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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은 ‘환자의 그림자’… 식사는 틈날 때 ‘후다닥’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0월31일 09시25분    조회: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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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같은 마음으로 간병하는데, 막 대하고 무시할 땐 비참해요

세수부터 대소변까지 ‘환자의 그림자’… 식사는 틈날 때 ‘후다닥’

《 “긴 병 앞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지요. 오랜 시간 간병은 가족들을 번거롭게 만듭니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간병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12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서 활동하는 국내 간병인은 5만5663명에 이릅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간병인도 꽤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생을 정리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리고 암 치료를 받으며 울고 웃는 환자들과 24시간 함께하는 간병인들.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가래 빼내는 의료팀 일까지 떠맡아

―환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옆에서 모든 것을 돕는다. 세수나 양치질, 식사, 대소변 등 세세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신경 써야 한다. 환자에 따라 유동식을 드셔야 하는 분이 있기 때문에 코에 줄을 넣고 빼거나 흡입기를 이용해 가래 빼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도 원래는 의료팀 관할이지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우리가 하고 있다.(62·10년차·여)

―수시로 끓는 가래를 빼드린다. 카테터(흡인용 튜브 모양 기구)가 한 박스에 50개인데 하루에 보통 한 박스를 다 쓴다. 하루에 석션(흡입)만 50번 하는 거다.(59·11년차·여)

 
―환자들은 대소변보는 게 가장 힘들다. 1시간에 한 번 정도 소변을 보면 바로바로 통을 치워드린다. 주사나 링거는 간호사 일이고 간병인은 식사나 환자복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옆에서 챙겨드린다고 보면 된다.(60·2년차·여)

―지금 돌보는 환자는 신장방광 수술을 해서 소변주머니를 차고 있다. 소변주머니를 체크하는 일은 간호사가 하고, 나는 소변주머니가 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리고 환자가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편하게 생활하도록 도와준다.(62·10년차·여)

―가만히 있기보다는 말을 붙이는 편이다. 또 눈곱 떼 드리고, 손톱 깎아드리는 작은 스킨십을 통해 어색함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할머님, 할아버님들은 손을 잡아드리면 정말 좋아하신다. 나를 간병인이 아닌 딸처럼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도 딸처럼 해드리려고 더 애쓴다.(58·6년차·여)

―젊은 환자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젊은 환자는 되도록이면 피한다. 육체적으로 힘드니 정신적으로라도 덜 힘들고 싶기 때문이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그나마 부담이 적다.(66·29년차·여)

―첫날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어떤 분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조용한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말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반대로 활발한 분이라면 그 분위기에 맞추려고 노력한다.(60·10년차·여)


4대보험도 퇴직금도 없는 일용직

―밥 챙겨먹기가 제일 힘들다. 10일 정도 일을 한다고 치면 집에서 10일치의 밥과 반찬을 다 싸올 수가 없다.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병실 내에 둘 곳이 너무 부족하다. 다인실의 경우 공동냉장고를 쓰는데 환자, 보호자, 간병인이 같이 쓰다 보니 반찬통 하나 놓기가 조심스럽다. 밖에서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보니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고 매끼 사먹자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된다.(62·10년차·여)

―보호자가 교대를 해주면 구내식당을 가거나 병원 밖에 나가기도 한다. 그러지 못하면 환자가 밥 먹을 때 간이침대에서 먹는다. 지금 보고 있는 환자분은 금식기간이라 바로 옆에서 식사하기 민망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먹는다.(58·6년차·여)

―축 늘어진 환자를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에 무리가 왔다. 이 후로도 몇 번을 삐끗해서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다. 병원에서는 일을 쉬라고 하지만 생계가 걸린 일이라 약으로 버티고 있다.(62·11년차·중국동포·여)

―밤새도록 자다 깨다 한다. 자는 게 자는 게 아니다. 차라리 3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 일을 한다면 피곤해도 그 편이 낫겠다.(61·2년차·여)

―짬을 내서 잠깐씩은 쉰다. 그래도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제대로 쉴 수는 없고 보호자가 오면 더더욱 쉴 수 없다. 사장님이 퇴근 안 하고 있는데 직원이 퇴근할 수 있겠나. 보호자가 쉬라고 말해줘도 불편해서 쉴 수 없다.(61·2년차·여)

―일용직에 4대보험, 퇴직금, 보너스 일절 없다. 내가 소속된 회사는 점점 커 가는데 나는 여전히 일용직일 뿐이다.(60·10년차·여)

―24시간에 7만 원으로 책정돼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틀에 7만 원 받는 것과 다름없다. 어제 오후 1시에 나오면 오늘 오후 1시까지 일하는 거니까.(62·2년차·여)


가족도 못하는 걸 요구할 때 정말 힘들어요

―일당 7만 원 줬으니 내 할 도리는 다했다는 식으로 거칠게 말하고 막 대하는 분도 있다. 그럴 때면 아무리 봉사정신으로 시작한 일이라 해도 내가 마음이 닫히더라. 그런 환자분의 간병 일은 그만둔다. 해봤자 나도 힘들고 환자도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데 몸보다 마음이 힘든 게 고통이다. 수고한다고 말 한마디라도 해준다면 좋을 텐데….(58세·6년차·여)

―남자 암 환자를 보게 되었다. 첫날 따님이 와서는 7만5000원인 간병비를 다짜고짜 깎아달라는 거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내 앞에서 간병협회 광고지를 찢어버리고 간병협회와 노동청에까지 전화해 “간병 이까짓 게 뭐라고 이렇게 비싸냐!”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결국 간병비로 7만 원만 받았다. 무시란 무시는 다하면서 뭘 그리 바라는 게 많은지. 그날 집에 가서는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61·4년차·여)

―한 번은 환자분이 밤을 넘기지 못할 만큼 위독해 보였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알렸더니 의사가 3, 4일은 버틴다고 말했다며 나보고 더 있어 달라는 거다. 환자의 임종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보호자는 오지 않았고 환자분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셨다.(62·10년차·여)

―남자 환자라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짓궂은 분들이 있다. 간병인은 원칙적으로 안마를 금지하고 있는데 환자분이 다리 좀 주물러 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런데 허벅지 안쪽까지 주물러 달라며 노골적인 표현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성적 수치심에 울컥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괴롭다.(60·10년차·여)


그래도 우리가 이 현장을 지키는 이유

―예전에는 간병할 여건이 못 되어서 간병인을 고용했다면 요즘은 간병할 형편이 돼도 서로에게 미루다가 이렇게 싸울 거면 차라리 간병인을 쓰자 하고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부분 고령의 환자인 경우가 그렇다.(59·11년차·여)

―장출혈로 입원한 할머니였는데 일주일을 모셨다. 자식들이 병원에 찾아오지 않아 많이 서운해 하시던 게 기억이 난다. 심지어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의료진이 가족들에게 알렸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돌아가시고 4시간이 지나서야 자식들이 찾아왔다. 씁쓸했다.(66·29년차·여)

―팔순이 넘은 할아버님이 담도암으로 입원하셨다. 수술하고 한 달 반을 돌봐드렸는데 다행스럽게도 많이 좋아지셔서 퇴원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럴 땐 꼭 내가 고친 것처럼 신이 난다. 퇴원하기 전에 할아버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오전 내내 병원을 돌아다녔다.(62·12년차·여)

―간병인도 직업인으로서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일을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일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간병인도 환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환자와 보호자도 우리를 직업인으로 바라봐주고 믿어줬으면 한다.(62·10년차·여)

―우리도 간병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직업인이다. ‘아줌마’나 ‘간병인 아줌마’로 불리는 것보다는 ‘간병사’라고 불리는 게 훨씬 좋다. 간병인이 공식 명칭이지만 나를 존중해준다는 의미가 더해진 간병사라면 나도 직업의식을 갖고 조금 더 열심히 일할 것 같다.(59·11년차·여)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남자 고등학생 환자였는데 화장실이 문제였다.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는데 남학생이다 보니 부끄러워서 변을 보지 못했다. 두고 볼 수만은 없으니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며 어르고 달랬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헤어지기 아쉬울 정도로 마음이 가는 환자였다.(57·8년차·여)
 
―척추 장애로 평생을 꼽추로 사셨던 분이었다. 수술을 하고 반듯하게 누워 자고 키도 조금 크셨는데 간호 잘해줘서 고맙다며 최근까지 연락을 하신다.(62·10년차·여)

―간병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더라도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럴 때면 참 고맙다.(57·13년차·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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