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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문화상 응모글 8] 숨 차게 달려온 나날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25일 10시15분    조회: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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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차게 달려온 나날
 
박영옥


장백산아래 안도현에는18년동안 이름을 떨쳐온 한 민간단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안도현백두산아동문학협회”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1997년 1월의 어느날, 리룡득선생이 날보고 지금 연변에 아동문학협회가 공백인데 안도에 이 협회를 설립할 계획이니 김동철씨가 회장, 내가 부회장을 맡아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다리가 장애인 내가 해낼수 있을가? 하고 고민하다가 믿어주시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쾌히  동의하였다.

그해 2월 1일, 그날은 대한절기에 어울리지 않게  날씨가 봄처럼 따스했다    

오전 10시에 리룡득, 김동철, 류영녀, 장은숙, 나 이렇게 다섯 사람이 장은숙집에 모였다. 붓글씨를 잘쓰는 김동철씨가 하얀 종이에다 빨간색으로 “안도현 토월산 아동문학협회 설립모임”이라고 쓴 글을 객실벽에다 붙혔다. 그런후  여자 셋은 한복을 입고 남자 둘은 양복에다 넥타이까지 매고 그 앞에서 “찰칵 ㅡ”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안도현 토월산 아동문학협회가 너무나 비좁고 조용한 단칸 방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그때로부터 우리의 힘든 걸음이 시작되엿다. 회원들의 열정을 식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일주일마다 모여앉아서 작품을 평의하였고 또 자주 만나는것으로 서로간의 정을 돈독히 하였다.

협회가 활동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회원들은 신문팔기에 나섰다. 그때 “연변건강생활보”에서 편집을 맡으신 리룡득선생님이 주일마다  연길에 가서 이 신문을 삼백부씩 가져오면 우리회원들은 한사람이 60부씩 나누어가지고는 힘자라는대로 팔았다. 한부를 팔면 30전씩 벌수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신문들을 가지고 기차역, 시장거리에 다니면서 판다는게 참 체면잃을 일이기도 했다.

“아니 글 쓴다는 사람이 왜서 신문장사를 해요?”

이렇게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신문을 안사겠다고 멀리서 우리들을 보기만하면 피하느라고 길을 에돌기도 했다. 또 어떤 회원은 신문을 채 팔지못하면  자기가 몽땅 사기도 했다. 이렇게 협회의 활동경비를 얼마라도 해결할수 있었다. 몹시 힘들었는지 누구 한사람도 원망없이 꾸준히 해나갔다.

많은 사람들은 여름이면 그늘진 곳에서, 겨울이면 따스한 온돌에서 한가히 보냈지만 우리는 글을 써가지고 여름이면 산으로 찾아다니고 겨울이면 옷을 꽁꽁 입고는 이집 저집을 찾아다니며 활동하였다.

그렇게 반년동안 모지름쓰며 견지하다다 김동철씨가 가정문제로해서 사직하는바람에 협회가 활동을 잠시 중단하였다.

1997년 9월의 어느날 리룡득선생님이 날 찾아오셨다.

“이 협회를 해체시킬가요? 너무 힘들어서요”

“아니, 그냥 견지해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 튀여나갔다.

나는 왜서인지 협회가 해체되는게 가슴 아팠다. 어떻게 세운 협회인데,  또 이만큼 만이라도 걸어오기 위해 얼마나 모지름 써왔던가?

“장부에 지금 돈이 얼마 있는가요?”

리룡득 선생님이 계속 물으셨다.

“60원이 있습니다.”

그때 협회의 장부가 내손에 있었던것이다.

“그럼 래일 글쓰기 열성자들을 조직하여 들놀이하던지. 그리고 영옥씨가 잠시 회장을 맡아서 하세요”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 계속 운영하는게 고달프지만 잠시라니깐 동의했다.


그러나 그 잠시가 꼬박 10년일줄을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튿날, 나는 글쓰기 열성자 여섯분을 불러서 저수지로 떠났다 가을의 하늘은 푸르다못해 유리알처럼 알른거렸다. 우리 일곱 글쓰기 열성자들은 그날 가을하늘을 향해 또다시 새로운 꿈, 더 큰 꿈을 펼쳤다.

물론 장부에 있는 돈 60원을 그날 들놀이에 몽땅 쓰고도 모자라서 내돈을 조금 더 보탰다.

그날 저녁 나는 자리에 누웠지만 인차 잠들지 못했다.

(난 인제부터 아동문학협회의 코기러기다.  어깨가 무겁더라도 중도에서 절대 주저앉지 말아야지!)

나의 속다짐이였다.

그 들놀이를 계기로 해서   몇달간 수면상태에 처했던 문학회가 새봄을 맞이한 풀처럼 파아랗게 돋아났다. .

자주 활동하고 또 새로운 회원들을 발굴하니 원래는 다섯명 회원뿐이던것이 후에는 스무명도 넘었다. 나는 할수록 힘이 생겼고 희망은 수림처럼 자꾸 커갔다.

회원들에게 신심을 주기 위해 매년마다 회원들의 특집을 조직하였는데 그때는 컴퓨터 시대가 아니여서 우편으로 보내지 않으면 나는 늘 자기돈을 팔며 두툼한 원고들을 가지고 직접 잡지사로 찾아가기도 했다. 불편한 다리로 잡지사의 아래우층을 오르내린다는것이 좀 힘겨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릇 내가 가지고 간 회원들의 글들은 대부분 신문잡지에 실렸다.

2003년부터 우리는 내부간물을 꾸리기로 했다. 그러자면 돈이 좀 많이 있어야 했다. 그때 리사장직을 맡으셨던 함창도선생이 나와 함께 돈 구하러 나섰다. 돈이 좀 있을거다하고 생각하는 단위는 다 돌아다녔다. 상사앞에서 좋은 말을 다하면서  “돈구걸”했더니   200원, 300원, 500원…돈이 불어났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나는 돈을 얻기가 좀 쉬운 우월한 점이 있기도 했다.  절뚝대는 다리로서 숨을 헐떡이며 3,4층까지 올라오는 모습에  많은 상사들이 감동 받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스트레스도 받았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협회요?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언제 당신들에게 줄 돈이 있겠소?”

돈 안주려면 좋게 거절하면 될건데 왜 하필 이렇게 짜증까지 낸담?

퇴자를 맡고 구름이 꽉 찬 얼굴로 돌아서서 나올때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정말  울고만 싶었다.

(내가 왜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협회를 위해 이렇게 뛰여다니고 이렇게 모욕도 당하고…아니아니, 모든 일이란 순풍에 돛 단듯 순조로운게 아니잖아? 그리고 난  또순이야!)

이전에 어느 작가분이 나에게  “또순”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던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그 작가분이 “이악스럽고 끈질긴 녀자를 통털어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 난 이악스럽고 끈질긴 녀자다. 그런데  내가 어느새 이악스런 녀자로 변했단말인가? 난 나의 변화를 두고 정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원래 나는 양띠태생이여서인지 양처럼 온순하기로 소문이 있었다. 그 누가 욕해도 대꾸 한마디도 바로 못하는데…그러던 내가 글세 협회를 위해 돈있는 사람들을 잘 구슬려서 돈을 잘 얻어들이는 재간둥이로 되다니? 그리고 원칙앞에서는 사정을 두지 않는 녀자로 되다니?   협회를 이끌면서 나는 바로 이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변해야 했다.

그러다가 많은 지성인들의 칭찬을 들을때면 나의 작은 가슴은 바다처럼 마구 설레였고 꿈은 어느새 저 멀리로 날아가서 영글고있었다.

“네. 참 좋은 사업을 하십니다.”

“우리민족의 문화사업을 위해서 고생하십니다”

협회에 경비가 부족할때 많은 회원들이 자기주머니 돈을 터는 일도 있었다. 특히 잊을수 없는것은 홍복녀씨 그리고 정성호씨다. 이 두 회원이 한국에 가서 힘들게 번 돈을 협회에 내놓았을때 나는 코마루가 쩡해났다. 특히 홍복녀씨는 한국에 가서 갖은 어려움 당하면서 일하다보니 잔뜩이나 작은 체구인데다 더구나 여위였고 얼굴은 초췌해 말이 아니였다. 그러면서도 뭉치돈을 내놓았을때의  그 모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2003년부터 우리는 “토월산아동문학회”를 “백두산아동문학회”라고 개칭하였다. 인제부터 백두산의 호랑이처럼 뛰여보자는 회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은 이름이였다. 그러니 신끈을 더 단단히 조여야 했고  호랑이처럼 더 멀리 뛰여야했다.

나는 신체가 허약해서 늘 전신이 무너질듯하면서도 정신만은 잃지 않았다. 한달에 적어서 한번, 많으면 두세번씩 활동했는데 이렇게 해해년년 견지하고 또 견지했다.
그리고 그해부터 “백두의 메아리”라고 명칭한 내부간행물을 꾸리기도 했다 . 나는 생글대는 햇님과 만날 여유도 없이 하늘빛을 머금고 내주변을 맴돌아치는 곤충도 볼사이 없이 간행물에 실을 글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였다. 한기 또 한기의 간행물이 출판될때마다  우리회원들은 마치 장한 일을 한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그럴만도 했다.  조선족이 22%밖에 안되는 안도란 이 지역에 이같은 한글로 된 책이 나왔으니말이다.

문학은 아름답고 숭고하다지만 그 길은 울퉁불퉁 험난한 길이엿다. 새로 가입한 회원들에게 신심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나는  그들의 글을 다듬어서 신문사에 추천하고는 시름이 놓이지 않아서 신문사에 전화를 두세번 걸다가 편집선생의 “참 시끄럽게 구는군요. 차라리 당신이 와서 편집할거지”하고 짜증내면 남몰래 눈물을 훔치군 했다.
때론 너무도 힘들어서 몇번이나 회장직을 내놓겠다고 했더니  회원들이 누구나 반대해나섰다.

 “만약 박회장이 아니라면 우리협회가 벌써 해산되였겠소. 그러니 조금만 더 수고해주세요”

 “글쎄 오늘까지 이 협회를 이끄느라 고생도 많았지요. 더구나 성한 몸도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박회장을  장애인으로 생각한적 없었어요”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만점이란 점수를 주는 회원들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장애인 나를 언제나 성한 사람처럼 인정해주어서 고마웠고 믿어주고 밀어주고 격려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서 다시금 다져보기도 했다 ㅡ더 힘내자. 더 높이 날자!

2007년 3월말에 안도현백두아동문학회는 설립 10주년을 맞는 모임을 가졌다. 그날의 하늘은 여느때보다도 더 파아랗고 해님도 여느때보다 더 따스했다.

연변의 각 현시에서 오신 수십명의 귀빈들을 모시고 발언대에 올라서 10년동안의 회노애락에 대해서 발언하는 나는 왜서인지 눈시울이 자꾸만 젖어들었다. 사진사의 섬광등과 박수갈채속에서 나는 울렁이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면서 10년동안 걸어온 발자국을 총화하였다 꼭 10년이다. 정말 기나긴 10년이였고 때론 눈물, 때론 웃음, 또 때론 한숨, 또 때론 즐거움으로 보내던 나날들이였다…

2008년부터 나는 회장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늘 회원들의 글을 여기저기 추천해주었고 글쓰기애호가의 발굴에도 신경을 써서 많은 회원들을 불러들였다.

10년동안 열심히 뛰여왔다고 안도현정부에서는 나에게 “안도명인”이란 영예를 주었고 2012년 1월 16일에는 “안도현 10대 도덕모범”이란 칭호를 주었다. 그외에 나는 또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수차 수상하는 영예를 안아왔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며 우리의 문화사업을 위해 더 열심히 뛰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인생이란 이 도화지에 열심히 래일의 인생 설계도를  그려본다.

<청년생활> 잡지 2015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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