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경칩이 지났지만 밖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친다.
주말내내 방안에 콕 박혀있다가 심심풀이 삼아 오래만에 펼쳐든 사진첩, 그속에 흑백사진 한장이 눈길을 잡아 끈다. 뿌연 담배연기사이로 저가락이 휘어져라 두드려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를 선보이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보인다. “저런 얼굴 본적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넘치도록 행복한 얼굴이다.
너나할것없이 장단에 취해 즐거워하는 모습들이다. 바쁘고 각박한 숨쉴틈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탈출한 기쁨이 그대로 묻어난다.
저가락장단에 몸을 싣고 구들장 꺼지도록 발을 구르며 춤을 추던 어른들속에 끼여 그 시절의 끝자락을 잡은 나로서는 희미하게나마 끄집어내 볼수 있는 추억이 있어 다행이다.
명절이나 경사, 집안의 크고작은 행사때마다 빙 둘러앉아 깊어가는 밤을 아쉬워했던 가족들, 기울이던 술잔은 어느덧 마이크가 되고 저가락은 박자를 따라 춤을 춘다. 정체불명의 장단에 맞춰 “저가락”이 밥상을 두들기면 모두들 약속이나 한듯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를 빼놓으면 섭섭해할 정도로 분위기 후끈, 어느새 다들 돌아가며 한곡조씩 뽑아내고 노래가 시작될 때마다 우르르 몰려나가 춤판을 벌인다. 그렇게 맥주나 고량주가 두어고패 쫙 돌면 술자리 흥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저가락장단의 합창으로 온 집안이 들썩이던 시절이였다.
취기가 오르면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지금에 비하면 기성세대의 술자리는 소박하지만 다채로왔다. 노래방문화까지 사라져가는 요즘에는 가족모임도 식당에서 만나는것이 대부분,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각자 제집 찾아 뿔뿔이 흩어지니 저가락장단에 맞춰 시간가는것이 아까웠던 그 시절과는 더욱 비할바가 못된다. 분명 한없이 편리하게 차려진 화려한고 요란한 술상이지만 웬지 분위기는 서먹하고 불편하게 바뀌어가고있는듯 하다.
누군가는 저가락장단을 숙취뒤에 맛보는 뜨끈한 해장국 같은 존재라고 한다. 우리 민족이 타고난 민족성이기도 하다. 때로는 터질것 같은 함성으로 때로는 한을 삭이듯 절제된 음률로 장단을 맞추던 그 시절, 잘 못부르는 노래면 어떻고 잘 못추는 춤이면 어떤가? 즐기고 어울리는 광경이 아름답게 기억될뿐이다.
어릴적에는 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던, 어른들의 주사쯤으로 여겼던 저가락장단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박은희 특간부 기자
연변일보 3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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