받아 한국에 온 조직원 입장에서는 배신을 결심하기 쉽지 않다. 실제 대만에서 온 강씨는 함께 한국에 온 다른 조직원 A씨가 입국 직후 군포시에서 검거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범행을 계속하라"는 윗선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체계를 잘 갖춘 해외의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이 현지인을 파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에서 오는 조직원을 빨리 검거할수록 피해를 줄일 수 있어서 범죄 첩보 수집을 통한 조기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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