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진정 농민들을 생각하는 “우리네 안서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25일 10시21분    조회:26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풍년해이다. 훈춘시 반석향 맹령촌의 산골짜기와 들은 울긋불긋 사과로 뒤덮였다. 벌거우리하고 어린애머리통만한 사과들이 가지휘게 달려 보는이들을 경탄케 한다.

"우리 촌의 사과산업발전에는 이름없는 영웅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농업국의 안종헌이야말로 첫손 꼽을만한 무명영웅이지요."

맹령촌 리호식의 정에 겨운 말이다.

진정으로 농민들을 생각

촌민들이 이토록 한입 모아 칭찬하고 치하하는 안종헌은 과연 어떤 사람일가.

그는 훈춘시농업국 간부이다. 체제개혁전에는 시특산국 과장으로 사업해오다 특산국이 농업국산하로 편입되면서부터는 인사사업과 행정후근사업을 책임지고있는 현역간부이다.

시에서는 북쪽에는 만무사과배기지, 남쪽에는 만무사과기지 건설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반 사업을 내밀고있을 때 안종헌은 국으로부터 맹령촌사과기지를 일층 공고발전시킬 임무를 맡고 맹령촌에 파견간부로 내려왔다. 그 당시만 하여도 맹령촌의 사과기지건설은 분산적인 령세업종으로서 규모는 말할것도 없고 효익 역시 그저 푼돈이나 버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다년간 농업에 종사하면서 고향의 일초일목에 익숙한 리호식 등 촌의 중견인물들은 바로 이 "령세업종"에 잠재한 거대한 우세를 통찰해내고 사과재배라는 이 농업대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당지 기후와 토양에 알맞는 사과품종을 인입,육성하기 위하여 로심초사하였다.다년간 농업특산부문에서 사업해오던 안종헌은 속으로 굳은 결심을 내리고 맹령촌의 사과기지건설에 한몫 하려고 신심을 다졌다.

사과재배에서 품종선택, 기술전수가 관건적인 고리임을 보아낸 안종헌은 촌지도부와 상의하고 외지고찰과 기술전수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사과재배농들의 안계를 넓히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함에 아울러 사과재배정보수집과 시장판로와 시세흐름의 대세에 주의를 몰부어 진정 시장에 발붙일수 있는 사과품종인입과 배육에 공력을 쏟았다. 그들의 이러한 신고는 헛되지 않았다. 2005년부터 맹령촌의 한부사과는 점차 시장의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부사과 역시 자체의 약점이 있었다. 품종개량이 급박하였다.

개량품종인입의 걸림돌은 역시나 자금이였다. 농민들은 한그루에 50원(당지가격)씩 하는 묘목값을 부담하기에는 그 재력이 너무나 가냘팠던것이다.

향정부와 촌민위원회에서 발벗고 앞뒤로 뛰여다니며 자금곬을 틔우려했으나 금융부문 역시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지라 자금대부가 수월치 않았다.

안종헌 역시 이 모든 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에게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안달만 떨고있을 때 무언가 안종헌의 뇌리를 스치는 반짝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신용대부금은 담보를 최고로 치는데 우리들이 나서서 담보하면 어떨가?"

그는 자기의 이 생각을 한과의 동료들앞에 털어놓았다. 당시 시농업국국장이였던 조현호도 그의 대담하고도 기발한 생각에 힘을 불어넣었다.

"참으로 고마운 생각입니다. 진정으로 농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엄두도 못낼 발상입니다. 저희들도 힘껏 돕겠습니다."

"종헌이, 당신만 믿고 따르겠네."

다년간 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들도 지지해나섰다. 그러나 금융대부금담보란 그에 따르는 위험이 동반되는만큼 녀성동료들은 제외하고 8명 남성동료만이 련대담보자로 나섰다.

이렇게 대규모 새 품종 인입의 스타트가 떼졌다. 촌민들도 그들의 몸에서 힘을 얻고 그 적극성이 전에 없이 고조되였다.

그후부터 맹령촌의 사과기지는 해마다 40~50쌍의 규모로 발전하였다. 하여 지금은 450여쌍으로 발전하였고 정상적인 년분의 출하량은 300~350만킬로그람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불과 손가락튕기는 몇해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맹령촌의 셀렌사과는 성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어떤 통큰 도매상은 전 촌의 셀렌사과를 몽땅 도거리하겠다고 나섰다. 도매상들도 맹령촌의 셀렌사과에 잠재해있는 거대한 시장성을 보아낸것이다.

그만큼 맹령촌 주민들의 생활은 향상되기만 하였다. 가로세로 쭉쭉 뻗은 아스팔트길, 붉고 푸른 새 벽돌기와집이 이젠 화제거리도 아니다.

그러나 안종헌은 자기특유의 통찰력에서 또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고심하였다. 바로 단합의 힘이였다. 목전에 호단위 사과출하는 어디까지나 분산적이여서 때론 사과 재배농들끼리 서로를 제약하는 포승줄이 될수 있었던것이다.

맹령촌 셀렌사과전문합작사가 설립되고 안종헌은 전문합작자의 고문직을 맡았다. 그는 전문합작사의 당위성과 그 리점을 셀렌사과재배농들에게 설명해주면서 합작사를 키워나갔다. 회원은 120여세대로 늘어났다.

셀렌사과는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을뿐더러 껍질까지 얇은데다가 무공해재배법으로 재배하다보니 시장에서 일약 힌트를 치게 되였다. 바로 그 여세를 몰아 맹령촌셀렌사과축제가 발족되였다.

2008년 10월 8일의 첫 축제의 위세를 타고 쭉 5년간 련속되였는데 그 규모로 맹령촌을 벗어나 훈춘시 세기광장, 연길시 시대광장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산할만큼 맹령촌의 셀렌사과는 인기절상이였다.

이쯤하면 안종헌도 한숨 쉴법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뜻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임무가 기다리고있었다.

2012년 음력설을 갓 쇠고나서 시농업국 지도부의 결정에 의해 시농업국산하 국영농장당지부서기로 부임하게 되였다.

농업부문에서 오래동안 사업해온 안종헌은 농장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한마디로 골치덩어리단위였다.

이제까지 조직의 결정에 불복한적이 없는 그는 선듯이 책임을 맡아나섰다.

합격된 공무원이 되자

1954년에 건립된 훈춘시국영농장은 이미 근 60년의 력사를 가진 로농업기업이다. 근 60년의 력사에 국영농장은 열혈청년들로 운집되여 청춘의 끓는 피와 땀을 쏟아가며 건설한데서 한때 휘황한 업적을 자랑하였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세월의 변혁속에서 언제부터인가는 그 빛이 바래기 시작하여 줄곧 문제거리단위로 남았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부터 농장은 개혁에 개혁을 거듭해왔지만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농장의 사정은 시당정지도부와 농업국의 미해결문제로 2012년까지 남아있었다.

안종헌이 농장당지부서기로 부임해왔어도 군중들의 반응은 그저 랭담하기만 하였다. 지어는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사람은 여차하면 손찌검이라도 댈 기세였다. 그만큼 농장문제는 너무나도 오래동안 곪아왔던것이다.

300여명 농장원의 현재생계 유지, 로후생활대책, 이렇듯 민생에 민감한 문제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져있었다.

안종헌은 우선 농장개혁지도소조를 설립하고 농장원대표들과의 진지한 대화로 출로를 모색하고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긴가민가 하면서 팔짱을 끼고 관망하면서 불평만 부리던 이들도 점차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진심에 감동을 먹은것이다.

근 10여차의 큰 회의, 작은 회의를 통하여 안종헌은 당과 정부의 관심을 전하고 “로동법”, “양로보험법” 등에 준하여 개혁방안을 내오려고 농장원대표들을 이끌고 왕청, 연길 등지로 다니며 외지의 관련 경험들을 학습하였다.

그러나 근 60년이 되는 오랜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농장의 인사관계서류는 너무나도 엉망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원시서류를 찾을길 없었다.

“글쎄 농장에서 30~40년 동안 근무해온 이들도 인사서류가 없으니 해당 부문에서도 어떻게 손써볼 근거가 없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의 정경을 회억하며 안서기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여 서류정리보충작업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정말 말이 쉽지 여간 공력이 드는 일이 아니였다. 근 300명의 농장원들의 서류를 정리 보충하여야만 그후의 개혁절차를 이어나갈수 있었기때문이다.

개혁개방초기 농장의 인당 토지배당량은 2.9무로서 3무도 채 안되였다. 나이가 들어 밭을 다룰수 없게 된 로농장원들은 처음에는 한무에 쌀 50킬로그람씩 받고 린근 농민들에게 토지를 세주었다. 바로 이 150킬로그람도 채 안되는 쌀이 바로 그네들의 유일한 생계줄이였다.

그네들의 념원도 아주 단순하였다. 기타 다른 국영기업의 종업원들과 같이 퇴직금, 양로금, 의료보험 등 대우를 향수하는것이였다.

“국가공직자로서 백성질고를 헤아릴줄 모른다면 어찌 그를 합격된 공무원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렇게 누구를 위한 일인가 하는 원칙적문제에서 추호의 드팀도 없이 안종헌은 농장의 개혁을 밀고나가면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 기간 시당위, 시정부, 시농업국의 련석회의도 여러차례 소집되였다. 의제는 당연 국영농장의 개혁문제였다. 근본적인 개혁을 거치지 않고서는 농장의 300여명 종업원의 생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농장의 개혁은 차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안종헌은 이 유리한 계기를 다잡고 농장마을환경건설에 농장원들을 동원하여 그제날 소침하기만 하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2013년초, 안종헌은 지나친 로고로 심장병이 도져 심장지지대를 2개 하게 되였다. 그러나 이제 갓 방향을 잡은 농장개혁이 관건적인 시점에서 많은 시간을 점할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였기에 음력설휴가와 농한기시간을 리용하여 남몰래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지지대 3개를 권유하였지만 그는 2개만 받고 인차 농장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의 일터가 농장이였기에 그는 한시도 마음의 탕개를 늦출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시당위, 시정부에서는 그의 개혁방안에 적극 지지해나섰다. 근 300여명 농장원이 모두 퇴직금, 양로보험 및 의료보험에까지 보장이 있게 되였다.

2013년 10월 15일, 황금빛으로 뒤덮인 풍요로운 대지와 함께 훈춘시국영농장의 종업원들의 마음속에도 풍년의 희열이 넘쳐났다.

그네들이 그토록 오매불망 고대하던 로임통장을 발급받게 된것이다.

“살아 생전에 이렇게 자기 이름으로 된 퇴직금통장을 받게 되였으니 죽어서도 눈을 감을수 있게 되였수다…”

이제 90 고령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마음속 고백이다.

이 할머니의 말은 바로 농장원들의 마음속말을 대변한것이기도 하다.

“안서기가 우리 농장에 내려온지 2년도 채 안되는 동안에 수십년을 끌어오던 농장원들 대우문제가 해결되였으니 그 치하를 어디에 하겠소. 그저 당과 정부에 감사드릴뿐이요. 안서기처럼 훌륭한 간부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연변일보 박득룡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명금 “늦은 나이에 이렇게 글을 쓰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12일, 룡정시에 거주하는 지체장애인 양명금(60세)은 불편한 몸을 지탱하고 앉아 글을 몇줄 적더니 힘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 공부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
  • 2021-01-28
  • 지난해 12월말 나는 북경에서 서울로 향했다. 당시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천 명씩 발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시기였다. 취재를 위해 나는 한국으로 '역행'하게 됐다.   북경 수도국제공항의 로비는 텅 비여있었다. 공항 면세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려객기의 좌석점유률은 절...
  • 2021-01-19
  • 새로운 한해인 신축년(2021년)을 맞으며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에서는 로인들을 위한 설날 떡국잔치를 열엇다. 이번 행사에는 약 백여명의 로인들이 참석해 명절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의 주최로 열린 떡국잔치는 오수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사회를 했다. 이날 행사는 어르신들께 떡국...
  • 2021-01-06
  • 원 연변연극단 배우 최금순의 연극 인생 수많은 연극 속의 인물형상과 텔레비죤드라마 《민들레할머니》 연기로 조선족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 최금순, 그의 70여성상 인생길에는 과연 어떤 달고 쓰고 신 사연들이 깃들어있을가. 필자는 그녀의 삶을 살펴보았다. 연극과의 만남 1946년 금순이가 13살 나던 해에 엄마...
  • 2021-01-06
  • [애심녀성컵]-더 미워질 데 없는 녀자 김경희   나는 스물여덟살 나던 해 언니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였다.   진한 눈섭에 정기 도는 쌍겹눈, 덩실한 코마루, 영준하게 생긴 얼굴에 중점대학 학력까지… 바로 내가 오래동안 마음속으로 그려봤던 리상형이였다. 평생 시집 갈 것 같지 않아 로심초사...
  • 2020-12-22
  • 고중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0원씩 지원키로 지난 4일,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 신입생 맞이 조학금 전달식이 연변제1중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5명의 신입생을 맞이한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은 신입생들을 포함하여 15명의 학생에게 인당 1000원의 조학금을 전달했다. 1999년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259명의 학생을 지원해...
  • 2020-12-09
  •  우리나라 최동단, 중국 로씨야 조선 3국 국경선의 접점에 자리잡고 있는 방천은 현재 유명한 관광지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력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방천이 사실 20세기 60년대부터 전국적인 군민공동방위의 본보기로 꼽힌 영예의 과거를 알 수 있다.       군민이 일심협력하여...
  • 2020-11-25
  • [수기] 방천에서의 아버지의 벅찬 나날들 김정일 10월 3일은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신지 벌써 8년째 되는 날이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가 어디론가 외출 갔다가 얼마후면 돌아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럴 때면 아버지를 위하여 뭘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이야기며 내 눈으로 보았던...
  • 2020-11-17
  • [수기 59] 지지리도 운이 안좋은 나 리기준 나는 삼형제중 막내로 태여났다. 내가 네살 때 친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우리 집은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사람들은 쩍하면 우리를 ‘애비 없는 새끼’ 라고 놀려주었고 어머니는 이상한 남자들의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였다. 2년 후 우리 어머니는 룡정시 금불사...
  • 2020-11-12
  • 80년대초기 중학교 1학년이였던 내가 쓴 동요 이 일본의 어느 한 국제교류협회가 조직한 글짓기콩클에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상장과 선물들이 학교에 도착하여 업간체조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표창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 시기가 바로 중국과 일본간의 친선관계 상징이였던 자이언트판다...
  • 2020-10-13
  •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부모님 산을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빈 박금석 형제분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 조상들의 무덤 앞에 술을 붓고 제를 지내며 고인들의 공적을 기리는 박금석(76세), 박금룡(65세) 형제는 대소과수농장마을을 굽어보며 감회가 깊었다. 최근 들어 빈곤부축사업이 초요건설사업의 주요...
  • 2020-10-13
  •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는데 왜 여자인 내가 단풍사랑에 빠졌을가? ...  가을정취가 다분한 국경절연후 막바지날, 가고싶었던 단풍구경 떠나는 기분좋은 날이다. 화창한 날씨에 쪽빛하늘이 하사한 따스한 해볓이 길 떠난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모임장소까지 가는 길은 신바람에 룰라라가 저절로 나온다.&nbs...
  • 2020-10-10
  • 새 집을 짓던 나날들 김삼철 요지음 나는 103평방메터의 화려한 아빠트에서 혼자 생활하느라니 가난했던 1970년대 연변과는 수천리 떨어진 길림성 동북쪽 맨 끝자락의 길림성 유수현 연화조선족향에서 근무할 때 내 손으로 초가집을 짓던 어려운 나날들이 추억의 쪽문을 열고 밀려나온다.   1970년 가을 나는 지인의 ...
  • 2020-10-04
  • 지난 9월4일 가목사조선족학교에서 진달래마을 장학금을 지급했다.  진달래마을 조선족장학단체(이하 진달래마을)가 9월 개학을 맞아 동북3성 8개 지역 14개 조선족학교들에 장학금을 전달, 오래만에 개학을 맞아 열기 띈 학교분위기에 활기를 더 하고있다.       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내...
  • 2020-09-18
  •     교육대계는 교사육성이 핵심   소외된 교사들 교육열기 재점화   현재 전통지역 학생래원의 급격한 감소와 고갈, 페교위기, 교사의 로령화와 청년교사의 부재로 전통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자평나 있다.   이러한 와중에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보인다는 사회풍조가 일면서 학교에 대한 사회적인...
  • 2020-09-14
  • 오승룡동지, 남, 조선족, 1972년 11월 출생, 1990년 10월 사업에 참가, 2005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 대학학력. 왕청현사법국 선전과 과원, 인사국 중재과 과원,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로임복리과 과장, 부국장, 2018년 7월 왕청현당위 조직부 부부장 겸 로간부국 국장. 선후로 '전 주 법률상식 보급 법에 따라 다스리...
  • 2020-09-11
  • 성송권                                                                                    ...
  • 2020-09-07
  • 위챗 수금기능 24시간 동안 마비되어       월드옥타 청도지회 김금란 회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김홍화씨에게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8월 28일 본지에 “저희 남편 살려주세요” 란 기사가 발표된 후 한민족사회에 큰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 2020-09-02
  • 올해 85세인 엄마는 신문과 책 보기를 무척 즐긴다. 해마다 《길림신문》, 《종합참고》, 《장백산》, 《연변녀성》 등 신문 잡지를 주문하여 구독하고 도서 대여증으로 여러 면의 좋은 책들을 수시로 빌려보고 있다. 근년엔 엄마는 다년간 간행물을 읽으면서 배운 많은 지식을 “인젠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 2020-08-27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