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꽉 차고 북적였던 명동 거리가 내국인 위주로 사람이 많이 줄었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
“가게 매출은 둘째 치고 당장 가게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겠어요.”
지난 8일 오후 서울 명동 화장품 가게에서 만난 판매원은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무리를 지어 다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모습을 이날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 얼마 전만 해도 인파에 떠밀려 걸음조차 옮기기 힘들 정도로 북적이던 명동거리가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자가 2시간가량 명동 일대를 둘러보는 동안 깃발을 앞세워 이동하는 중국인 관광부대는 단 한 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탓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여행사 업계에 한국관광상품 판매 금지, 한국행 비자 발급 중지 등 보복 조치를 지시한 바 있다.
이날 명동 중심 거리에 줄을 선 50여 개 노점 가운데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은 곳은 열 곳이 채 되지 않았다. 한 노점상은 손님이 줄었냐는 기자 질문에 “보면 모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명동은) 중국인 덕에 먹고 살던 곳인데 이제 다 쫄딱 망하게 생겼다”며 “매일 같이 기자들이 기사 써서 내보내면 뭐하냐. 대책이 안 나오는 거 보면 정치인들은 뉴스도 안 보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명동 곳곳에 중국인 관광객들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 거리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몇몇 내국인밖에 보이지 않았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
중국인들의 필수코스인 화장품 매장은 아직까진 상황이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한 판매원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매출 급감 여파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예전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에는 개별 여행객들밖에 없다”며 “(개별 여행객들도 줄어들)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화장품 매장의 조선족 판매원은 “가게 매출은 둘째 치고 당장 가게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선족 직원들이 대거 해고될 것이라는 소문이 동종업계에 파다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명동 화장품 매장에서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조선족 직원들을 주로 채용해왔다. 그는 “중국인 손님이 발길을 끊는데 중국말 하는 점원이 왜 필요하겠냐”며 “어디 가서 밥벌이를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런 상황을 반기는 의견도 있다. 최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는 "중국인 없는 한국으로 놀러오세요"라는 반중 정서를 담은 게시물들이 퍼져 나가고 있다. "한한령으로 중국 관광객이 줄었을 때 가볼 만 한 곳"이라며 되레 명동을 관광지로 추천하는 네티즌도 눈에 띈다.
대학생 지영민(25) 씨도 “비약이긴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들한테 빼앗겼던 명동을 되찾은 기분까지 든다”며 “(이번 사태로) 내국인에게는 소홀하고 중국인들 비위 맞추며 먹고 살던 상인들도 제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이날 명동에서 만난 일부 내국인 관광객들은 이 같은 상황을 반긴다는 의견을 보였다. 직장인 박가영(31, 서울시 서초구) 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명동을 찾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동안 중국인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명동에 오는 것을 꺼렸는데, 오늘 와서 보니 너무 좋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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