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남편과 헤여진후 찬바람이 스며드는 자그마한 단칸방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오금자씨(63살)를 만난것은 지난 22일이였다.
도문시 석현진 13주민위원회의 한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20평방메터 되나마나한 작은 단층집이였다. 지난해 갑작스레 손을 떠는 이름모를 병에 걸려 남편과 갈라진후 오갈데 없는 그를 불쌍히 여긴 누군가 그를 이 집에 무료로 있게 하였던것이다.
찬 랭기가 스며드는 어수선한 집안에는 이불 두채가 손바닥만한 구들을 덮고있었는데 그 우에 또 커다란 솜옷 하나가 덧놓여있었다.
“불을 때지 않았어요?”
“8월에 이 집에 들어와서 한번도 불을 때지 않았수… 땔나무를 구하기두 힘든데 아꼈다가 겨울에 써야지유…”
“때시걱은 어떻게 해결해요?”
“낡은 전기밥가마와 채가마로 간단히 해먹는데 하루에 아침, 점심 두끼만 먹어유. 저녁은 배고파도 참고 견뎌유…”
병적증세로 인해서인지 말까지 어눌해진 그는 남편이 갈라지면서 준 돈 3000원으로 약방에서 약을 사다 먹으며 생활하고있는데 돈때문에 한번도 큰 병원에 가 확실한 진단을 받아보지 못했단다.
두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다보니 밥을 먹기조차 힘들어 집안청소는 이미 포기한 상태, 여기저기 물건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는데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이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이 더 필요한 시점이였다.
알아본데 의하면 그는 첫 남편과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13살, 5살이 될무렵 남편과 리혼하였다. 그후 그는 아이들이 보고싶어 몇번 찾아갔다가 결국 어머니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과의 련락도 두절되였다고 한다.
“큰아들은 이제 40살, 둘째 아들은 32살이우…”
아들의 나이에 대해 익숙히 알고있는 그는 아들을 생각하면 항상 보고싶고 마음이 아프다며 눈가에 촉촉한 이슬을 내비치였다…
그후 그녀는 재혼도 하고 이것저것 허드레 일들도 닥치는대로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농사일도 하고 돼지도 키우고 보모노릇도 해보았어요…”
그러던 그녀가 갑작스러운 질병을 얻어 이렇게 오갈데 없는 외톨이신세가 된것이다.
“병만 안 생기면 남편하고 재미있게 살았을텐데…”
이웃집 장동숙로인이 안타깝게 말했다.
장동숙로인은 “홀로 살아가고있는 그의 처지가 딱해 수시로 살펴보는데 전기도 안 켠 어두컴컴한 집에서 사고라도 생기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여 문을 두드려볼 때도 있다”며 “국가에서 살길이 막막한 그한테 농촌최저생활보장금이라도 해결해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남편도 없고 자식과의 인연도 끊어지고 로동능력도 없고 생활원천도 없는 그한테 유일한 희망이란 농촌최저생활보장금을 받거나 좋기는 사회복리봉사중심의 도움을 받는것이다. 하지만 떠나온지 십년이나 되는 조양천 근로촌에 호구가 있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바람에 국가혜택을 받을수 있을지 걱정이다.
병든 몸으로 홀로 어두운 방, 찬 구들에서 하루 두끼나 겨우 에때우며 풍전등화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있는 그한테 해당 부문의 발빠른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그녀가 혹독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연변일보 차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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