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짖는 소리가 적막감을 깨우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다.
마을입구에서 왕진가방을 멘 할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기자를 맞아준다. 그는 “산골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젊은이들 다들 떠나고 로인들만 남아서 이렇게 조용하다”면서 “홀로 남은 로인네들 이런데서 갑자기 병이라도 걸리면 아무소리도 못 내고 죽을수밖에 없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정동진(76살)할아버지는 안도현 명월진 룡산촌 조선족 시골마을의 유일한 의사이다.
할아버지,아버지,형님 모두 대대로 의사를 지낸 가문이다. 19살에 할아버지가 몸잠근 공사위생소에서 의술을 배웠다. 그러면서 전 주에서 열린 의료전문지식학습반도 여러차례 참가하면서 향촌의사자격증을 딴 뒤 시골의사가 됐다.
정동진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시골의사로 마을에서 촌민들의 병을 봐줄 때는 애들 고뿔에라도 걸렸다 해도 몇십리길인 공사 보건진료소로 달려가야 했기에 마을에 있는 시골의사는 촌민들에게 구세주와 다를바 없었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80,90호 되던 세대가 해마다 줄면서 지금은 40, 50호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집집마다 로인네들이 남아있으니 마을을 지킬수 있었다.
지금은 다들 등지고 떠난 시골마을, 촌마다 있던 진료소가 문을 닫은지도 오래다. 하지만 50여년을 오롯이 시골의사로 살아오면서 그가 지금도 청진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리유는 바로 이곳 어르신들때문이란다.
그는 “홀로 남은 로인네들 감기만 걸려도 한시간이나 걸리는 현성병원으로 가야 된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분들인데 조금만 지체해도 큰일이 난다”고 말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66세 되는 할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택시가 오는데만 1시간, 정동진할아버지가 응급처치를 바로 했으니 망정이지 아마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였다.
며칠전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리문너머로 마을에 사는 김씨가 얼굴색이 흙빛이 돼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아버지가 말기암으로 시내 큰 병원에 입원했다 더는 희망이 없어 오늘 병원차로 집에 모셔왔다는것이다.
그런데 병원차가 돌아가고나서 보니 링게르바늘이 꽂혀있던 팔이 부어있었고 수액이 들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얘기를 듣자마자 정동진할아버지는 잠옷바람으로 끌신도 바로 신지 못하고 김씨를 따라나섰다. 다행히 제때에 처치해 별문제는 없었다.
“오래오래 살고싶습니다.내가 죽으면 이 마을 로인네들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주사 한대 놓아주겠습니까. 허허 늙은이가 주책맞습지요?”
그가 불쑥 던진 말에는 웬지 모르는 애잔함이 묻어나있다.
나이 든 로인들은 1주일에 한두번은 간단한 검진이라도 꼭 받아야 된다면서 그는 매주 어김없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혈압을 재준다, 혈당을 체크한다 바삐 보낸다.
치료비도 성의껏 내면 된다. 약값과 치료비를 낼 형편이 안되는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준다.
아직도 시골에서 마을농민들 병 보느라 로심초사하는 아버지가 걱정되여 자식들은 5년전에 시내에 집 한채를 마련해 놓고 만년을 편하게 보내시라고 독촉이 성화 같지만 그의 뜻을 꺾을수는 없다.
“이 늙은이는 여기에서 살아가는 격정을 느낍니다. ” 평생을 시골의사로 나선 정동진할아버지는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왕진가방을 둘쳐메고 촌민들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긴다.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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