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95]달리는 화물렬차를 멈춰세운 ‘도깨비’ 친구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6일 15시14분    조회:115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3)

▩리동주(연길)

퇴직 후 함께 등산하면서 즐기는 세 친구(오른쪽이 필자 리동주, 중간사람이 명준친구, 왼쪽이 종식친구.)

지금은 있을 수도 또 있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지만 달리는 화물렬차를 단지 친구라는 의리 하나 때문에 무작정 멈춰세운 ‘도깨비’ 친구가 있다.

바로 명준이라고 부르는 내 친구였다.

명준이와 종식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또 모두 철도계통에서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사업하고 있었던 까닭에 만난 지 얼마 안돼 인차 절친한 친구사이가 됐다. 그 때는 아직 장가도 들지 않고 물덤벙 술덤벙하기 좋아하는 20대 초반인 때라 서로가 친하기를 ‘부모를 팔아 친구를 살’ 정도로 친구사이 의리가 대단했다.

그런데 그러한 도 넘는 친구간의 의리가 한계를 벗어나면서 심지어는 달리는 화물렬차마저 멈춰세운 황당한 이야기까지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때는 바로 1973년도의 여름철이였다. 친구 종식이네 집은 룡정 동성용역 부근에 살았는데 연길에 살고 있던 나는 종식이네 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하루밤을 묵게 되였다. 나와 종식이는 이튿날 조양천에 돌아와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날이 희붐히 밝자 함께 동성용기차역으로 기차 타러 나왔다. 출근시간을 맞추자면 개산툰에서 발차하여 조양천역까지 가는 이른아침 화물렬차를 타야 했던 것이다.

평소 개산툰에서 떠나는 화물렬차는 동성용에서 물건을 실을 일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서 물건을 싣고 다시 떠나는데 그 사이에 화물렬차를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간혹 가다 동성용에 머물 일이 없으면 그냥 멈추지 않고 지나치기도 했으므로 렬차가 역에 들어오기 전의 신호등을 잘 살펴보아야 했다.

렬차들은 역구내에 들어설 때 반드시 먼거리 신호등과 역구내 신호등, 출발신호등 이 3개 신호등의 색갈에 따라 멈추거나 지나치게 되는데 3개의 신호등이 모두 푸른색으로 켜져있으면 이 렬차는 역을 그냥 통과하는 렬차로 멈춰서지 않게 되는 것이였다. 기차가 역에 멈춰설 수 있도록 제발 붉은 신호등이 켜져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역구내에 켜진 3개의 신호등 불빛은 모두 얄미운 푸른색이였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들어오는 화물렬차가 역에 멈춰서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신호였다.

직장에서는 출근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한바탕 꾸지람을 당하게 되는 판인데 오늘은 제시간에 출근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여버렸으니 속이 새까맣게 재가 되도록 달아올랐다. 교통수단이 락후했던 그 시절 그렇다고 걸어서 조양천까지 간다는 것도 시간상 안될 일이였다.

한참 조양천 가는 일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데 저 멀리로부터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면서 화물렬차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구내 3개 신호등이 모두 무사통과를 의미하는 푸른색임을 확인한 기관차는 뿡~ 하고 기적소리를 크게 뽑고 지심을 쿵쿵 울리면서 전속력으로 역을 통과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역전의 홈 쪽을 바라보니 당직원이 다름 아닌 친구 명준이였다.

종식이와 나는 다급히 그한테 달려가서 어떻게 기차를 세울 방법을 대보라고 윽박질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철도계통의 규률과 규정은 엄한 법규정과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였지만 진퇴량난에 빠진 것도 한순간, 역전구내로 향해 속력을 내며 들어서는 기차를 향해 마치 제 집 소수레를 멈춰세우듯 붉은색 기발을 다급히 내흔들었다. 철도규칙을 알고 있는 종식이는 다급히 명준이를 향해 황색 기발을 들라고 소리질렀다.

철도역 신호에서 황색 기발은 안전 주의 신호로서 이 구간을 달리는 렬차는 속도를 늦추면서 천천히 운행할 것을 요구하는 신호였다. 렬차가 속도를 늦춘 틈을 타서 기차에 타면 된다는 그럴듯한 타산에서 나온 말이였다. 그러나 사실 말이지 사사로이 렬차 운행 속도를 늦추거나 달리는 렬차에 뛰여오르는 행위는 모두 철도법 규정에 위반되는 행위로서 결코 취할 바가 못 되는 엄숙한 일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준의 손에는 황색 기발이 없었다. 애초 역통과 렬차가 올 줄을 알고 있었기에 명준이 역시 당직을 서러 나오면서 황색 기발을 가지고 나올 리 만무했으며 설사 다시 황색 기발을 가지러 간다고 해도 역구내까지 들어선 렬차를 천천히 가라고 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명준이가 내흔드는 붉은 기발을 본 기관차는 급기야 제동장치를 잡아당기면서 급정거를 했다. 정거는 했지만 관성으로 인하여 철길 우에서 미끄러져나가면서 부록기와 바퀴 사이마다 불꽃이 번쩍번쩍 튀고 아츠러운 마찰음을 련발했다. 기관차에서 흰 김이 량옆으로 확확 뿜어져나가면서 칙~ 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화물차는 덜컥 멈춰서버렸다.

기관사가 급히 조종실에서 뛰여내려 기관차 이곳 저곳을 망치로 두드려보면서 어디 잘못된 곳이 없나 살펴보고 있었으며 수위차에 있던 화물차장까지 큰 사고가 난 줄 알고 역전 쪽으로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 와중에도 명준이는 큰일을 저질러놓고 한 절반 넋이 빠져있는 우리들을 향해 빨리 기차에 오르라고 소리를 쳤다. 우리도 엉겁결에 화물차에 뛰여올라버렸다.

뒤늦게야 기차가 멈추어서게 된 원인을 알게 된 기관수는 명준이를 준렬히 비평했고 차장도 화물차를 놓고 아이들 장난 치듯한다고 크게 화를 냈다.

우리는 큰 화를 저지른 명준이의 앞날이 몹시 걱정되였다. 화물차에 앉은 나와 종식이의 심정 역시 요강뚜껑으로 물을 퍼마신듯 께름하기 짝이 없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요부문마다 모두 군사관제를 실시하던 때라 얼마 안 지나 도문분국 혁명위원회 주임인 군대표가 명준이를 찾았다. 군대표는 감히 화물렬차를 멈춰세운 명준이를 당장 분국으로 대령시키라는 무서운 호출령을 내렸다.

친구를 위해 화물차를 멈춰세울 때 당당하던 젊은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풀이 싹 죽어 삶은 시래기 꼴이 된 명준이를 군대표는 눈알이 쑥 빠질 정도로 사납게 닦아세우면서 훈계했다.

명준에게 내려진 처분은 분국 관할내 통보비평과 로임 한급을 낮추며 금후 사업표현을 보면서 다시 처벌하는 동시에 본 일터를 떠나 다른 일터로 전근시킨다는 가혹하면서도 무자비한 결정이였다.

친구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 달리는 화물렬차를 멈춰세운 사례는 아마 전국 철도계통에서도 그번이 처음일 것이다. 친구간의 바람직하지 못한 의리가 바로 명준이에게 화를 불러온 것이였다. 만약 그 때 그 사고만 아니였더라면 명준이는 본직 일터에서 무난히 승급할 수 있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였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인 것은 그 후 그번 일은 철도계통에서 사업하고 있는 우리 세 친구에게 모두 큰 교훈과 거울로 되여 우리가 모두 맡은바 일터에서 열심히 사업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명준이도 새로운 일터에 간 후 더욱더 노력하고 분발하면서 사업을 잘해 얼마 되지 않아 인차 강급됐던 로임을 회복했으며 후에는 려객렬차의 렬차장으로까지 승급했다. 또 그 후에는 철도계통의 공안전사로 되여 해마다 분국 공안계통의 선진사업일군으로 표창받는 영예를 따내기도 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친구들 모두 철도계통에서 퇴직했고 이젠 70세를 넘긴 로인들이 되였다. 하지만 친구간의 의리를 위해 감히 달리는 렬차마저 멈춰세운 ‘도깨비’ 친구 명준이를 생각하면 그 때 그 사고가 우렷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사고는 분명히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는 안될 무모한 사고였지만 그 사고를 통해 통절히 느꼈던 그 때 그 뉘우침과 반성이 바로 우리 세 친구가 금후 더 가까운 친구로 정을 나누고 또 사업에서 분발, 노력하게 한 진정한 우애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가 생각해보게 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