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은 정월 초하루날이였다.
전염병예방통제의 수요에 따라 연변대학부속병원에서 무한을 지원하게 된다는 소식이 나온후 모든 과실과 간호단원들의 위쳇사업 단체방들에는 설축복 메세지들이 아닌 지원서와 청원 메세지들로 차넘쳤다.
주성걸도 그중의 일원이였다.
이날 주성걸은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위챗에서 의무일군들을 수요한다는 소식을 보게 되자 추호의 주저와 망설임도 없이 주동적으로 청원에 나서게 되였던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관건적인 시각에 당원들이 솔선적으로 나서야 하며 예비당원인 자기가 더욱 나서야 할 책임감과 의무가 있뿐만아니라 병원을 위해 자기의 힘을 이바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탔다.
무한지원자명단이 최종 확정된후 첫진으로 공포된 명단에 자기의 이름이 들어간것을 본 주성걸은 격동과 함께 근심도 있었다.
어떻게 집식구들에게 해석하며 어떻게 가족의 가장 큰 리해와 지지를 쟁취할가하는 생각때문이였다.전화를 걸때까지만해도 그는 어떻게 말을 떼야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병원의 의사인 안해가 그에게 무한의료지원에 등록하지 않았는가고 물었을때 그는 전화를 사이두고 잠간 침묵을 지켰다.
좀 있다가 안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을 리해해요, 의사로서 구급일선에 나서는것은 미루어 버릴수 없는 사명과 책임이지요 제가 가정을 잘 돌볼테니 당신은 환자들을 잘 돌봐주세요. 당신을 지지해요”
무한으로 떠나기전 가정의 일도 아직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1월26일 갑자기 곧 출발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금방 야간당직을 마치고 돌아온 안해가 몰래 눈물을 훔치는것을 본 주성걸의 눈시울도 젖어 들었다. 집문을 나설때까지도 그는 미처 부모님과 아이, 그리고 친구들과 변변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미안하고 송구스러웠지만 사명과 임무를 받고 떠난 몸이라 많은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전 8시, 병원의 출발 지정지점에 도착한 주성걸은 병원 지도일군들과 과실주임, 동사자들과 여러 부문들에서 밤도와 준비해준 물품들을 보고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의 지지와 동사자들의 도움 그리고 병원의 뒤심이 있으니 길떠나는 마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그는 속으로 이번에 병원에서 맡겨준 의료지원임무를 원만히 완수하고 연변의료인의 중임을 저버지리지 않을것을 결심했다.
출발하여 장춘으로 가는 고속렬차에서 주성걸의 위쳇은 가족의 축복과 친구들의 고무격려, 동사자들의 지지 등 메세지들이 눈송이처럼 날아들었다. 주성걸은 매사람들에게 일일이 반드시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고 돌아올것이라고 답복했다.
장춘의 집합장소에 모인후 길림성의 첫진 무한지원의료팀은 무한으로 가는 로정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그는 기쁘게도 익숙한 얼굴 하나를 만났다. 바로 대학동창생인 김춘걸이였다.
2003년도에 두 사람은 함께 연변대학 의학원에 입학했으며 한숙소에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서 깊은 우정을 맺었다. 함께 학습하고 함께 축구를 하고 함께 밤늦게까지 연구생시험준비를 하면서 지낸 가까운 사이였다.
비록 졸업후 두사람은 같은 병원에서 사업하지는 않지만 모두 림상1선에서 사업하다보니 서로간의 련계와 교류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지원길에서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무한지원가입소식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이같은 돌연적인 만남이 더욱 놀랍고 기쁘기만 했다. 지금 두사람은 동창이고 친구일뿐만아니라 더우기는 전염병지역 1선으로 달려가 어깨겯고 싸우는 전우인것이였다.
주성걸은 이제 전염병구역에 들어선후면 안전한 예방보호와 사업수요로 의무일군들사이에도 서로 상대적인 격리를 유지하게 될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함께 만나 이왕지사를 회억할 기회도 적을 것이였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은 피차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었다.
집중강습, 예방보호지식료해, 병원환경에 익숙해지기, 심태를 조절하기...이같은 바쁜 일상은 주성걸이 무한에 온 이틀사이의 진실한 모습이였다. 주성걸의 거처와 일하고 있는 병원은 길 하나를 사이두고있었다.
하다보니 환자들이 발열문진부 앞에 질서있게 줄지어서 진찰을 기다리고있는 모습이 잘 보였다. 붐비지 않았고 서로 배합하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1월28일, 길림성의 의료지원팀은 정식으로 사업에 뛰여 들었다.
격리병실에 먼저 들어갔던 전우가 그에게 륙속 많은 환자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병세가 안정적인 환자는 물론 중증환자들과 잠재적으로 위독한 환자들도 있으니 꼭 예방보호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주성걸은 제7위급소조에 배치 받았다.
교대순서에 따라 1월29일 밤 격리병실에 들어가 정식으로 진료구조사업을 시작했다.환경을 익히고 절차를 익히고 전우들을 익히고 병상황을 료해하고 구급치료에 뛰여들고...그는 신속히 사업에 진입하였다.
1월31일은 주성걸의사가 두번째로 격리병실에 들어간 날이였다. 의료물자가 긴박한 상황에서 그는 방호복을 랑비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사량과 수분섭취를 줄였으며 출발전에 가급적 소변과 대변을 모두 보았다.
오후 2시10분 주성걸의사는 앞당겨 병원갱의실에 도착하여 병원격리실에 들어갈 사전준비를 하였다. 주성걸은 키가 1메터83센치메터나 되고 체중이 95킬로그람에 달하다보니 그의 몸에 맞는 방호복이 매우 적었다.
그는 가급적이면 큰 옷으로 입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입는 간호복은 모두 여기저기에서 얻어 온것들이여서 모양과 격식이 달랐다.
각종 방호장치들을 입고 쓰고 한후에도 로출된 부위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반창고로 고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주성걸의 소개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는 보조와 절차가 비교적 복잡하고 시끄러운데 방호마스크를 끼고나자 경미한 호흡곤난이 느껴졌다. 눈보호안경에도 수증기가 서리기 시작했다.주성걸의사가 격리병실에 들어섰을때 왼쪽덧신의 바깥층이 갈라져 있었는데 다행히도 안에 한꺼풀 더 있었다. 그는 간호장과 상의한후 간단하게 소독처리를 하고 다시 바깥쪽에 덧신을 신었다.
격리병실에 들어선후 주성걸은 재빨리 위독한 환자의 침대앞으로 다가갔다. 환자의 혈중산소포화도가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이미 쇼크와 호흡미약 증세까지 나타났다.여러 간호원들과의 배합으로 그는 재빨리 구급에 착수하여 증상에 따른 치료를 진행했다. 구급을 거쳐 환자의 혈압이 조금 올라갔으며 호흡도 좀 개선되였고 지속적으로 밀접한 관찰을 수요하였다.
두번째 환자는 중년녀성이였고 중증환자였는데 호흡이 극도로 곤난했지만 검사를 배합해줄수는 있었다.
점적주사를 맞으면서 환자는 비교적 긴장해하고 있었다. 진료과정에서 환자는 쉴새없이 자기의 병세가 악화되지 않았는가고 물어왔다.주성걸은 내심하게 환자를 위안하면서 치료에 배합하기만 하면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고 위안했다.
심리적인 소통과 약물치료 그리고 체위조절 등으로 환자의 증상이 차도가 보이였다. 병실을 나서기전 주성걸은 환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는데 환자도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미는것이였다.
바쁜 사업가운데서 주성걸은 한 환자가 울상이 된채 복도층의 의자에 앉아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원인을 물었더니 환자가 울면서 급히 입원하다보니 몸에 아무것도 휴대하지 못했고 안해도 격리병실에 격리되여있는 자기를 찾지 못할것이라는 것이였다.
주성걸은 환자의 정서가 저락되면 치료에 불리할것을 감안해 그에게 가족을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환자를 권유해 병실로 돌려보낸후 주성걸은 간호원을 찾아 이 사실을 알리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물품과 음식들이 격리구에 들어왔다.
연후에 주성걸은 모녀가 들어있는 병실에 찾아갔다. 어머니는 열이 38도까지 올랐는데 증상에 따라 처리했지만 환자는 계속 근심이 많았다. 그는 소문으로 들은 어떤 약물이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하면서 쓸수 없을가고 물었다.
주성걸은 환자의 고충을 들은후 꼭 환자에게 가장 좋은 약을 증상에 맞게 써줄것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또한 지금은 함부로 약을 먹지 말아야 하며 그로인해 불량반응이 많아질것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의사를 믿어줄것을 설득했다. 내심한 설득을 거쳐 주성걸은 환자의 눈길에서 신심을 보아냈다. 매번 환자들과 교류하고 나서 주성걸은 꼭 “힘내세요 반드시 나아질것입니다” 하고 격려해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교대를 막 마치려 할때 새로 입원한 확진환자가 들어왔는데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왜냐하면 이 환자는 바로 그 병원의 의사였는데 주성걸이 길림성 연변대학부속병원에서 달려온 지원의사라는 말을 듣고난후 매우 감동되여 했으며 그가 불원천리 무한까지 달려와 의료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대해 내심 감사를 표시했다.
주성걸은 그를 위안하면서 그들이야말로 줄곧 1선에서 싸우면서 가장 수고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의 전염병이 꼭 나을수 있을것이라고 위안했다.
드바쁜 사업가운데서 6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방호복이 비교적 작다보니 앉기라도 하면 찢어질 우려가 있는데다 사업도 빠쁘고 미처 휴식할 시간이 없다보니 차라리 줄곧 서있을때가 많았다.
교대할때 보면 온몸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으며 방호복도 몸에 달라붙어 있어 옆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옷을 벗을수 없을 지경이였다. 절차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나서 숙소에 돌아오면 저녁 9시가 넘군 했다. 소독한후 부랴부랴 라면으로 한끼 대충 에때우고 의무일군건강등기표를 작성하고나서야 침대에 누울수 있었다.
잠들기전 주성걸의 유일한 상념은 “래일 환자가 호전될것이다. 래일은 더 좋아질것이다”는 생각뿐이였다. 전염병을 마주하고 주성걸은 자기의 젊은 두 어깨로 무거운 임무를 짊어졌으며 연변을 대표해 나선의무일군으로서 매우 큰 자호감을 느끼고 있다.
편역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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