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에서 맺어진 고마운 인연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역 지진은 그 후에 일어난 쓰나미, 그리고 빈번한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을 구축해왔던 기반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선 교통기관이 중단되였고 일부 지방의 통신이 차단되였으며 정전으로 모든 시설이 혼란상태에 빠졌다. 오후에 발생된 지진이라 수도권내에서만도 515만명에 달하는 귀택 곤난자(帰宅困難者)가 생겼다.
나도 그들 중의 한사람이였다. 시부야(渋谷)역의 전차가 움직이지 않고 뻐스도 제한된 상황에서 택시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몇백명 정도였고 가끔씩 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택시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눈앞의 현실에 아예 걸어가려고 작정하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그리고 자전거를 사러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날 저녁 택시를 잡지 못하고 10여시간 내처 걸어서 귀가한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자전거가 죄다 팔리는 품귀현상이 일어났으며 아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인수가 외출자의 28%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누구도 체험해보지 못한 일이 발생했는데 랭정하고 차분한 일본인들은 조용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진 때문에 널려있는 슈퍼의 상품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주었다는 손님들이며 물류가 끊긴 상황에서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한사람이 하나만 사는 걸로 뒤사람을 배려했다는 시민들이며 택시를 기다리는 몇시간 동안 아무 혼란도 없이 서로 고무하면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등등…
일본 대지진 당시 불편한 교통상황에서도 질서정연한 일본인들(자료사진)
그 날 세시간 남짓이 택시를 기다리다 보니 밤이 깊어왔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았더니 회사원인 듯한 분이 빵을 건네주었다. 빵 하나를 세등분 나누어 나, 그리고 자기, 뒤에 줄 선 분한테 나누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한쪼각의 빵 덕분에 그 날 저녁을 무사히 버텼는지도 모른다.
근 네시간을 기다려서야 같은 방향으로 가는 네 사람이 택시에 앉았다. 타기는 했지만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른 정도의 속도로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는 차로 꽉 막혔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앞이 안 보인다”는 말 그대로였다.
새벽녘이 되여서야 우리 네 사람이 협의해서 정한 지점에 택시가 도착하였다. 료금은 평소의 3배 이상으로 올라갔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네 사람중 한 사람이 소지한 돈이 모자라다고 했다. 갑자기 생긴 일이라 그럴 법도 했다.
“한두푼도 아닌데, 전혀 모르는 사이이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선뜻 만엔을 선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계좌를 알려주면서 갚을 수 있을 때 갚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자기 갈길을 갔다. 너무 멋있는 뒤모습이였다.
평소에는 차겁다 할 정도로 느껴지는 일본인들,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남의 프라이버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일본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3.11 대지진”을 겪으면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들을 보았고 고요함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 같은 정을 느끼게 되였다.
지진으로부터 3년 쯤 지난후 “고마운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쓴 수필을 신문에서 보았다. 택시에서 돈을 꾼 사실을 깜빡 잊고 있다가 두달 후에야 돈을 되돌려주게 되였고 그 후부터 해마다 한번씩 같이 온천려행을 다니는 “3.11친구”로 되였다는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내용이였다. 혹시 그 날 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가? 아니, 어디에서나 있었을 수많은 사연중의 하나일 것이다.
6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다. 필경 내가 만났던 그 두 사람도 아름다운 인연으로 고마움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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