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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문화상 응모글 7] 아버지와 술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24일 10시01분    조회: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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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술
문 호 

 
늘 한결같은  친구가 나에게 고급술 한병을 선물하였다. 왠지 술병을 마주하니 눈앞이 흐릿해진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도 그렇지만 문뜩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밥같은것이였다. 아마도 밥과 술중에서 선택하라면 아버지는 가타부타 술을 선택할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고급술 한병 못드시고 먼길을 떠나셨다.

세월이 참 화살처럼 빠르다. 아버지가 우리곁을 떠난지도 벌써 26년 세월이 흘렀다.

중년이 되면 추억이 짙다고 요즘 따라 새삼스레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술에 애착이 간다. 아버지는 술을 약처럼 배웠고 정으로 마셨고 남자답게 마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훈춘 어느 시골이다. 어글어글 쌍겹진 눈매에 슬쩍 곡선을 그으며 넘어간 반양머리, 거기에 약간 구레나룻인 아버지는 피끗 곁눈질해도 터프한 면이 보이는 그런 미남이였다. 당시 아버지는 여유치 못한 상황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포기했지만 자신의 끈질긴 노력으로 초중공부를 마치고 선후로 농회주석, 인민경찰… 등을 거쳐 나중에는 연변주 어느 한 대형기업에서 인사간부로 사업하셨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결혼하고 뒤늦게 술을 배웠다고 한다. 당시 경찰사업에 종사하던 아버지는 늘 한겨울에도 제때에 주무시지 못하고 사건처리에 드바삐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기아와 추위, 긴장을 덜기 위해 술을 배운것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술에 아버지는 짜장 술군이 되였다.

 아버지는 허드레 술꾼이 아니다. 술꾼답게 술문화도 얼마간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술의 력사가 몇천년이 되고 술의 종류도 대략 백주, 황주 과실주 등등으로 나누고 백주는 주로 쌀을 재료로 하여 만든것이기에 숙취가 적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해당자료를 찾아봤더니 백주는 수수, 밀 옥수수 등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술로서 도수는 높지만 단백질함유량이 적어서 비교적 숙취가 적다고 씌여져있었다. 모태주, 오량액, 공부가주, 아과두주(二锅头) 등이 바로 그런 술에 속하고있었다. 그중 이과두주를 내놓고 기타 술은 다 고급술이여서 아마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술을 마신것 같지 않다. 솔직히 아버지는 당시 상황으로 해서 주로 근들이 술을 마셨고 이과두주 같은것도 썩 후에야 마실수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문인은 못되였지만 주꾼들인 량산박 호한들과 소동파와 리태백을 알고있었고 술에도 례법이 있다는 도리를 알고있었다. 문뜩 아버지의 “주급”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뚜져봤더니 아버지는 6단쯤에 는 가까운것 같다.  6단은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이였다. 알고보면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였다. 아버지는 술과 인정을 모두 금싸락처럼 아꼈다.

사업에 참가한후 아버지는 농촌을 벗어나 연길시에 정착했다. 당시 아버지가 받는 로임은 56원 남짓했지만 식솔 여덟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였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늘 손님들이 밀물처럼 쓸어들었다. 아버지의 고향이 시골이다보니 손님들은 주로 훈춘시골의 농민들로서 그들은 연길에 오면 적어도 우리집에서 며칠씩 묵어가군 했다.

그들이 오면 항상 춤추는것이 술병이였다. 한번도 아니고 번번히 술대접을 한다는것이 우리집 수준에 비하면 힘에 부친 일이였다. 솔직히 생활난으로 하여 우리들은 당시 오전씩 하는 연필사탕마저 별로 사먹지 못하고있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또 손님이 오게 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앓는 안해를 데리고 연변병원으로 왔다는 손님은 빈손으로 오고도 끄떡없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순간 콩알같은 가슴에 심술이 꼴똑 넘쳤다.

나는 상점에서 술 한근을 산후 살짝 혀끝에 대보았다. 쓰겁고 매캐한것이 독약같았다. 갑자기 약은 꾀가 떠올라 나는 두냥 술을 물리고 거스름돈을 챙겨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도중에서 물로서 술병을 채우고 아버지께 드렸다. 콩콩 가슴이 방망이질쳤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날 일이 터지지 않았다. 손님이 돌아간 이튿날 나는 사탕을 사려고 상점으로 자박자박 걸어갔다. 맙소사! 그 길에 아버지가 떡 버티고있었다. 순간 도적이 발이 저리다고 온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허나 뢰성은 없었다. 아버지는 침묵끝에 조용히 나를 타일렀다. 사람은 인정을 알아야 한다. 그 분은 아버지가 시골에 있을때 늘 삶은 옥수수며 채소 같은것을 갖다주던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빈손으로 온 그 마음이 오죽했겠냐며 벌써부터 거짓을 부리고 돈에 집착하면 좋은 사람이 못된다고 하였다. 차분한 말씀이였으나 귀쌈처럼 얼굴을 쳤다. 내 두볼은 대뜸 고추처럼 익어갔다…

아버지는 바로 이런 분이다. 아버지는 술은 정이라고 했다. 물처럼 아니라 가슴으로 마셔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가끔은 싫어도 마셔야 하지만 마시다보면 그만큼 정이 흐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혼자보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술마시기를 즐겼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옆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이웃들과 동사자들과 지어는 큰 매형과도 썩잘 어울려 술을 드셨다. 아버지는 술을 마실때면 늘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그래서 엄마한테서 제노릇을 못한다는 소릴 밥먹듯 들었다.

해마다 큰 명절때면 아버지는 꼭 엄마더러 한상을 차리게 하고는 동네분들을 청해서 함께 술을 드셨다. 비록 그들 대부분이 일반 로동자들이였으나 아버지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구속감도 없었다. 술상에서 누군가 바가지장단을 치며 흥이라도 돋굴라치면 평시 목석같은 아버지도 일어서서 너울너울 팔을 내젓군 했다. 물론 예술세포가 전혀 없는 아버지의 춤은 곱사등이 말을 타듯 우습기가 그지 없었지만 우리에겐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 안겨오기만 했다. 평소 아버지는 벙어리마냥 늘 침묵이다.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시면 철문같은 입을 열고 우리들을 정겹게 바라보다가 가끔씩 칭찬도 해주군 했다. 그래서 어릴때 나는 술소리만 나와도 공연히 아버지먼저 기분에 들떠있군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주풍은 70년대초순을 넘어서면서 점차 변해갔다. 아버지는 동란의 년대에 인사권을 빼앗기고 당치도 않게 공인선전대원으로, 산골도로건설장의 일반 관리원으로 쫓겨내려갔다.  이리저리 밀려났으며 돌아온후에도 한동안은 일반 로동자로도 있었다. 주로 문서와 씨름하던 아버지라 당시 아버지는 망치 하나 제대로 쓸줄 몰랐다. 하지만  로동자들은 아버지를 배척하지 않고 하나 하나 일을 배워주면서 배려해주었다. 그 인정에 아버지는 또 호주머니를 털었고 그들과 한몸이 되였다. 일선 로동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호방하고 그만큼 술도 많이 마신다.  솔직히 세파속에 찌들리고 나이도 있는 아버지는 그들을 따르기가 힘에 부쳤다. 점차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취한 모습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면 우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화살처럼 날아가 아버지 몸에 꼽히군 했다. 나는 더는 얌전히 술심부름을 하지 않았고 그 미열로 사업에 참가한후에도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 좋은 술을 산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버지께 죄송한 맘뿐이다. 사실 그때 아버지가 술힘을 빌지 않았다면 어찌 그 괴로움을 이겨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해빛을 기다리면서 가장으로서 우리들을 지켜줄수가 있었으랴!

아버지 인생은 길지 못했다. 환갑이 넘자 아버지는 뇌혈전으로 두번이나 병원에 입원하였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했던 분이 더는 술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술꾼이여도 별로 좋은 술은 못드셨던 아버지,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어느날 큰 매형이 오량액을 갇고 와서 약간이라도 맛을 보이고저 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 아버지는 술병만 물끄럼이 보다가 67세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술은 아버지 절반 인생이다. 아버지는 희로애락을 말보다는 술로서 느꼈다. “술은 세상을 둥글게 만든다. 그러니 애야, 남자가 되려면 적당히 술맛을 알아야 하네라. 그래야 친구도 생기고 서로가 정도 나눌수 있는거다.” .

어릴때 가끔 들어오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사실 아버지는 순박한 술꾼이였다. 물론 아버지도 “꽈배기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종래로 술상에서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는 법이 없었고 “소동작” 같은것은 더구나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반생을 눅거리 술을 마셨어도 기가 죽지 않고 량심적으로 마셨고 남자답게 마셨고 인간답게 마셨다. 어쩜 아버지야말로 진짜 호방한 술꾼이 아닐가? 하지만 요즘 세월엔 가끔 술이 그 어떤 목적을 바탕으로 한 교역물로 번지고있어 기분이 씁쓰레할 때가 적지 않다. 술은 술로서 익을 때 보다 달콤하고 향긋한 법인데 그 술에 “사탕포탄”을 넣고 자기의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령전에 술을 부으면서 경건히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술, 참으로 아버지와 같고 사나이와도 같은 이름이다. 술은 또한 각박한 세상에 내려보낸 하늘의 달콤한 선물이다.

누군가 한잔술에 대화가 열리고 두잔술에 정이 흐르고 석잔술에 꽃향이 넘친다고 했다. 삶의 윤활제이고 랑만의 대명사인 술, 이제는 나도 그와 친구로 되여 삶의 풍류를 만끽하고싶다. 하여 눈송이 흩날리는 이겨울에 한잔 술에 그리움을 타고 아버지와 그리고 이세상 사람들과 오손도손 커피향같은 대화를 나눠가면서 만물이 움트는 새봄을 맞고싶다!
  <청년생활> 잡지 2015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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