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새벽, 깊은 산속에서 54년간 묵묵히 렬사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 로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따라 마을에서 그닥 멀지 않은 산속을 향해 걷는다. 길의 저 끝에는 혁명렬사기념비 하나가 조용히 서있었다. 기념비에 도착한 로인은 손으로 기념비 우에 앉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고는 기념비 앞에 두 발 모아 바로 선 뒤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혼자말인 듯 중얼거렸다. “또 보러 왔수다…”
86세 리은기 로인은 룡정시 삼합진 청천촌 촌민이다. 1964년, 청천촌에 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졌고 그때 당시 청천촌당지부 서기를 지냈던 리은기는 자발적으로 30여명 마을 당원들을 조직해 기념비 상태를 관리하고 렬사들의 감동사적을 선전했다. 그게 발단이 되여 장장 54년간 렬사기념비 지킴이를 자처해나선 리은기 로인은 해마다 청명절, 중원절 때마다 촌민들과 함께 생화, 과일, 음식, 술을 준비해 기념비를 찾아 렬사들을 기렸다. 명절 때 뿐만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그는 렬사기념비를 찾아 상태를 확인하고 기념비 옆에 무성한 잡초들을 뽑아냈다.
청천촌 렬사기념비에는 26명 렬사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리은기 로인은 26명 렬사중 일부는 항일전쟁에서 희생됐고 일부는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희생됐으며 최고 년장자라 해도 30살에 불과, 최년소는 19살이라고 소개했다.
“항일유격대원 김봉산, 김덕송, 김풍송, 조미인, 김풍산 등이 한차례 전투에서 연길 명동향의 한 가옥에 고립됐었고 적군이 그 집을 불살라 갇혔던 대원 다섯명이 모두 희생됐지, 그중 김봉산은 19살에 불과했다오.” 리은기 로인은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어루만지며 렬사들의 사적을 들려줬다. “김동학 렬사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고향을 떠나 항미원조에 참가하다 보니 딸 얼굴도 본 적이 없다오. 안해 림계순이 홀로 딸을 키웠고 평생 재가하지 않았소. 림계순 로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딸은 해마다 마을에 돌아와 제사를 지내오.”
기자가 알아본 데 따르면 삼합진 삼합촌 100여세대 촌민중 렬사가족이 5세대에 달한다. 세월이 흘러 그 당시를 기억하는 로인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기념비에 새겨진 렬사들의 사적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몇년간 삼합진정부 기관 사업일군들은 리은기 로인의 렬사기념비 관리 행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삼합진 삼합촌 촌민위원회 주임 지철송은 “우리는 앞으로 해마다 로인과 함께 렬사기념비를 찾아 영렬들을 기리고 렬사사적을 선전할 것입니다. 로인이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렬사기념비를 잘 지켜낼 것입니다.” 지철송은 청명 전날인 4일, 진 전체 당원들과 함께 혁명렬사기념비를 찾아 생화를 올리고 선렬들을 기리였다고 부언했다.
“나라와 인민을 위해 희생한 선렬들을 잊어서는 안되오. 로당원으로서 렬사기념비를 지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렬사기념비를 지키고 렬사들을 추모하는외 이들의 애국정신을 반드시 대물림해 내려갈 것이요.” 리은기 로인의 확고한 신념이다.
연변일보 장애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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