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열사의 아들, 독립유공자 후손 연금 향수
가목사시 우수노동모범, 화천현 인대대표 역임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흑룡강성 가목사지구에서 유명 소아과 의사로 명성을 떨쳤던 이성원 노인이 지난 6월 30일, 친지와 향우들 그리고 진료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의 한 웨딩홀에서 팔순잔치를 치렀다.
이날 이노인의 팔순잔치에 참가한 200여명의 하객 가운데는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지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 노인은 의술과 의덕으로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다.
이의사와 동향인 재한중국동포 장만동씨는 "이의사는 의술은 물론 의덕이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아프다고 앙탈을 부리거나 구토로 병실을 어지럽히는 환자가 많았지만 이의사는 언제나 한결 같이 부드럽고 자상히 진료를 해줘서 원근의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회억했다.
이노인의 오랜 동료이자 후배인 전 화천현 성화향위생원 노인천원장은 "소아과 의사로서 선배님의 뱃침과 자작약은 가목사지구에서 최고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로 병원은 언제나 흥성했다"고 말했다.
재한 화천현 성화향동향회 정영기회장은 "이의사는 화천현의 의료, 보건, 위생사업의 발전을 이끌어온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가정에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며 이의사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이성원노인은 1955년 가목사의학원을 졸업하고 화천현 건국제2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 성화향위생원 원장, 창업향위생원 원장을 역임,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여러 차례 가목사시선진공작자, 노동모범, 화천현 인민대표로 당선되었다.
이 노인의 장남인 이상욱씨는 "부친이 소아병에 특효가 있는 약을 자작했는데 가격이 싸서 사정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을줬다"며 "부친이 인품이 좋고 많은 환자들을 살린 보람으로 지금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시는 같다"고 말했다.
이성원의사의 돋보였던 인품은 독립투사가정 출신으로서의 자긍심, 정의감과 관련이 있었다. 이노인은 1933년 길림성 훈춘현(현재 훈춘시)의 독립투사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항일열사 이정이다. 이열사는 대한독립군의 일원으로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고 만주지역에서 독립투쟁을 벌여온 유명 항일투사로서 1942년에 일본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옥중에서 세상을 떴다.
1997년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한국에 온 이 노인은 현재 한국정부의 연금을 받으며 행복한 만년생활을 보내고 있다. 슬하에 장성한 세 아들도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Weeklycn@naver.com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