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경찰관 2명 "공무집행 방해로 정신적·신체적 손해 입어"
"현장 출동 경찰의 고충 대변하기 위해 112만원 상징적 금액 청구"
이른바 '서울 대림동 여경 동영상'의 경찰관 2명이 당시 행패를 부린 남성 2명을 상대로 112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냈다. 지난 5월 논란이 됐던 이 영상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술에 취한 남성을 제압하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담았다. 영상이 확산하면서 '여성 경찰 무용론(無用論)'까지 제기됐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술집 앞에서 여경이 허모(53)씨를 제압하던 중 옆에 있던 시민에게 '남자 분 나오시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술집 앞에서 여경이 허모(53)씨를 제압하던 중 옆에 있던 시민에게 "남자 분 나오시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대림동 여경 동영상'으로 불리며 확산됐다. /구로경찰서
서울 구로경찰서 A경위(남성)와 B경장(여성)은 중국 동포 장모(41)씨와 허모(53)씨를 상대로 112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장(訴狀)을 지난 5일 서울 남부지법에 접수시켰다고 8일 밝혔다. 두 경찰관은 장씨와 허씨가 당시 자신들의 정당한 공무 집행을 방해해 정신적·신체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A경위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들의 고충을 대변하기 위해 112만원이라는 상징적인 금액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112만원은 긴급 출동 범죄 신고 전화번호인 '112'를 상징한다. A경위는 "실제 금전 보상이 목적이라기보다 '여경 무용론'으로까지 번진 공무 집행 방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고 현장 경찰관의 어려움을 호소하고자 소송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14초짜리 동영상이었다. 영상은 술에 취한 남성이 욕설을 퍼부으며 출동한 남성 경찰관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담았다. 남성 경찰관이 뺨을 맞자 함께 출동한 여성 경찰관은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이 "여경이라 난동범을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무전 요청만 했다"고 비난하며 영상을 확산시켰다.
논란이 일자 두 경관이 소속된 구로경찰서가 나섰다. 약 2분짜리 전체 영상을 공개하면서 '여성 경찰관이 적절하게 대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영상이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영상에서 여성 경찰관은 "남자분 한 명 나와주세요"라며 주변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영상 속 한 남성이 "(수갑을) 채워요?"라고 하자 여성 경찰관이 "채우세요. 빨리 채우세요"라고 답하는 모습도 나왔다.
이에 '여성 경찰관이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 결국 수갑도 시민이 채웠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찰이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성 경찰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무능한 여성 경찰관 때문에 오히려 남성 경찰관까지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결국 민갑룡 경찰청장이 "당시 여경은 물러선 것이 아니라 제압하는 조치를 해나갔다. 침착하고 지적인 대응에 모든 경찰을 대표해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진화에 나서야 했다.
피의자들을 고소한 A경위는 함께 출동했던 B경장의 상황 대처에 대해 "현장 매뉴얼대로 대응을 적절하게 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여경 논란'이 아니라 '경찰에 대한 공무 집행 방해'"라며 "그 본질을 알리기 위해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A경위는 경찰 경력 27년째다. 그는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 경찰을 위해 고소를 결심했다"고 했다. A경위는 B경장의 동의를 얻어 2개월간 소송을 준비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소장에 첨부할 각종 통계 지표도 확보했다. 그는 "이번 소송이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범들에게 고생하는 선후배 동료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찰관이 피의자를 상대로 공무 집행 방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전국에서는 매년 공무 집행 방해 사건이 1만5000여건 발생한다. 이 중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1% 미만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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