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빨래줄
김금단
점심을 먹고 거실에서 베란다를 마주선 나의 육안으로 베란다의 물기를 걷혀가고 있는 빨래들이 들어온다. 나의 청바지며 가슴이 볼록해진 딸애의 속옷이며 치마가 대롱대롱 걸려있는 빨래줄을 바라보며 문득 낯익은 풍경 하나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고향집 기둥과 대나무 말뚝 사이를 이어놓는 한갈래의 끈-엄마의 빨래줄, 엄마의 빨래줄은 엄마의 삶을 신통히도 닮아있었다.
동지 섣달에도 가녀린 몸으로 자기 몸에 걸친 묵직한 옷들의 무게를 감당해내며 차가운 랭기와 윙윙 불어치는 거친 바람의 시련에도 끄덕없이 고드름 같은 빨래를 달고있는 엄마의 빨래줄은 다섯 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틈새에 끼여 삶을 살아온 엄마는 옷자락에 조롱조롱 매달린 어린 자식들을 먹여살린다는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빨래줄은 늘 색 바래고 소박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입다 버린 옷을 입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셨던 엄마, 우리 집 빨래줄에는 단 한번도 엄마의 이쁜 옷들이 걸려본적 없었다. 엄마의 하얗고 이쁜 외모와 매끄럽던 피부는 람루한 옷속에 감춰진채 빛을 잃어갔다.
제 몸에 달린 무게가 버거울 때에는 유연성 있게 축 늘어진 몸으로 빨래를 믿고 품어주는 빨래줄처럼 엄마는 무거운 짐들을 머리에 이고 오셨고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처럼 힘든 모든것을 품어주셨다.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엄마의 내리사랑은 희망과 절망의 계곡을 무수히 오르내렸을것이다. 어깨에 진 짐이 천근만근 무게가 되여 엄마를 내리눌러 엄마는 깊은 신음조차 토해내지 못하면서도 용케도 그 험난한 보리고개를 잘 버텨올수 있었던것은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을 닮아서였다. 엄마는 올망졸망한 우리가 언젠가는 커서 가정에 보탬이 될것이라고 굳게 믿으셨다. 그 믿음 하나로 때로는 허리 펼 틈조차도 아끼면서 땀방울 송송 맺힌 얼굴로 소마냥 억척스레 일하면서 우리만 믿고 앞을 향해 달려오셨다.
엄마가 정성스레 직접 가꾼 햇강냉이며 토실토실한 감자들은 엄마 머리우 똬리에 무겁게 얹혀져 시장에 나가 인심 좋게 팔렸다. 우리들의 밥상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해주었던 감자는 때로는 엄마와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다. 감자 줄거리밑에서 감자를 찾다가 찾지 못해 손이 흙밑으로 깊게 파고드는 순간 감자가 손톱밑 가시가 되여 엄마의 손톱눈사이로 파고들었고 엄마의 손톱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건만 엄마는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생계가 제일 급했던지라 엄마한테는 아픔조차 외면된 세계였다. 삶은 햇강냉이는 똬리우에 얹혀졌건만 한여름의 뜨거운 햇강냉이 주무니속 열기는 엄마의 머리를 찜질하였다.
엄마는 맏며느리로 시동생 둘, 시누이 한명 딸린 김씨 집안에 발을 들여놓은 날부터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을 지내오시면서 살아왔다. 아니, 어쩌면 대가정에 있는 날 모두 그렇게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금방 시집 왔을 때 동네에서 아버지가 핵에 로출되여 2~3년 밖에 살지 못할것이라고 수군덕거리는 말이 엄마의 귀에 들려왔다. 잔페군인인 아버지는 자신의 운명과 지친 삶을 종종 술로 새김질하셨다. 그때마다 엄마의 삶을 붙들어준것은 무엇이였을가? 술 마시고 주정하시는 아버지를 엄마는 “원쑤”라고 불렀지만 그 말속에 들어있는 끈끈함이 어머니를 지탱해준 힘이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못된 시집살이에 겹쳐 아버지를 향하는 원망도 컸지만 엄마의 시선은 늘 아버지를 향하였다. 엄마는 유연한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것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셨다.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순간들은 자칫 마음속 사랑의 끈을 썩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마음속에 간직한 그 사랑의 끈은 썩지 않고 빨래줄마냥 대나무 말뚝과 집 기둥 사이에 있었다. 우리들은 엄마의 빨래줄에 나붓기는 빨래였다. 그래서 엄마는 그 끈을 놓을수 없었다. 힘든 비바람속에서도 엄마는 마음속 끈을 고운 물감으로 색칠하면서 마음속에 굳게 뿌리를 내려갔다. 그 힘의 근원이 자식이였지만 엄마에게 있어서는 아버지도 가족이기에 결코 외면할수 없는 함께 손 잡고 걸어야만 했던 존재였다.
푸근한 엄마처럼 엄마의 빨래줄은 때로는 자연의 휴식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봄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재잘거리며 빨래줄에 촘촘히 앉아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콩나물 대가리와 같은 오선보와 흡사하다. 빨래줄에는 가끔 지나가던 참새들도 머무르기도 하고 여름이면 고추잠자리며 왕잠자리들이 사뿐히 내려앉아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련상시킨다.
살면서 나는 이따금씩 엄마의 빨래줄 존재를 새록새록 떠올린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강산도 몇십번 변하고 지지리도 어렵던 생활도 끝났건만 엄마의 빨래줄에는 지금도 비싼 옷들이 나붓기는 일은 절대로 없다. 빨래가 넘쳐날 때면 울바자가 엄마의 빨래줄이 되여주기도 한다. 엄마곁에서 말없이 보아온 엄마의 빨래줄은 우리들에게 알뜰살뜰 소박하게 사는 거울이 되여주었다.
엄마는 여직껏 살아오시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자식들과 집안을 위해서만 자신을 바쳤다. 엄마가 자식들의 마음에 새겨주신 그 빨래줄은 엄마곁을 떠난지 이삼십년이 되여가고있건만 지금도 생생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 힘으로 우리 자식들은 머나먼 타향에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모든것들을 삶의 섭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내며 살아가고있다. 아마 우리도 엄마처럼 서로에게 빨래줄 같은 존재가 되여주었기때문이라고 믿는다.
내 키를 엇비슷이 따라오고있는 딸애를 두고보니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인제야 알것 같고 엄마가 되고나서야 내 마음을 안다는 엄마의 말을 어렴풋하게 리해하게 되였다.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내리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것을 내여주고 한평생을 껍데기뿐인 몸으로 살아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것 같다. 여태껏 무심했던 엄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엄마를 이젠 알것 같다.
든든한 빨래줄밑에서 빨래가 떨어지지 않고 정결하게 마를수 있듯 가정도 사회도 부실한 빨래줄아래에서는 건강할수 없을것이다.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져가고있고 가진것이 점점 많아지고있지만 인심은 되려 점점 각박해져만 간다. 하지만 이런 세상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나가야만 하는 인연이다. 하찮은 존재더라고 서로에게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마냥 조화가 되여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싶다.
우리는 모두가 엄마의 빨래줄마냥 믿음을 주는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다.
뭉게뭉게 흘러가는 하얀 구름 너머로 고향집 엄마의 빨래줄에 하얀 빨래가 하느작거린다.
<청년생활>잡지 2016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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