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개혁개방으로 동창 인연 이곳에서도 이어가요”...[개혁개방 1번지 광둥을 가다 18]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30일 10시56분    조회:14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상조중 출신들 광저우서 살아가는 이야기

  “자네 혹시 오상에 있던 길환이 아녀?”, “누구시더라. 많이 본거 같은데.…아참. 순종이구나. 순종이지?”, “그래. 맞어 나 순종이야. 순종.”, “어이구! 이게 얼마 만이야,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기억이 다 아물거리네.”, “그래 너무 반갑구나 반갑다!”…….

  오상조선족중학교 출신인 김순종 사장이 5년전 광저우 코리아타운인 위앤징루(遠景路) 한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우연히 식당 주인인 동창생 최길환 사장을 만나며 나눴던 대화다. 인연이란 바로 이렇게 미묘한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한국나들이, 연해도시 진출로 자신도 모르는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새로운 삶을 살다가 어느날 고향에 있던 동창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그 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국 연해도시들에서도 고향을 떠나 새 삶터에 정착한 우리 이주민들이 고향에 대한 애수와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는 장면들은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사진= 최길환씨(좌)와 김순종씨가 가게 앞에서 만나 고향에서 지내던 옛이야기로 즐거운 여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수봉 김호 기자

   

  북방의 기관사가 남방의 요식업자로

  현재 광저우에서 초가집숯불구이 한식당을 운영하는 최길환(54) 씨는 1986년 헤이룽장성 수화기관사양성학교를 졸업하고 가목사지역에 화물차 기관사로 발령받았다. 당시 가목사 지역에서 유일한 조선족기관사였던 그는 몇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기계처럼 짜여진 틀에 맞춰 살아야 되는 따분함이 점점 싫어졌다고 한다. 이직 수속을 밟고 칭다오 등지를 전전하며 무역업을 하다가 다시 가목사중의학원에 와 안마시술을 배우고 2004년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의 모 스포츠마사지센터에서 중의안마원으로 취직하며 3년간 열심히 일해 2007년 5000만 한화를 투자해 한국에서 자체로 안마시술소를 꾸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동업자가 돈을 갖고 도주하는 바람에 전부 날렸다. 쓸쓸한 마음으로 귀국했다가2009년 재차 한국에 가서 안마시술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이 직업도 오랫동안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한식을 배웠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영어 전문 용어를 많이 쓰는 요식업 공부를 이를 악물고 고심한 끝에 2011년 요리사 자격증을 따냈다.

  2012년, 중국 광저우에 출장차로 왔다가 위앤징루에 코리아타운이 일떠서며 우리 민족들이 모여 사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끌렸다는 최길환씨는 2013년 위앤징루에 200제곱미터 되는 영업집을 임대하여 ‘초가집한식숯불구이’를 오픈했다. 1위안이라도 아끼려고 밀차를 끌고 새벽부터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러 아침시장을 다니고 여름철 40도 폭염도 무릅쓰고 발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다닌 피타는 노력으로 창업 7개월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앤징루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나며 LG전자(광저우)회사 중고급 간부들의 회식장소로 지정되면서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호황기도 유성처럼 반짝, 글로벌금융위기 여파와 한국내 경제부진으로 위앤징루에 진출한 한민족 업체들이 하나둘씩 도산돼 가고 있었지만 현지 인건비, 물가, 부동산 임대비는 역으로 급상승하는 이중삼중고를 맞아 2017년 4월, LG공장이 있는 부근인 황푸취 완다광장 샹쉐상업거리(香雪商業街)에 역시 ‘초가집한식숯불구이’ 상호로 새로 오픈했다.

  과거 경영하던 위앤징루와 25킬로미터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단골로 꾸준히 찾아줬던 LG 임직원들이 ‘이젠 지척에서 우리 음식을 편하게 즐기게 됐다’며 더 잘 찾아주는 덕에 초창기 어려움을 무난히 뚫고 안정세를 갖춰가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샹쉐상업거리에는 한국인, 조선족이 경영하는 업체들이 10여 집 모여 있어 새 코리아타운 추형을 이뤄가고 있다.

  

  두번 다시 안하겠다던 업종에 또 걸려

  김순종(53세) 씨는 오상 산하국영모래장에서 근무하다가 1992년 중한수교를 계기로 일찌감치 한국에 진출, 94년 귀국해 한국에서 번 돈과 그간 중화요리집 배달을 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톈진 기차역부근에 식당을 차렸지만 경험미달과 현지 소비시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부도났다. 이때 김순종 씨는 “이제 빌어먹더라도 다시는 요식업에 손대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한다.

  누나의 소개로 2001년 광둥성 장먼(江門)시 수도꼭지회사에 취직해 2007년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2008년부터 그간 모은 돈과 처갓집에서 빌린 돈으로 광저우에서 의류 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무역업은 컴퓨터, 전화기 한대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었고 수출 루트만 잘 확보하면 누구나 가능한 업종이었다. 그만큼 기회가 많았다. 파트너를 잘 찾고 성실신용을 겸비한 덕에 한국, 미국, 베트남 등지에 원단을 가공수출해 호황기때 1년에 100-200만 위안씩 순 이익을 올렸다.

  2016년부터 한국경제 불황과 더불어 의류 수출길이 더 좁아지자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공장 규모를 줄이고 최소 경영을 해오다가 동생 추천으로 한국인이 회장인 패스트푸드인 프랜차이즈 야참치킨에 가맹했다. 톈진 식당 부도시 한 ‘맹세’를 어떻게 깻냐는 기자의 농담에 김순종 씨는 “돈은 이미 벌만큼 벌었는데 놀면 안되잖아요. 사실 수년전에 우연히 만난 동창 최길환 씨가 극구 자기 영업집 옆에 가맹점을 내고 다같이 오손도손 살아가자는 말에 확 끌렸지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친구 정이나 돈독히 하며 심심풀이로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잘된다’는 말이 있듯이 수지 평형 정도로만 생각했던 치킨집이 뜻밖에 현지인들의 호평을 받아 일 매출 3000원씩 올리고 있다. 광저우시 시내에만 7집이 있는 야참치킨은 전부 한국식 관리기법과 조리법을 철저히 지켜 현지인들을 입맛을 잡고 있다. 최근 김순종 씨는 ‘심심풀이’로 또 드라이클리닝 업소를 새로 오픈시켜 열정을 불태워 가고 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인연이 있으면 서로에게 교묘한 타이밍에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등장해 주는 법. 고향을 등지고 외국으로, 중국 각지로 산산히 흩어져 사는 많은 이들은 전에는 고향 지인들이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르기에 소통이 불가능했다. 요즘에는 위챗이 발달돼 서로 서로를 끌어들이며 혹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안부 전화나 메시지는 가능하다.

  위챗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에 우연히 만나 아래웃집 업소를 경영하는 이웃, 동창, 친구로 살아가는 최길환, 김순종 사장은 이구동성으로 “좋은 인연이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참된 인연입니다. 고향을 떠나 멀리 남방에 나와 새 삶터에서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고 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래웃집 이웃사이, 그 것도 친구사이이니 당연히 먼 친척보다 훨씬 좋습니다. 함께 장난치고 공부하던 학창시절, 낯설고 물선 땅에서 살아가던 어려움, 건강과 희망을 잃지 말자는 서로의 격려…해도해도 다 말을 못하는거죠”라고 말한다.

  이제 고향에 갈 일이 거의 없기에 명절도 두 집이 모여 같이 쇠구 서로 집안의 일을 발벗고 나서 도와주며 광저우 부근 도시에 있는 여러명 동창들도 만나 모임도 자주 갖는다는 이들, ‘기쁨은 나누면 배로 커지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처럼 제2의 고향에서 못다한 동창의 정을 더 돈독히 해나가고 있다.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 이수봉 김호 진종호 김련옥 이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한때 내게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내놓고 별다른 취미가 따로 없었다. 같잖은 글이라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글로 표현해내고 나면 모종의 희열 같은 것을 느끼군 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요즘은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여버렸다. 졸업을 하고 출판사의 편집이 되고 나서, 또 지금은...
  • 2019-11-25
  • 건국 70돐 기념 특별기획: 〈일대일로의 조선족 개척자들〉(1) 글 사진/서정옥 올해 휴가는 어디로 떠날가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은 지중해 남쪽 해안 나라 튀니지로 가자고 한다. 튀니지가 도대체 지구촌 어딘데?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우리와 거의 지구 반대쪽에 있는 아프리카 최북단에 위치한 튀니지, 사하라사막이 있는...
  • 2019-11-16
  • [수기] 엄마가  준  두번째 생명 림율아 나는 우리나라 3년 자연재해시기였던 1961년 봄에 태여났다.   1959~1961년을  중국의 3년 자연재해시기 또는 3년 고난의 시기라고 한다. 이 3년 동안에 우리나라는 식량과 부식품이 극도로 결핍하여 인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엄중한 해를 끼쳤다.백성들은 먹을...
  • 2019-11-14
  • 연길 세집 2017년 8월 24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겁이 꽤 많았다. 특히 밤이 되면 변소에 가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다. 그래서 항상 엄마가 아니면 아버지가 ‘보초’를 서주어야 했다. 캄캄한 시골의 재래식변소에 앉아있으면 자꾸 누군가가 뒤에 서있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밑으로부터 뭔가가 올라올 것 같은 공포...
  • 2019-11-12
  • 계림문화상 대상 수상작품 "일본에서 살기" 리홍매(일본) 머리말 1983년, 당시의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이 ‘류학생 10만명 계획’을 세우고 세계를 향하여 일본 고등교육의 대문을 열었다. 80년대말에 이르러 활성화된 중국정부의 류학생정책으로 인하여 일본어가 널리 보급된 동북3성지역의...
  • 2019-11-12
  • 병원치료 포기 2017년 7월 21일 내 고향친구들한테는 엄마는 ‘어죽’으로 통한다. 고기잡이를 좋아하는 나, 어죽을 잘 끓이는 엄마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기를 좋아했다. 놀러오면 엄마는 거의 혼자서 준비를 다해서 우리가 서쪽 강변에 나가 마음껏 천렵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군 했다. 처음 몇번은...
  • 2019-11-11
  • “온 힘을 다해 이 아들을 한번 더 바라보던 그 눈빛”, “어느 구석을 봐도 엄마가 보이는데 어디에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생소해 미칠 것 같았다”,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엄마 위챗으로 문자를 보내본다, 잠을 자다가,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엄마만 떠올리면 억...
  • 2019-11-11
  • [멀고도 가까운 문화-유체 기증](2) “무엇으로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70년 당령(党龄)의 한춘옥 ‘마지막 공헌'으로 유체 기증을 선언   ‘한춘옥 ’이름자와 전국 통일 번호(2785)를 밝혀 발급된 건국 70돐 기념장 소장함. 기자한테 자신이 받은 건국 70돐 기념장을 ...
  • 2019-11-08
  • 편집자의 말 우리 나라에는 아직 유체 기증 사업 관련 법은 없다. 하지만 유체 기증이라는 아름다운 소행이 싹트고 있다. ‘유체 기증'은 기증인이 생전에 유체 기증 념원을 표명하고 사망 후 위탁인 혹은 집행인이 유체를 전부 혹은 부분적(장기 기증 경우)으로 의학 교수 및 연구사업에 기증하는 문명행위...
  • 2019-11-08
  • 영화 삼촌은 지난세기 50년대에 룡정 덕신중학교 학생회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어린나이에 자기보다 몇살 위인 선배들앞에서 연설을 하군했는데 똑똑하다고 정평이 났으며 이름난 웅변가였다고 한다.   사진뒤면에  ...
  • 2019-11-07
  • 지난 10월 31일, 간단한 기부식이 무순1중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료녕무공공구주식유한회사 리사장 장명상이10만원의 기부금을 빈곤대학생 손영택에게 전달했다. 장명상이 손영택에게 하는 두번째 기부다.   19세의 손영택과 그의 가정은 갖은 고난을 겪었다. 그의 누나는 13세 때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선천성 ...
  • 2019-11-07
  • 어린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박사가 되거나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현재 나는 박사재학중에 있고 간혹가다 비루한 솜씨로 쓴 글들을 투고하여 가뭄에 콩 나듯 지면에 내 이름을 올리면서 살고 있다. 우선 오해가 없도록 하자. 나의 현재 삶을 브리핑한 목적은 어렵사리 어릴적 꿈을 지키고 이루어낸 ‘성공신화의 주인공...
  • 2019-11-01
  • [청춘노트]  리은실(李银实) 필명 몽실(梦实). 1984년출생 2009년 연변대학에서 문학석사학위 취득. 현재 북경민족출판사 근무 최근에 글을 왜 쓰냐는 질문을 몇번 받았다. 글쎄다. 나는 글을 왜 쓸가? 언제나 먹기보단 잠자기를 우선시하는, 잠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라 생각하는 ‘잠보’가 잠을 포기하...
  • 2019-10-26
  • 지난 8월 29일, 나는 흑룡강성 계서시 계동현 계림조선족향에서 펼쳐진 약선(药膳)강습행사를 마치고 50년 만에 다시 그리운 북대황 기러기섬(雁窝岛)으로 향했다. 기러기섬은 바로 50년전인 1969년 3월에 가서 1973년 3월까지 내가 청춘열정을 쏟아부어 벼농사를 개척한 정든 고장이다.   1962년 6월 22일, 국무원...
  • 2019-10-22
  • 지난 10월 19일, 연길시도시건설투자그룹유한회사(대서양공관대상)에서 주최하고 공청단연변주위, 연변사회조직관리국, 연변9.3애심공익협회에서 주관한 “대서양공관대상 애심입쌀 3만근 전달”식이 연변체육관에서 펼쳐졌다.   10월 17일은 여섯번째로 되는“전국 빈곤층 부축의 날”이다.&nbs...
  • 2019-10-21
  • 백세 시대인 요즘엔 칠십나이는 삶의 지혜를 빛내는 황금 시절이고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두번째 봄이다. 공화국 창립과 동갑인 나의 칠십년 인생을 되돌아보노라면 어린시절과 그림같은 고향의 풍경이 내 머리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해에 두만강 상류인 화룡현 로과향 흥남촌에서 ...
  • 2019-10-18
  • #예로부터 결혼은 인륜지대사로 꼽혔다. 그러나 점점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인구 증가률이 상승하고 지어 독신주의를 선언하는 비혼족이 생겨나는 등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 세대들의 결혼관 또한 빠른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변화와 더불어 관점의 충돌로 인한 갈등 또한 항상 존재해 왔다. 다름 아닌 “...
  • 2019-10-12
  • "더 기다려주다가는 혼자 사는 게 더 편하다고 할가봐 걱정돼서 달려왔죠."  "급해하는 엄마 마음 리해가 돼서 함께 왔어요."...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다양해지다 보니 만혼 인구도 점차 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적령기 자녀와 부모의 ‘결혼에 관한 론쟁’도 항상 이슈로 떠오른다. “자식의 결...
  • 2019-10-08
  • - 글 / 국하 -       (흑룡강신문=도쿄) 알람 소리에 따르릉, 이불을 개는 소리 착착, 창문을 여는 소리 찰칵,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살살, 웃집에서 걸음을 걷는 소리 쿵쾅쿵쾅, 수도물이 내려오는 소리 쏴쏴... 내 마음이 오늘도 힘내라고 하는 소리 뿅뿅.   찌르륵 찌르륵 계란후라이 지지는 소리와 같이...
  • 2019-09-24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