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품위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최근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서 건강한 70대 영국여인이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질 패러우'란 이름의 이 여성은 영국에선 안락사가 불법인 탓에 죽기 위해 스위스로 왔고, 스스로 모든 장례식 준비를 마친 뒤 죽기 직전 남편과 마지막 만찬도 즐겼습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것도 아닌,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그녀는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됐을까요?
올해 75살인 질 패러우의 직업은 간호사로, 특히 노인 간호를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해오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늙는다는 건 끔직하다"고 여기게 된 겁니다. 죽기 직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평생 나이 든 사람을 돌보면서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고, 대체로 끔찍하다"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아주 건강했던 그녀는 대상포진을 앓으면서 자신이 늙었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대상포진에선 회복됐지만, 그녀는 자신이 늙었고, 자신의 삶이 다했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동안 안락사는 말기병 환자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으로 인식돼왔습니다.
그러나 질 패러우에 앞서 지난 5월에는 전혀 위독하지 않은 영국의 50대 암환자가 역시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등 매우 건강한 데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이 속속 이어지면서 다시 안락사 허용에 대한 논쟁들이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1997년 미국 오리건주가 허용한 데 이어, 유럽에서는 2001년 네델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지에선 허용되거나 기소대상에서 제외되는 형태로 사실상 합법화된 국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안락사를 허용한 지 이미 10년이 훌쩍 넘은 벨기에의 경우는 2013년 기준으로 한해 1800건이 넘는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말기 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닌 이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상황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그만큼 그 사회가 '노년의 삶'에 대한 바람직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경제력도 있고, 가족도 있고, 여전히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노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식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노인복지의 수준이 높은 유럽에서도 "늙는 것은 끔찍하다"며 안락사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안락사도 절대 허용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노인복지의 수준도 열악하고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 한국의 노인들을 자살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요?
안락사가 허용된 일부 국가에서 돈 있는 노인들의 경우는 품위 있게 삶을 마감하겠다며 안락사라도 선택할 수 있지만, 노인에 대한 복지도, 사회적 인식도 열악한 우리나라의 노인에겐 '살아내야 할 노년의 시간'이 너무 가혹하기만 할지도 모릅니다.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하는 유럽의 노인들 현실을 우리가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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