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혈병과 사투 벌이는 28세 중국동포 김향란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2월5일 15시36분    조회:30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특약기자 = “이젠 엄마도 힘들고, 돈도 없으니 수술을 포기하겠어요.”

  세 번째 골수이식수술을 거부하는 딸애의 말에 중국 동포 박경옥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 동안 딸이 병마와 싸우며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고, 삶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봤기에, 그 포기하겠다는 말이 삶에 대한 의욕상실 보다 어머니인 박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25세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 온 지난 3년은 김향란씨 본인과 어머니 박씨에게는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좋은 동생, 착한 딸”

  중국 헤이룽장성 상지시 하동향 북흥촌 사람들은 향란씨를 보면 ‘정말 착한 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늘 선천성 지적 장애를 앓는 언니를 데리고 다니는 향란씨의 모습이 그토록 대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애들이 “바보”라고 놀려댔지만 향란씨는 그런 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니의 ‘모자람’을 채워주느라 무진 애를 썼다. 병원에서 ‘뇌신경발달이상’ 진단을 받은 언니는 말은커녕 걷기조차 힘들어 했다. 동생은 그런 언니에게 글을 익혀주고 걸음걸이를 가르쳤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딸 때문에 조급해하는 어머니에게 “언니가 천천히 하면 되잖아요. 내가 잘 가르쳐줄 거니 조급해 마세요”라며 타일렀다. 그렇게 향란씨는 언니를 끔찍이 아끼고 챙겼다.

향란씨(앞줄 오른쪽)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당시 한국에 있던 아버지(현재 연락 두절)에게
가족사진을 보낸다며 모녀 셋이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유일한 가족 사진이 되었다.

  남편이 가정을 박차고 한국으로 떠나면서 가정 부양책임 등 모든 집안일을 혼자 떠메게 된 박씨는 향란씨를 남편처럼, 친구처럼 여기며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박씨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2001년 마지못해 한국에 돈 벌이를 나오면서 향란씨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더욱 커졌다. 향란씨는 외할머니와 함께 언니를 돌보고 보살폈다. 세수도 시켜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2005년 칭다오의 모 대학에 합격한 향란씨는 연로하신 외할머니를 걱정해 언니를 데리고 구학의 길에 올랐다. 학교주변에 셋방을 얻어놓고 언니를 직접 돌봤다. 낮 수업시간에는 화장실 가기마저 어려운 언니를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해놓았고 식사시간이면 집에 달려와 언니에게 밥을 챙겨주었다. 회사에 취직하여 2010년 칭다오에서 병이 나기 전까지 향란씨는 그렇게 엄마처럼 언니를 보살폈다.

“딸아, 아무리 힘들어도 내 옆에 있어줘”

  지적장애인 큰 딸을 둘째 딸과 연로한 부모들에게 맡겨두고 한국에 돈벌이를 온 박씨는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함께 있어줘야 할 딸들을 남겨두고 온 죄책감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바뀌어 모질게 일에 달라붙었다. 박씨는 3년간 식재료를 보관하는 식당의 창고에서 숙박을 하며 일을 했다. 여름철엔 모기에 물려 온 몸이 보기 흉할 정도로 퉁퉁 붓기도 했다.

  그렇게 악착스레 모은 돈으로 박씨는 칭다오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두 딸을 위해 아파트를 마련하여 주었다. 두 딸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에 박씨는 큰 위안을 느꼈다. 그런 집에서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향란씨가 그만 몹쓸 병에 걸렸다.

칭다오 모 한국회사에 취직한 향란씨는 사회인이 된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아름다운 청춘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겼다.

  2010년 8월, 박씨가 아침시간에 중국 칭다오 집에 전화를 하면 둘째 딸이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았고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씨는 그런 딸에게 “성인이 된 사람이 무슨 늦잠이 그렇게 많으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생리가 멎지 않아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은 향란씨가 울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백혈병’이란 청천벽력 같은 진단결과를 전했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둘째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벌을 주느냐”고 박씨는 자신과 하늘을 향해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빈손으로 중국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박씨는 2010년 10월 달 향란씨를 한국에 데려왔다. 딸애를 구하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던 박씨는 큰 딸을 고향에 돌려보내고 칭다오의 집을 처리한 돈과 친지들에게서 빌린 돈을 합쳐 어렵게 6,000만원(한화)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박씨가 직접 골수기증자로 나서 2011년 4월 골수 이식 수술을 했다.

흉해진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박씨는 딸 앞에서 강해야 했다. 박씨는 “딸애가 살아주기만 바란다”며 향란씨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백혈병환자에게 작은 바이러스 감염도 치명적인 요소가 되기에 박씨는 최대한 조심하며 보살폈다. 딸애가 쓰는 식기를 비롯한 모든 용품은 매일 물에 끓여 소독을 했고 물도 4시간에 한 번씩 끓여 먹이다보니 새벽에도 일어나 물을 끓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집안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향란씨의 입맛을 맞추느라 끼니마다 다양한 영양소를 살린 미음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박씨의 이런 지극정성과 적극적인 치료 자세에도 불구하고 향란씨의 병세가 그 해 11월에 다시 악화되었고, 두 번째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엄마,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아빠의 버림을 받고 장애인 언니와 자신을 돌보며 막심한 고생을 다한 어머니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남달랐던 향란씨는 “엄마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자주 하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런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향란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언니를 보살피는 등 꿋꿋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어머니를 괴롭히는 장본인이 된데 대해 향란씨는 못내 괴로워했다. “엄마 정말 미안해. 엄마를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병이 난 뒤 향란씨가 어머니에게 자주 한 말이었다.

2차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은 향란씨가 힘든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이었지만
간호사의 카메라를 향해 옅은 웃음을 짓고 있다

 

2012년 2월에 시행한 2차 골수이식 수술은 제대혈을 이용하다 보니 1차 때보다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향란씨는 2차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을 때 약화된 페기능 회복제로 임상실험 무료 약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체중미달로 포기해야 했다.

  1차 수술에서 집의 모든 재산을 날려버린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향란씨는 두 번째 수술 비용을 위해 어머니가 어떤 노력을 들였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딸을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한 박씨의 노력으로 향란씨의 사연이 전파를 타게 됐고, 교회와 사회복지단체 등에서 성금이 답지해 어렵사리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어머니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향란씨는 올 해 9월 친구와 같이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고 악화된 수치를 통보받은 후 어머니에게는 수치가 좋아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바로 밝혀진 거짓말이었지만 향란씨는 악화된 수치를 감추고 이대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검사결과를 보고 대성통곡하는 어머니를 끌어안은 향란씨는 “2차 수술을 받고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아 너무나 기뻤는데…. 엄마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며 ‘미안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흐느꼈다.

“죽기 싫어요. 정말 살고 싶어요”

  세 번 째 골수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할 때 향란씨는 강하게 거부했다. 어머니 박씨는 “완치 확률이 1%에서 100%가 될 수 있고 100%에서 1%가 될 수도 있지만 넌 그 1%의 확률을 버리면 안돼… 지금까지 널 위해 살아온 엄마를 위해서라도..”라며 향란씨를 설득했고, 주치의 교수도 가세했다.

  향란씨의 밝고 강인한 모습을 많이 지켜봤던 간호사들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어떤 간호사는 향란씨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완쾌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주위의 환자들도 “향란씨의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수술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설득했다.

  이처럼 어머니 박씨와 주변사람들이 근 한 달 가까이 달랜 끝에 향란씨는 3차 이식수술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골수 기증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언니가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3차 수술은 아직 확실한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주치의는 내년 1월로 수술을 예상하고 있지만 수술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무산될 수 도 있다. 올해 3월부터 박씨는 매일 일당을 뛰고 있지만 하루 수입은 5만~6만원으로 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형편이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 2동의 어느 작은 지하방에서 만난 향란씨는 머리칼이 많이 빠져 머리 속살이 훤히 보였지만 얼마 안 되는 머리칼을 뒤를 묶었다. 향란씨의 형형한 눈망울에서 삶에 대한 강인한 의욕이 뿜어져 나왔다. 향란씨는 말했다. “죽기 싫어요. 무서워요. 정말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weeklycn@naver.com

  후원계좌: 302-0581-9148-11(농협)

  예금주: PIAO JINGYU

  전화: 010-8220-1555 (박경옥)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책을 읽으면 꿈을 이룹니다.” 여느 퇴직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김영택, 김복순부부도 단둘이서 호젓하게 만년을 보내고있다. 다른 점이라면 독서와 글쓰기가 이들 퇴직생활의 전부가 되였다는 점이다. 아늑한 오전의 해살이 비껴들즈음이면 안해는 책을 가득 쌓아놓은 거실의 앉은뱅이 탁...
  • 2014-11-24
  •   “몸이라도 성하면 손녀 가까이서 세끼 따뜻한 밥이라도 해주련만…” 지난 10월 19일, 차에서 내리다가 길옆 배수구에 빠지면서 왼쪽어깨에 금이 생겨 석고붕대를 하게 된 안도현 만보진 금화촌의 김명옥로인(67살)은 아프고 불편한 자기보다 부모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손녀(김설화, 15살...
  • 2014-11-20
  • 신문출판총서의 통일포치와 지도로 2013년 3월에 가동된 전민 독서활동《선비집안(书香之家)》추천활동에서 연길시의 김복순가정이 전국 첫기 996세대《선비집안》의 하나로 뽑혔다. 김복순은 연길시제2중학교의 퇴직교원이고 그의 남편 김영택은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퇴직간부다. 두분이 다 독서를 좋아하다나니 집에 끊...
  • 2014-11-20
  •   최근에 출판된 “도문로협30년”을 펼쳐보며 과거사를 되풀이 하는 박순녀량주   중국 조선족들의 한국진출 등 대거 이동으로 거의 100% 조선족마을이 로인협회(로인독보조)로 마을을 운영하는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촌민자치”가 “로협자치”, “촌관자치”라는 ...
  • 2014-11-18
  • 북경시 왕징(望京), 야근을 마친 심상길(41살)씨는 고향친구와 함께 와인 한병에 청국장 한그릇을 들고 집앞 간이걸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에게  터놓고 말할수 없는 회사내의 치렬한 경쟁속에서 부대끼며 받은 스트레스, 자식들의 학교이야기, 성큼 다가온 앞으로의 로후대비에 대...
  • 2014-11-12
  • “이 못난 할미가 해줄수 있는 일은 오로지 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외손주가 고아학교에서 잘 자라주기를 바랄뿐이유…” 연길시 건공가두 백옥사회구역의 신정숙로인(78살)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손녀와 손주가 걱정되여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들 하나, 딸 둘을 슬...
  • 2014-11-06
  •   중국국제방송국조선어부에서 연길 아리랑방송, 연길시 로인뢰봉반과 손잡고 꾸려가는 “CRI희망장학금”전달식이 10월 31일 연길아리랑방송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 제2회로 이어지는 1만7000원의 장학금은 국제방송국조선어부 13명 공산당원들이 연변지구의 17명 불우학생들을 도맡고 해마다 보내...
  • 2014-11-04
  •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생활고를 겪던 일가족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3일 인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50분께 인천시 남구의 한 빌라에서 A(51)씨, 부인 B(45)씨, 딸 C(12)양이 숨져 있는 것을 C양의 담임교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C양 담임교사는 경찰에...
  • 2014-11-03
  • 《살아있는한 내손주 뒤바라지 내손으로 할겁니다》 -흑룡강성 계동현 운봉진 신봉촌 76세 박순옥할머니의 기막힌 사연   일전 연길윤세성형미용병원으로 76세나는 할머니 한분이 주름미용수술을 받으러 찾아왔다. 《이 나이에 미용을 한다고 바람 났나 웃을지 모르겠소만 한국에 가 일을 하자면 늙었다고 채용하는데...
  • 2014-11-01
  • 가족같은 마음으로 간병하는데, 막 대하고 무시할 땐 비참해요 세수부터 대소변까지 ‘환자의 그림자’… 식사는 틈날 때 ‘후다닥’ 《 “긴 병 앞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지요. 오랜 시간 간병은 가족들을 번거롭게 만듭니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간병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
  • 2014-10-31
  • “군중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시시각각 군중의 일상을 마음에 두어야만 군중도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28일, 새 시기 “뢰봉식”소방전사로 불리울만큼 남다른 각오를 보이고있는 주공안소방지대 돈화중대의 조향휘지도원(34세)은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조향휘가 소방사업에 충실하면서 롱아학...
  • 2014-10-29
  • “두발로 꿋꿋이 산을 밟고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산에 마음을 담아 톱고 또 톱아본다.” 18일,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산을 타는 사람(주등산협회,연룡도산악회 산악인)들을 따라 화룡의 성벽이라 일컫는 립자산(砬子山)으로 향했다. 울긋불긋 단풍빛이 바야흐로 사라지는 산을 첫눈에 바라보니 기대보다 다소...
  • 2014-10-24
  •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에게” …그리움 묻어나는 ‘감동’ 편지에 가슴은 ‘뭉클’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은 있다. 매일 생각나진 않지만 그리운 이의 얼굴과 목소리는 가슴 한 켠에 자리하고 함께한 시간들은 이따금 되새기는 추억이 된다. 이때 글로 털어놓는 진심어린...
  • 2014-10-21
  •   -연변적 남자 리국룡과 중경 녀인 주란란의 러브스토리 리국룡 주란란 부부 지난 9월, 연변팀이 중경력범팀과 원정경기를 치르던  때 중경에서 한 연변의 조선족사나이와 중경토배기 주란란녀성이 가정을 뭇고 생활하면서 현지에서 유명한 《서울불고기집》까지 운영하고있다는것이 포착되였다. 경기장에서 만난...
  • 2014-10-21
  •  “맹인은 머리속에 지도가 있습니다.시내에 큰 거리와 작은 거리가 몇개나 되고 큰 단위와 식당들이 어떻게 자리잡고있으며 길이 어디로 어떻게 나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알고있습니다.” 8살 어린 나이에 시력이 감퇴되기 시작하다가 맹인이란 평생의 굴레를 안고 살게 된 조홍수(50살)씨가 홀로 당당하게 ...
  • 2014-10-16
  • “정수매씨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차분한 인내심 그리고 드높은 사업열정을 가진 분입니다.그리고 개성있는 사업방법을 갖고있습니다.적잖은 신소인원들은 가두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다짜고짜 정수매씨부터 찾습니다.”9월 25일, 돈화시 단강가두주임 왕군이 원 단강가두 신소판공실 주임 정수매씨(57세)를 두...
  • 2014-10-15
  • “10월 8일 수요일, 오늘 리서기와 함께 오전시간을 보냈다. 당지부 령도인 리서기는 나와 혈연관계는 없지만 마치 동생 같다. 오늘도 나의 최저생활보장년도검사때문에 나와 연변제2인민병원에 함께 갔다. 나는 홀로 걷지 못해 리서기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심내혈관과에서 고혈압병진단을 받았다. 진단결과를 들고 ...
  • 2014-10-14
  • 옥수수가을을 하는 뢰봉반 성원들 10월 11일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에서는 연길시 의란진 리민 신암 1, 2촌의 장덕순 등 세 가정을 도와 옥수수가을걷이를 해주었다. 신암2촌에서 살고있는 장덕순은 뇌출혈로 로동력을 상실해 안해 혼자서 남편을 보살피고 밭일을 해야 했다. 이런 형편을 알고 북산가두 뢰봉반에서는 인원...
  • 2014-10-13
  • 국경휴가기간이라 필자는 10월4일 아들과 손자를 이끌고 도문시 장안진의 소동구골안에 자리잡은 애심복리원을 찾았다.  보기좋게만든 계양대에는 오성붉은기가 나붓기며 산장을 빛내주었다. 그옛날 이곳은 일본놈들이 혁명자를 살해하여 머리를 산골짜기어구에 걸어놓군하였기에 백성들은 이곳을 “공산당 산&r...
  • 2014-10-08
  •  “경극은 제 삶의 활력소랍니다. 조선족이 무슨 경극을 하냐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가 즐기는 일이고 또한 저의 경극을 듣고 인정을 해줄때면 더없이 뿌듯하지요..그맛에 경극을 계속 하는거지요” 23일에 만난 연길시 진학가두 문회사회구역의 리은화(61세)씨는 동그란 얼굴에 선한 눈웃음, 차...
  • 2014-09-26
‹처음  이전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