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시 어느 한 주택가에 위치한 “최원단란글방”, 석현이 고향인 최원(54살)씨가 이 글방에서 영어와 일어를 가르친지도 20여년. 글방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중소학교 학생들과 외국류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사람이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가 없이는 단 한발작도 내디딜수가 없다. 게다가 독학으로 뒤늦게 성인고등교육입시에 합격해 연변대학 한어문학부를 졸업하고 학위를 취득하긴 했지만 이전까지 그녀가 받은 정규 교육은 소학교 4년을 다닌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독학으로 그 힘들다는 외국어를 익혔다. 능수능란한 의사전달은 물론 번역까지 할수 있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중생들에게 영어문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오늘까지 오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즐거움과 보람이 더 컸다. 이 사회의 주인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고 싶다”고 말을 이어간다.
어린시절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끌며 다니는 그녀는 늘 학교친구들의 놀림대상이 되군 했다. 스스로 포기했던 운동회며 소풍이며 체육시간, 그를 태우지 않고 지나치던 뻐스, “그런 몸으로 집에나 있지 학교는 왜 다니니?”간혹 길가던 사람들이 던지는 말들... 힘들고 상처받는 딸때문에 눈물짓는 부모님의 안타까운 말림까지 가슴에 담으면서 학교를 그만둘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외로움과 친구가 되여 하루하루 힘든 나날들을 보내는데 어느 순간 가까운 친구들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취직을 하면서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변화시킬수 있는것이 뭔가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넋놓고 세월을 보내기에는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하더라구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부 시기는 놓쳤지만 용기 내여 다시 꺼낸 책이 외국어 책이였다. 언젠가 휠체어가 없이 두발로 걸어서 세계려행을 하겠노라 다짐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였다.
때마침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일어방송강좌를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사준 낡은 반도체라지오는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낮에는 강좌를 듣고 밤에는 밤잠을 줄여가며 복습, 예습을 반복하면서 단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적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뒤 도문시 과학기술관에서 영어학습반을 시작는데 그녀도 학습반에 신청을 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신청은 했지만 강의를 맡은 선생님이 휠체어에 몸을 실은 그녀를 보고 수업에 참가할수 없다고 단칼에 짤랐다. 어쩔수없이 창문밖에서 3시간을 내처 앉아서 강의를 엿듣고 집에 돌아와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자습으로 하루하루 실력이 늘자 남들처럼 보란듯이 대학에도 다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녀는 직접 도문시제2고급중학교를 찾아가 입시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얻어왔다. 끈질긴 노력덕분에 단번에 성인고등교육입시시험에 합격했다.
“그날 처음으로 시름놓고 엉엉 울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사정을 잘 아는 친구가 동생의 영어공부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은것을 계기로 그녀의 외국어 실력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과외를 받으려는 학생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지금은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니로, 아들이 존경하는 외국어선생님으로 불리우며 여유있는 웃음을 짓는 그녀는 “힘들다고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장애를 비롯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이 저를 보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며 느긋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장래의 계획을 장황하게 내세우지 않았다.
“찬찬히 주위를 살펴 조그만 일이라도 내 역할이 있는 곳을 찾겠다”는 한마디뿐이였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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