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미문화상 응모글 7] 아버지와 술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24일 10시01분    조회:123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술
문 호 

 
늘 한결같은  친구가 나에게 고급술 한병을 선물하였다. 왠지 술병을 마주하니 눈앞이 흐릿해진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도 그렇지만 문뜩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밥같은것이였다. 아마도 밥과 술중에서 선택하라면 아버지는 가타부타 술을 선택할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고급술 한병 못드시고 먼길을 떠나셨다.

세월이 참 화살처럼 빠르다. 아버지가 우리곁을 떠난지도 벌써 26년 세월이 흘렀다.

중년이 되면 추억이 짙다고 요즘 따라 새삼스레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술에 애착이 간다. 아버지는 술을 약처럼 배웠고 정으로 마셨고 남자답게 마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훈춘 어느 시골이다. 어글어글 쌍겹진 눈매에 슬쩍 곡선을 그으며 넘어간 반양머리, 거기에 약간 구레나룻인 아버지는 피끗 곁눈질해도 터프한 면이 보이는 그런 미남이였다. 당시 아버지는 여유치 못한 상황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포기했지만 자신의 끈질긴 노력으로 초중공부를 마치고 선후로 농회주석, 인민경찰… 등을 거쳐 나중에는 연변주 어느 한 대형기업에서 인사간부로 사업하셨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결혼하고 뒤늦게 술을 배웠다고 한다. 당시 경찰사업에 종사하던 아버지는 늘 한겨울에도 제때에 주무시지 못하고 사건처리에 드바삐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기아와 추위, 긴장을 덜기 위해 술을 배운것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술에 아버지는 짜장 술군이 되였다.

 아버지는 허드레 술꾼이 아니다. 술꾼답게 술문화도 얼마간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술의 력사가 몇천년이 되고 술의 종류도 대략 백주, 황주 과실주 등등으로 나누고 백주는 주로 쌀을 재료로 하여 만든것이기에 숙취가 적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해당자료를 찾아봤더니 백주는 수수, 밀 옥수수 등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술로서 도수는 높지만 단백질함유량이 적어서 비교적 숙취가 적다고 씌여져있었다. 모태주, 오량액, 공부가주, 아과두주(二锅头) 등이 바로 그런 술에 속하고있었다. 그중 이과두주를 내놓고 기타 술은 다 고급술이여서 아마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술을 마신것 같지 않다. 솔직히 아버지는 당시 상황으로 해서 주로 근들이 술을 마셨고 이과두주 같은것도 썩 후에야 마실수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문인은 못되였지만 주꾼들인 량산박 호한들과 소동파와 리태백을 알고있었고 술에도 례법이 있다는 도리를 알고있었다. 문뜩 아버지의 “주급”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뚜져봤더니 아버지는 6단쯤에 는 가까운것 같다.  6단은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이였다. 알고보면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였다. 아버지는 술과 인정을 모두 금싸락처럼 아꼈다.

사업에 참가한후 아버지는 농촌을 벗어나 연길시에 정착했다. 당시 아버지가 받는 로임은 56원 남짓했지만 식솔 여덟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였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늘 손님들이 밀물처럼 쓸어들었다. 아버지의 고향이 시골이다보니 손님들은 주로 훈춘시골의 농민들로서 그들은 연길에 오면 적어도 우리집에서 며칠씩 묵어가군 했다.

그들이 오면 항상 춤추는것이 술병이였다. 한번도 아니고 번번히 술대접을 한다는것이 우리집 수준에 비하면 힘에 부친 일이였다. 솔직히 생활난으로 하여 우리들은 당시 오전씩 하는 연필사탕마저 별로 사먹지 못하고있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또 손님이 오게 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앓는 안해를 데리고 연변병원으로 왔다는 손님은 빈손으로 오고도 끄떡없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순간 콩알같은 가슴에 심술이 꼴똑 넘쳤다.

나는 상점에서 술 한근을 산후 살짝 혀끝에 대보았다. 쓰겁고 매캐한것이 독약같았다. 갑자기 약은 꾀가 떠올라 나는 두냥 술을 물리고 거스름돈을 챙겨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도중에서 물로서 술병을 채우고 아버지께 드렸다. 콩콩 가슴이 방망이질쳤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날 일이 터지지 않았다. 손님이 돌아간 이튿날 나는 사탕을 사려고 상점으로 자박자박 걸어갔다. 맙소사! 그 길에 아버지가 떡 버티고있었다. 순간 도적이 발이 저리다고 온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허나 뢰성은 없었다. 아버지는 침묵끝에 조용히 나를 타일렀다. 사람은 인정을 알아야 한다. 그 분은 아버지가 시골에 있을때 늘 삶은 옥수수며 채소 같은것을 갖다주던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빈손으로 온 그 마음이 오죽했겠냐며 벌써부터 거짓을 부리고 돈에 집착하면 좋은 사람이 못된다고 하였다. 차분한 말씀이였으나 귀쌈처럼 얼굴을 쳤다. 내 두볼은 대뜸 고추처럼 익어갔다…

아버지는 바로 이런 분이다. 아버지는 술은 정이라고 했다. 물처럼 아니라 가슴으로 마셔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가끔은 싫어도 마셔야 하지만 마시다보면 그만큼 정이 흐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혼자보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술마시기를 즐겼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옆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이웃들과 동사자들과 지어는 큰 매형과도 썩잘 어울려 술을 드셨다. 아버지는 술을 마실때면 늘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그래서 엄마한테서 제노릇을 못한다는 소릴 밥먹듯 들었다.

해마다 큰 명절때면 아버지는 꼭 엄마더러 한상을 차리게 하고는 동네분들을 청해서 함께 술을 드셨다. 비록 그들 대부분이 일반 로동자들이였으나 아버지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구속감도 없었다. 술상에서 누군가 바가지장단을 치며 흥이라도 돋굴라치면 평시 목석같은 아버지도 일어서서 너울너울 팔을 내젓군 했다. 물론 예술세포가 전혀 없는 아버지의 춤은 곱사등이 말을 타듯 우습기가 그지 없었지만 우리에겐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 안겨오기만 했다. 평소 아버지는 벙어리마냥 늘 침묵이다.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시면 철문같은 입을 열고 우리들을 정겹게 바라보다가 가끔씩 칭찬도 해주군 했다. 그래서 어릴때 나는 술소리만 나와도 공연히 아버지먼저 기분에 들떠있군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주풍은 70년대초순을 넘어서면서 점차 변해갔다. 아버지는 동란의 년대에 인사권을 빼앗기고 당치도 않게 공인선전대원으로, 산골도로건설장의 일반 관리원으로 쫓겨내려갔다.  이리저리 밀려났으며 돌아온후에도 한동안은 일반 로동자로도 있었다. 주로 문서와 씨름하던 아버지라 당시 아버지는 망치 하나 제대로 쓸줄 몰랐다. 하지만  로동자들은 아버지를 배척하지 않고 하나 하나 일을 배워주면서 배려해주었다. 그 인정에 아버지는 또 호주머니를 털었고 그들과 한몸이 되였다. 일선 로동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호방하고 그만큼 술도 많이 마신다.  솔직히 세파속에 찌들리고 나이도 있는 아버지는 그들을 따르기가 힘에 부쳤다. 점차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취한 모습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면 우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화살처럼 날아가 아버지 몸에 꼽히군 했다. 나는 더는 얌전히 술심부름을 하지 않았고 그 미열로 사업에 참가한후에도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 좋은 술을 산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버지께 죄송한 맘뿐이다. 사실 그때 아버지가 술힘을 빌지 않았다면 어찌 그 괴로움을 이겨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해빛을 기다리면서 가장으로서 우리들을 지켜줄수가 있었으랴!

아버지 인생은 길지 못했다. 환갑이 넘자 아버지는 뇌혈전으로 두번이나 병원에 입원하였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했던 분이 더는 술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술꾼이여도 별로 좋은 술은 못드셨던 아버지,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어느날 큰 매형이 오량액을 갇고 와서 약간이라도 맛을 보이고저 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 아버지는 술병만 물끄럼이 보다가 67세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술은 아버지 절반 인생이다. 아버지는 희로애락을 말보다는 술로서 느꼈다. “술은 세상을 둥글게 만든다. 그러니 애야, 남자가 되려면 적당히 술맛을 알아야 하네라. 그래야 친구도 생기고 서로가 정도 나눌수 있는거다.” .

어릴때 가끔 들어오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사실 아버지는 순박한 술꾼이였다. 물론 아버지도 “꽈배기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종래로 술상에서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는 법이 없었고 “소동작” 같은것은 더구나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반생을 눅거리 술을 마셨어도 기가 죽지 않고 량심적으로 마셨고 남자답게 마셨고 인간답게 마셨다. 어쩜 아버지야말로 진짜 호방한 술꾼이 아닐가? 하지만 요즘 세월엔 가끔 술이 그 어떤 목적을 바탕으로 한 교역물로 번지고있어 기분이 씁쓰레할 때가 적지 않다. 술은 술로서 익을 때 보다 달콤하고 향긋한 법인데 그 술에 “사탕포탄”을 넣고 자기의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령전에 술을 부으면서 경건히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술, 참으로 아버지와 같고 사나이와도 같은 이름이다. 술은 또한 각박한 세상에 내려보낸 하늘의 달콤한 선물이다.

누군가 한잔술에 대화가 열리고 두잔술에 정이 흐르고 석잔술에 꽃향이 넘친다고 했다. 삶의 윤활제이고 랑만의 대명사인 술, 이제는 나도 그와 친구로 되여 삶의 풍류를 만끽하고싶다. 하여 눈송이 흩날리는 이겨울에 한잔 술에 그리움을 타고 아버지와 그리고 이세상 사람들과 오손도손 커피향같은 대화를 나눠가면서 만물이 움트는 새봄을 맞고싶다!
  <청년생활> 잡지 2015년 12월 호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에이즈가 불치병이란 타이틀에서 점점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후 치료를 하긴 어렵지만 사전에 예방하기는 쉬워졌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예방약의 효과가 실제로 증명됐다.   샌프란시스코 공중보건부 성건강클리닉 연구진은 16일(현지시간) 로이터를 통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HIV 감염 예방약...
  • 2015-11-17
  • 자선슈퍼소비 65원 40전 적십자 회비 20원 새일대관심활동 34원 80전 유치원 정원에 나무심기... 이는 연길시 신흥가두 진달래자원봉사자인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로인협회 림복순회장의 《애심통장》에 들어있는 애심행사 기록들이다. 《애심통장》은 지난 7월 연길시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에서 자원봉사를 즐기는 당원과...
  • 2015-11-17
  •   다양한 창업이 시도되고있는 시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인터넷과 관련된 창업은 상당한 매력이 있다. 적어도 많은 자본금을 필요로 하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시대 인터넷관련 창업 역시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자신만의,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가 없으면 성공이란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하다. 16살에...
  • 2015-11-17
  • 11월 12일 오전, 길림성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에서는 청산소구역 주민으로부터 한통의 제보를 받았다. 아파트 꼭대기층에 설치한 태양에너지 설비의 루수로 인행도로가 결빙되여 주민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사회구역에에 도움을 청하였다. 사건제보를 받고 사회구역서기 오영숙은 급히 2명의 사업일군을 배...
  • 2015-11-16
  •      중앙TV서 아나운서 체험.     “빨리 학교에 돌아가고 싶어요. 동학들과 선생님이 그리워요.” 11살 조굉예가 부모님이랑 자주하는 말이다. 연길시북산소학교 5학년 4반에 다니던 조굉예는 1년전에 학교 신체검사에서 백혈병이라는 비보를 받았다. 담임선생님 리민의 말에 의하면...
  • 2015-11-10
  •   청도 성양구에 가면 《미스터닭갈비》라는 간판이 유표하게 안겨오는 닭갈비한식체인점이 있다. 말그대로 닭갈비에 여러가지 채소와 쌀을 버무려서 만든 미스터닭갈비는 개업한지 두달동안 매일 성업중이다. 손님들이 식사시간에 조금만 늦게 음식점에 도착해도 빈자리 하나 없어 좌석표를 받고 한참은 대기해야 제차...
  • 2015-11-06
  •  연변나무잎사랑협회의 회원들이 맛깔나는 김치를 담그고있다.      “스읍~”군침도는 빠알간 김치양념이 새하얀 배추살 사이사이로 둬어번 슥삭슥삭 지나가자 먹음직스러운 배추김치 한포기가 뚝딱 완성된다. “김치색상이 곱기도 하고나...”, “색상만 고울가? 맛도 일품...
  • 2015-11-05
  •       “다른 집은 따 훈훈한데 우리 집만 왜 온기가 없지?” 열공급을 시작한지 보름 되지만 실내는 여전히 온기가 없어 연길시 북산가두 단화사회구역의 강선생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것은 강선생 집을 제외하고 다른 집들은 모두 난방이 잘 돼서 집안이 후끈후끈하다는 사실...
  • 2015-11-04
  •      [서울=동북아신문]중국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88기, 89기, 90기 '상해 동창 모임(회장 이은화)'이 지난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상해에서 있었다. 대부분,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사업을 하고 있는 20여 명의 상기 동창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사업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의미 있는 나날들을 보...
  • 2015-10-30
  •    입장을 기다리는 신랑신부들.      중국 로인절인 지난 21일, 훈춘시 신안가두 룡원사회구역의 7쌍의 로인들은 특별하고도 랑만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이 일곱커플, 14명 로인들은 평소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이웃과도 화목화게 지내면서 소박하면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왔다. 이들중 년세...
  • 2015-10-26
  •  (흑룡강신문=하얼빈)리흔 기자="이 집 물건은 백프로 진품이니 시름놓고 살수 있어요."   이는 흑룡강성 해림시 삼묘한국슈퍼마켓의 한 단골 손님이 기자를 물건 사려온 손님인줄 알고 하는 말이다.   이 슈퍼마켓 길정림(42세)사장은 손님들의 신뢰와 찬사의 말을 늘 고맙게 생각할 따름이다.   해림 시내에서 ...
  • 2015-10-21
  • 상해시 룽바이(龙柏), 야근을 마친 최학준(46살)씨는 대학동문회 친구와 함께 캔맥주 한병을 들고 집앞 간이걸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에 터놓고 말할수 없는 회사내의 치렬한 경쟁속에서 부대끼며 받은 스트레스, 자식들의 학교이야기, 성큼 다가온 앞으로의 로후대비에 대한 불안감&hell...
  • 2015-10-21
  •   “연변, 나는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고향 연변에 대한 찬가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상해지식청년 석토영(石兔瑛, 62세)씨의 절절한 이 한마디에 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녀의 여전히 힘있는 눈매에 실린 진솔한 감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연변을 떠난지 수십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선말을...
  • 2015-10-14
  • -리옥렬할머니 의지가지없는 두 손자를 어른으로 키워 조선전쟁에서 공을 세운 리옥렬할머니 장백조선족자치현에는 수십년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의지가지없는 두 손자를 어른으로 키워낸 리옥렬할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말못하던 친손자를 키워 로무송출까지 리옥렬할머니는 일찍 김씨가문...
  • 2015-10-13
  • "한국서 내가 할 일 있어 뿌듯" [다문화세상]중국 결혼이주여성 김진숙 씨 저는 중국에서 시집온 결혼 11년 차 두 아이의 엄마 김진숙(37·창원시)입니다. 저는 조선족입니다. 김해 김씨가 저의 본관입니다. 저는 2004년 한국 땅을 처음 밟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이 무척 낯설었습니다. 한국에 ...
  • 2015-10-02
  • [다문화가 경쟁력이다] 박금령씨와 김태희양 모녀가 19일 인천 경인교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서로 꼭 끌어안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경인교대에서 열린 가을 운동회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단체전 게임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인천=이도경 기자    한국생활 11년째인 박금령씨와 10살 딸 김태희양 &...
  • 2015-09-24
  •   “오철호삼촌이요? 하하 우리 상해 조선족 대학생들사이에서 삼촌을 모르면 간첩이죠.” 상해해양대학을 다니고있는 지인이 하는 말이다. 평소 말이 적고 과묵한 성격인 그녀의 뜻밖의 “호들갑”에 저으기 놀라기까지 했다. 이윽고 그 놀라움은 조선족 대학생들 사이에서 친근한 “삼촌&r...
  • 2015-09-23
  •   화룡시 남평진 로과촌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과 마주하고있는 국경마을이다. 땅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촌민들도 적지 않지만 이들과는 달리 고향마을에 대한 정을 잊지 못해 국경마을로 돌아온 김영자씨, 그녀는 전문농장을 내오고 부지런히 일해 치부의 코기러기로 되였다. 그녀가 귀향을 결심하고 창업에 뛰여든...
  • 2015-09-23
  •   아름다운 변강도시 도문시 외각에 위치한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소나무가 일년사시절 푸르른 모습으로 굳건히 도문시를 지켜온것처럼 허종수(52세)씨는 8년 동안 소나무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나무군”처럼 소나무를 지켜오고있다. 평범한 농민이였던 허종수...
  • 2015-09-18
  • (흑룡강신문=하얼빈)이수봉 기자 = '동전의 희망운동본부'(본부장 김기식)는 2010년 8월 10일 선양에서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재중한국인들이 설립한 자선단체이다.   동전의 희망운동은 중국에 이주하여 사는 한국인들의 사랑운동이다. 아침이슬처럼 소리없이 내려 사막 같은 세상에 돋아난...
  • 2015-09-16
‹처음  이전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