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34>‘67년 해로’ 老부부가 사는 법
결혼생활 67년째인 송성섭 씨(오른쪽)와 이분녀 씨 부부가 19일 강원 홍천군 자택 앞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문 밖으로 나오는 아내 이 씨를 위해 송 씨는 익숙한 듯 신발을 꺼내 아내 앞에 내려놓았다. 홍천=윤수민 기자 soom@donga.com
한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21일 부인 박영옥 여사를 떠나보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아내와 마지막 순간 작별의 입맞춤을 나눠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혼율이 높아져 가는 현 세태를 꼬집기라도 하듯 백년해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월 한 달간 ‘약속’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 연중기획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취재팀은 올해로 결혼생활 67년째를 맞은 송성섭(102), 이분녀 씨(85·여) 부부를 만났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백년해로의 비결과 약속의 의미가 녹아들어 있었다.
19일 강원 홍천군 자택에서 만난 송 씨는 처마 밑 평상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에 나무지팡이를 쥔 그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02세가 된 송 씨에게 나무를 하는 것은 반평생 이상 지켜온 약속. 일반인에게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을 가까운 거리지만 거동이 불편한 송 씨에게 오가는 길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기자가 집에 가스보일러를 두고도 왜 나무를 때느냐고 묻자 “저 사람(아내)이 오가는 창고 건물은 아직도 나무로 불을 땐다”는 답이 돌아왔다. 송 씨는 허리가 굽은 이 씨가 집 밖으로 나오자 익숙하다는 듯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아내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애정표현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송 씨가 이 약속을 거르지 않는 것은 아내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결혼경험이 있던 송 씨와 열아홉의 나이에 인연을 맺은 아내 이 씨에게 결혼생활은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7남매 중 맏이인 남편과 나이차가 큰 탓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시동생도 여럿 있었지만 모두 자식처럼 뒷바라지를 했다. 6·25전쟁 때는 군에 징집된 남편을 대신해 피란길을 이끄는 집안의 기둥 역할을 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세대임에도 송 씨 부부가 동네에서 ‘서로 알뜰살뜰히 챙기는 부부’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탓하지 말자’는 부부간의 약속 덕택. 이 씨는 “잘하네, 못하네 하는 것 없이 그냥 봐줬던 것이 큰 부침 없이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송 씨는 “자기 할 일 묵묵히 자기가 알아서 하면 (부부가) 서로 잔소리 할 일 없다”며 요즘 늘어나는 이혼 부부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부자리가 펴진 방에 놓인 낡은 재봉틀은 송 씨 부부가 함께한 삶의 상징이다. 이 씨는 “시동생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도 없이 길쌈을 했더니 셋째 아들이 태어나던 해(1960년)에 남편이 재봉틀을 선물했다”며 “선물로 받은 금반지보다 재봉틀이 소중해서, 쓰지도 않는데 내다버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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