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1)
▩양상태(길림)
필자부부가 당시 두손으로 지은 기와집
내가 결혼할 당시(1967년 겨울)에 우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가 계셨는데 누이는 출가했고 형님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제대하여 흑룡강성 대경시에 배치받았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큰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며 기숙하였고 막내동생은 소학교에 다녔다.
우리 집은 오두막집이였다. 미닫이를 사이두고 아래방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거처하고 웃방은 나와 안해가 거처했는데 아버지는 잠자리가 거북하다고 밤에는 한마을 독신령감 집에 가서 주무셨다. 이듬해 아들을 보면서 식구가 불어나자 나는 송곳자리 같은 잠자리에 누워잤다. 이때 마침 누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리가 그 집을 사게 되였다.
‘새집’은 두칸 초가집인데 한족식으로 정주와 방 사이에는 간막이벽이 있고 방은 중간에 바닥이 있었는데 북쪽은 우리가 차지하고 남쪽에는 부모님과 막내동생이 거처했다. 밤에 잘 때 포장은 쳤지만 사돈네 안방 같았다.
그마저도 몇년이 지나자 북쪽 담벽이 겨울에는 얼었다가 봄에는 녹으면서 내려앉다 보니 뒤문이 찌부러져 창문도 열 수 없게 되였다. 집이 무너져가자 할 수 없이 집을 지어야 했다.
그 때 농촌엔 벽돌집이라곤 검불밭에서 수은 찾기였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혹시 벽돌집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벽돌집에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욕심이 솟구치군 했다.
‘울고 싶자 때린다’고 안해와 상의하여 집에 있는 자금을 추려 기와집을 짓기로 했다.
집 짓는데 첫시작은 지반 닦긴데 집을 허물고 제자리에 짓다 보니 외일이 많았다.
수년 묵은 짚이영을 걷어내니 집채더미 같았다. 그것을 한마름 한아름씩 말아서 실어내고 그 다음 산자 뜯기, 서까래 뜯기, 도리 뜯기, 보장 뜯기, 기둥 빼기, 창문 뜯기, 새문 뜯기,지게문 뜯기를 해치운 다음 벽을 허물어 잘게 부순 후 집터자리를 평평하게 고르고 다진 후 반메터 넓이에다 약 2메터 깊이로 집기초 구뎅이를 파고 자갈모래로 구뎅이를 메운 후 물이 구뎅이에 고이도록 푹 주고 쇠지레대로 쑤시여 꽁꽁 다진다. 일이 소천엽에 똥 쌓이듯하였는데 전적으로 나와 안해 그리고 친척들이 했다.
지반을 닦은 다음 미장군이 기초돌을 쌓고 그 우에 벽을 쌓기 시작한다.
벽 쌓을 때 쓰는 모래와 그 외 수요되는 모래가 작은 집채더미 만했다. 나와 안해가 리야까로 한차 한차 실어날라서 모은 것인데 그 많은 모래를 어떻게 실어날랐는지 꿈만 같다.
집짓기 일을 시작하자 나는 보초를 보기 위해 헛간에서 잤으며 그 외 식구들은 사양소에 거처하다 보니 잠자리가 몹시 불편했다.
집짓기가 밥짓기라더니 안해는 일군들 밥을 하고 집식구들을 보살펴야지 눈코 뜰 사이 없었다.
하루는 70고령의 어머니가 4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집 짓는 것을 보러 왔는데 얼음과자 장사가 왔다. 애가 얼음과자를 사달라고 할매한테 칭얼댔다. 그 당시 집에 돈 한푼 없었다. 설마 있다 해도 푼전도 쪼개여 쓸 형편이다. 안해가 보다 못해 안타까와 “이다음 집 다 짓거든 얼음과자 많이 사줄게.”라고 구슬렸더니 “엄마 그럼 집 다 지은 다음 꼭 사줘야 돼.”라고 대답하는데 눈물이 글썽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났다.
나는 애연가였다. 한시라도 담배가 떨어지면 참지 못한다. 너무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면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남몰래 주어서 종이에 말아 피우기도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밤하늘의 별이 쳐다보이는 헛간에 누우니 온몸이 아프고 쑤셔났다. 그리고 오늘 아이에게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몇전짜리 얼음과자 한꼬치 못 사준 것을 생각하니 내가 왜 집짓기를 시작하여 개고생을 하나 싶어 몹시 후회되였다. 그러나 또 멀지 않아 벽돌집에서 살 것을 생각하니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이 꼬일라니 그 해는 특별이 비가 많아 사흘돌이로 비가 오는 바람에 늦가을 무렵에야 벽을 다 쌓았다. 집짓기에서 집벽을 다 쌓으면 집짓기 절반일은 한 셈이다. 이제 지붕만 씌우면 된다. 어쨌든 땅이 얼기 전에 기와를 얹어야 했다. 집짓기란 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이 많이 진척되여가니 온 집식구들이 기뻐하였다.
안해, 막내아들, 손자와 함께 집앞에서 찍은 1990년대 사진
이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 날 나는 지붕틀에 쓸 송목을 사려고 돈 300원(그 때 당시 300원이면 보통가정의 일년 분배돈이다)을 호주머니에 넣고 공공뻐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했다. 승객이 어찌나 많은지 뻐스안은 콩나물시루 같았다. 림장에 와서 목재 값을 바치려고 양복 안 호주머니에 손을 밀어넣으니 돈뭉치가 없다. 호주머니 아래쪽은 쭉 째져있고.
“앗차 소매치기당했구나!”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컹하면서 두방망이질했다. 그 날 어떻게 뻐스를 타고 돌아왔는지 제정신이 아니였다. 뻐스에서 내리자 남들이 안 보는 구석진 곳에 가서 그만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실컷 울고라도 싶었지만 억이 막혀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안해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텐데, 내가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고 무슨 낯으로 집에 들어가나, 집에 가서 안해에게 무어라고 말할가, 이 일을 알게 되면 그가 얼마나 상심할 것인가, 나의 머리속은 온통 실뭉치를 풀어놓은듯하였다. 도무지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 주저앉아 그냥 있어도 뾰죽한 수도 없다. 나는 생각할수록 오늘 그 패덕한 소매치기군놈이 괘씸하여 치가 떨렸다. 그러나 깨진 사발 금 맞추기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갈 곳은 그래도 집 뿐인지라 억지로 일어나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내가 파김치가 되여 집에 들어서니 눈치 빠른 안해는 대뜸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찌된 일이냐고 연거퍼 물어왔다. 나는 할 수 없어 된꾸지람을 들을 각오를 하고 소매치기에게 당한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돈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지 너무 속상해 말아요. 사람 있으면 돈도 있으니 돈은 앞으로 벌면 얼마든지 돼요. 설마 또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
당시 안해라고 왜 속상하지 않았으랴. 지어 녀자로서 나보다도 더했으련만 생각밖에 이런 말로 위로해주는 것이였다. 나는 안해의 고마운 마음에 북받치는 감격으로 두눈에 이슬이 맺혔다.
추위는 곧 닥쳐오겠는데 송목을 못 사면 집도 절도 없는 우리는 어디 가서 겨울을 날 것인가.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나와 안해는 몇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궁리해도 애간장만 탔다.
이때 마침 군대 간 막내동생이 이 소식을 알고 자기 처삼촌에게 부탁하여 송목을 사게 되였다. 그 처삼촌이 림업국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 집재목을 외상으로 사서는 림업국 차로 직접 우리 집까지 실어다준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송목을 실어오자 껍질을 벗긴 후 목수를 청하여 지붕틀을 짜고 동네 남정들을 청하여 지붕틀을 올렸다. 그리고 들보에다 붉은 천을 달아매고 폭죽을 터치고 일군들에게 풍성한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
지붕틀을 올린 후 그 우에 서까래를 걸친 후 반자를 깔고 기와걸개를 고정시킨다. 이런 목수일이 끝나면 와공들이 기와를 잇는다.
집 외부 일이 끝나면 집안 장식인데 안벽 바르기, 중천반 하기, 간막이벽 쌓기, 구들 놓기, 부엌 쌓기, 아궁과 부뚜막 하기, 창문에 유리를 맞추기, 전기 가설 등 일들이다,
큰처남은 전공이며 유리 끊는 기술도 있었다. 작은처남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20여리 상거한 우리 집에 와서 전기 가설을 하는데 초겨울이 림박한지라 손이 시렸지만 극복하고 창문에 유리를 끼워주었다.
큰동생은 기와, 문재료를 사주고 지붕틀을 짤 송목도 련계해주었다. 웃마을에 사는 자형은 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와서 일머리도 틀어주고 집 짓는 일을 보살펴주었다. 친척들의 방조가 없었더라면 우리 집은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땀 흘린 밭에 풍년 들고 피 흘린 곳에 기와집 짓는다’고 98평방 되는 덩실한 조선식 기와집이 처음으로 동네 한가운데 일어섰다.
새집들이 하는 날 온 식구들이 기쁨으로 하여 만면에 웃음꽃이 피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집에서 로부모를 모셨으며 일점혈육 없어 오갈 데 없는 새 장모도 십여년 모셨고 두 동생도 돌보면서 공부시키고 성가시켰다. 슬하에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막내아들은 대학공부도 시켰고 손자손녀 뒤바라지도 이 집에서 했다.
나와 안해는 한평생 이 기와집에서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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