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
◈김철우(위해)
40여년전 유치원 문예공연을 마치고 남긴 기념사진(중간 필자)
오늘 나는 책상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흑백사진 한장을 땅에 떨구었다. 허리를 굽혀 손에 쥐여들고 보다가 나는 세월 속에 깊숙이 묻힌 추억의 바다 속에 저도 몰래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살면서 이따금씩 책상서랍을 뒤지거나 오래된 흑백사진들을 한장한장씩 살펴보며 아름다운 추억에 푹 잠길 때가 많지만 오늘처럼 뼈에 사무치게 흘러간 나날들이 그리워지기는 처음이다. 나이를 먹은 탓일가, 나답지 않게 눈굽에 이슬이 대롱대롱 맺히여 땅에 떨어진다.
인젠 허구한 시간의 흐름에 씻겨 영상이 희미해지고 사진종이마저 누렇게 퇴색한 흑백사진, 나를 이끌고 40성상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순간 나는 사진 속에 들어가 젊디젊은 35세의 청년으로 변해버렸다.
그 때 나는 길림성 룡정시 로투구진 렴명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다가 조직의 수요로 비록 가지 싫었지만 부르하통하를 건너서 관도학교로 전근해갔었다. 중학반의 어문교원이 없어 진 문교부문에서 강제로 명령을 내린 것이다. 공반교원은 현교육국의 전근령만 받으면 군대처럼 무조건 수긍해야 했다. 다행히 농촌이다 보니 빈집이 난 것이 있어서 독집이 차례졌지만 새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마음이 허공에 들떠있었고 좀처럼 본직사업에 정신을 모을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마음을 억지로 안착해가는데 중학반 어문 수업을 하는 한편 학교문예연출대 손풍금 반주를 해주라는 교장의 지시가 내려졌다. 하여 오전수업이 끝나고 오후가 되면 문예대를 책임진 녀선생을 도와 편곡하거나 작곡하여 종목련습으로 시간을 보냈다. 또 학교엔 유치원도 두개 반이 있었는데 그들이 진 유치원 문예경연에 참가할 준비를 할 때면 역시 반주를 해주어야 했다.
이 사진은 어느 한번 연출을 마치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인데 어느날 한국에 가서 일하는 큰아들이 위챗으로 사진을 보내오고 영상통화를 하면서 어느 애가 자기인가고 물어왔던 것이다. 이 사진 속엔 나의 두 아들애가 다 들어있었다. 당시 큰애는 여덟살, 작은애는 여섯살로 모두 우리 학교 유치원에 다녔었다.
인젠 너무 오래전의 일이여서 유치원 선생을 하던 두 처녀애의 이름조차 까맣게 잊었지만 얼굴을 보니 머리 속에 어렴풋이 그 때의 일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모두들 열살 전의 애들이였는데 인젠 50세를 올리 추는 젊은 아바이로 되였으니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하긴 당시에 서른다섯이던 내가 지금은 일흔다섯의 백발로 변해버렸으니 무정한 세월이 정말 괘씸하고 밉살스럽다. 어떻게 되돌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건 어림도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흘러간 강물은 되돌아올 수 없듯이 세월도 한번 가면 다신 돌아올 줄 모른다.
이 사진 속의 애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희들끼리 련계하여 위챗그룹을 뭇고 이 사진을 누가 올려서 다들 되새겨보면서 아직 못 찾은 애들을 찾고 있는 중이란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런 애들이였던가. 모두가 구김 없는 촌애들이여서 각별히 순진하고 정에 엉켜 나날을 보냈었다. 사진에서 맨 뒤줄 왼쪽 첫번째 애가 나의 큰아들이고 중간줄 왼쪽 첫번째 모자를 쓴 애가 나의 둘째아들이다.
이 스물한명의 나어린 배우들은 인젠 다 가정을 이루고 어떤 애는 손자까지 보았다고 한다.
나 이대로 사진 속에서 살면 안될가, 얼마나 행복한가. 그 때가 눈물 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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