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이지요. 무조건 대림역 12번 출구요.” 늘 대림동은 지하철 출구 번호로 명명되고 구획된다. 무슨 빌딩 뒤, 무슨 영화관 근처가 아니라 12번, 10번이다. 정확한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여럿이 우르르 모일 때 그러는 것처럼. 모이는 사람들은 중국인과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이다. 주말엔 3만~4만 명이 모인다. 대림동에 거주하면서 12번 출구로 사람을 만나러 걸어오는 중국인도 많다. 무너져 내린 돌멩이처럼 제멋대로 주차된 차들과 표정 없이 선 빌라, 뿌연 가로등을 움츠린 걸음으로 지나치면 형형색색의 대림동 12번 출구가 나온다. “한국 친구들 데려가면 무섭다고들 하죠. 길에 그냥 서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담배 피우고, 이야기하고.” 이 동네에 살던 20대 후반 조선족 남자는 신림동으로 이사했다. 가끔 대림동을 찾으면 아직도 두세 걸음마다 아는 사람을 만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길에 서 있고, 담배 피우고, 크게 이야기하고,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왜 무서운 일일까? 낯선 동네, 이질적인 풍경에서 왜 공포를 느끼나? 대림동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동네임에도 편견과 ‘왠지 무서울 것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진 곳이다. 2011년엔 경찰이 이 동네를 특별치안 강화구역으로 지정했다. 어느 해엔 골목 끝에 “동포 여러분, 우리 스스로 이미지 개선합시다!”란 현수막이 붙었다. 지난 2015년엔 ‘치안 한류’라며 이 구역의 범죄 감소세를 견학 온 일본 경찰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신주쿠 차이나타운의 높은 범죄률로 골머리를 앓다 조사차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는 몇 년 새 한 달에 월 30만원 하던 방이 50~60만원대로 올랐다. 노래방, 음식점, 인력사무소, 중앙시장은 요즘 호황이다. 이곳의 중화권 인구 비율은 절반 가까이로 높아졌다.
차를 타고 대림역 사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대림동에서 멀어질수록 도시의 빛은 엷어진다. 대림을 등에 지고 신도림으로 향하는 길은 대림동 12번 출구 앞에 비하면 거의 죽은 길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림동은 어둠을 테두리로 서울과 분리된 채 빛난다. 알사탕 같은 조명 테두리를 둘러친 대림동 일대의 간판 사이사이로 경찰서, 병원, 주민센터가 모형 도시 속처럼 가까이 붙어 있다. 은행에선 중국인 직원이 업무를 본다. 그 작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여서 먹고 마신다. 훠궈, 양꼬치 구이, 마라탕, 전병, 찐빵…. 북방계 중국요리가 대부분이다. 대림동 주민들이 가는 음식점은 문이 열려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장막이 걸려 있다. 그걸 걷고 들어가면 종업원들이 먼저 당황한다. 잠깐의 혼선 뒤엔 한국말을 하는 사장이 나와 주문을 받는다. 블로그엔 그 장막을 뚫어둔 한두 군데 가게만 집중적으로 올라온다.
무슨 무슨 다방, 살롱, 응접실, 반점 같은 한글 간판을 걸어두거나 방콕, 타이완 등의 시장통 분위기를 일부러 만들어 손님을 끄는 망원동길, 우사단길에 비하면 현저히 느린 속도로 열리고 있는 동네. 뜨겁다면 뜨겁고, 냉혹하다면 냉혹한 동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뭣도 신경 쓰지 않고 만든 그들만의 기개가 모여 있는 동네.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애써 포장한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새로운 동네. 뇌가 얼얼해지도록 매운 훠궈를 먹고선 찬바람을 따라 구로리 공원으로 향했다. 조명도 없는 곳에서 휴대전화 음악 소리에 맞춰 단체 체조를 하는 두세 무리가 보인다. 포켓스탑이 있는 구로리 공원 조형물 앞에 앉아 시선을 멀리로 던졌다. 아직도 12번 출구에선 알사탕 조명이 부지런히, 신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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