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항정복장유한책임회사 최영희경리의 일가견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소규모의 기업을 중등기업으로 키워 나만의 특색,나만의 스타일로 갖춘‘영이네"브랜드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싶고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돕기 위한 사업에도 최선을 다 하고싶어요”
4일,사무실이전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연길시항정복장유한책임회사 최영희경리(52살, 3급 지체장애자)가 똑부러지게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십여차의 수술을 거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그는 장애라는 딱지때문에 대학문턱에서 배제되는 비운을 당했지만 신심과 희망만은 잃지 않았다.
“18살 때 우연히 백화점을 거닐다가 여러가지 아롱다롱한 수놓이제품들을 보고 수놓이가 나의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어요.그리하여 석현자수공장에 가서 일을 하면서 자수기술을 배웠고 나만의 스타일로 독특한 자수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당시 연길백화점에도 제가 설계하고 만든 자수제품이 진렬되였는데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나도 자립할수 있고 나도 자기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자기의 미래를 그려갈수 있다는것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였어요.”
새로운 꿈을 안고 공장에서 나온 그는 자그마한 자수가공부를 꾸리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 홍보하고 판매하였다.그가 만든 이색적인 자수제품은 질이 좋아 상가와 고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수제품만으로는 저의 꿈을 만족시킬수가 없었어요.”
1996년에 남편과 아들을 집에 남겨두고 4살난 어린 딸을 데리고 무작정 연길에 올라온 그는 처음에 남의 밑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가 수놓이를 한 옷들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것을 보고 과감히 매대를 세맡아 스스로 설계하고 수놓이를 하여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결국 눈썰미가 좋고 아이디어가 좋은 그가 만든 옷은 디자인이 새롭고 독특하여 삽시간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이는 장애라는 위구심을 안고살던 그한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연길서시장에서 차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고 복장도 전국 각지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그런데 옷을 대량 생산하면서 가공비가 많이 들고 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에 그는 또 복장가공공장을 꾸리기로 마음먹고 사처로 다니며 자금을 모으고 설비를 들여오고 공장을 임대맡고 일군을 모집하여 1997년에 영길복장가공공장을 앉히였다.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공장에 나가고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모든 심혈을 공장에 쏟아부었다.
“사업에서는 성공가도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가정에서는 어머니,안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것같지 못해요…”남편이 전적으롤 믿어주고 아이들도 리해하고있지만 어머니로서 안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녀이다.
항상 남다른 안목으로 남다른 아이디어로 남다른 제품을 만들어내여 오늘날의 “영이네”브랜드까지 만들어낸 그는 현재 복장생산과 판매를 일체화한, 20명좌우의 종업원을 거느린 연길시항정복장유한책임회사를 이끌어나가고있다.
“앞으로 인터넷판매도 결부하여 대중들이 선호하고 즐겨찾는 브랜드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낼거예요.”
련속 4년 우수공산당원,녀성창업능수,10대 창업업선봉,장애인표병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은 그는 그동안 장애인취업해결에 최선을 다 하는 한편 약세군체돕기에 2만여원의 성금과 물품을 내놓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꿈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는 최영희경리의 도전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연변일보 차순희 기자 김호 실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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