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시 룡성진 토산자촌에 가면 초록빛으로 물든 논옆에 채규호(57살)씨의 작업실이 있다. 호두껍질로 장식용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방이다.
목발을 짚은채 마당으로 쭉 내려오는 채규호씨가 활짝 웃는다.
“어휴, 금방 찾으셨네”라며 쏟아내는 목소리가 유난히도 살갑게 느껴온다.
공방은 지난 2009년에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페교를 개조해 나름의 작업실로 새롭게 손질했다. 허름한 공간에 적막한 기운마저 감돌았던 페교는 5년이 지난 지금 호두껍질공예품공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채규호표 작품들로 채워지고있다. 호두껍질 천지인 작업공간에서 채씨는 “이눔의 호두껍질로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고있다”며 호두껍질과 부대끼는 자신의 삶을 자랑한다.
4살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채규호씨는 목발없이는 한발자국도 내디디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였다. 하지만 홀로서기에 당당히 성공한 지금 그는 “장애 하나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냐”고 느긋하게 말하는 자신감과 자기사랑을 품은 넉넉한 마음을 품고있었다.
채규호씨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그의 직업을 한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공예품을 만드는 공예가… 다양을 재능을 가진 그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다. 지금은 공방을 운영하고있지만 사실 채규호씨는 지난 세기 80년대에 꽤나 “잘 나가는” 미술가로도 통했다. 한때 미술가로 성공하기 위해 1985년에 북경 중앙미술학원으로 떠나 4년간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화가의 꿈을 접고 그림도 그리고 돈도 벌수 있는 “간판쟁이”를 택했다.
그가 붓과 물감으로 직접 극장간판에 그려넣은 영화속 한장면이나 길거리 광고간판, 각종 가구와 생활용품에 그려넣은 그림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아냈다. 하지만 90년대를 지나 컴퓨터 실사간판에 밀려 어쩔수 없이 붓을 놓아야 했다.
“간판을 그리던 물감조차 나오지 않는 세상이 오더군요.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싶었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자신의 평생직업이라 여겼던 “간판쟁이”를 그만두고 하루하루 실의에 빠져 지내던중 문득 재미삼아 버려진 호두껍질로 연필꽂이를 만들다가 공예품의 맛을 알게 되였단다.
“아무리 붙들고있어도 싫증이 안 났어요. 이젠 호두껍질이 내 피를 끓게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가 따라 웃고싶게 만드는 소박한 미소를 띠우고 말을 건넨다.
거칠고 투박했던 호두껍질을 잘 보듬어서 하나하나 풀로 붙여 공예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섬세한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잘못 만들면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된다. 어떤 작품은 몇개월, 길게는 지어 몇년에 걸쳐 완성하는 더디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는 호두껍질로 공예품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조차도 깜깜 잊고 산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작품활동은 각종 공예품대전에서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높이 3메터가 다 되는 호두껍질로 만든 꽃병은 지난 2012년 길림성 제1회 장애인 우수작품전시회에서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공예품은 소문을 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공방운영도 안정적인편이고 주문도 꾸준하게 들어오고있다.
공예품의 매력에 푹 빠진 채규호씨는 밤낮으로 호두껍질과 씨름하며 지금은 수강생과 직원까지 거느린 어엿한 공방장이 됐다. 현재 공방에는 모두 1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장애인이다. 대부분 공방에 오기전까지는 세상밖으로 나가본적도 없는이들도 있고 딱히 할줄 아는 일도 없는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곳 공방에 와서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면서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장애인의 이미지를 팔아 동정심을 사고싶지는 않아요.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 해도 우리가 만들어낸 공예품은 많은 사람들이 찬탄하는 어디 내놔도 짝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들이지요”라고 당당하게 털어놓는 채규호씨, 세상 모두가 알아주는 진정한 아름다운 “쟁이”가 되련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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