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09] 닭알에 깃든 구구 사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2일 00시00분    조회:14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시달려 굶주리다 시장경제 시대를 만나 여유족족 행복을 누린다. 이 모든 것이 개혁개방의 덕이라 하겠다.

8월의 삼복 무더위를 이기며 어느 일요일 나는 안해와 함께 모아산 등산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시원히 국수나 먹읍시다.”

자기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즐기는 걸 아는지라 안해는 랭면옥으로 걸었다. 11시도 안되였는데 하남 민족식당 랭면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였다.

잠간 자리를 기다리는 기간 나의 목젖은 벌써 방아를 찧었다. 드디여 자리가 생겨나 우리에게도 국수 두그릇이 올랐다. 저가락을 집어든 안해는 닭알을 집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였다. 자기 몫의 닭알을 잡숴달라는 것이다. 미안해하는 그 눈길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담낭이 나쁘기에 닭알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처음이 아닌 동작이기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끄덕였다.

옛날에는 메밀국수가 많았는데 메밀은 껍질부터 송곳 같은 뾰족날이 많이 서서 그 가루가 아무리 미세한 분말이라 해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역시 가시가 많이 돋은 과립체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배속에 들어가면 점막을 ‘찌르는’ 자극이 있기에 옛날 선조들로부터 메밀국수를 먹을 때에 꼭 먼저 닭알을 먹어 위점막을 포장해주라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국수에 닭알은 궁합 음식이기에 랭면을 먹으며 닭알을 먹지 않는 것도 틀린 습관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식객들이 삶은 닭알을 먹기 싫어 남겨버린다. 랭면옥에 물어보니 반수 이상의 손님들이 닭알을 버린다는 것이다. 여름철 더운 날이면 랭면 2000여그릇씩 판다니 천여개의 닭알이 구정물에 들어가는 셈이다. 너무나도 아깝고 끔찍한 랑비다.

닭알에는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린, 철, 칼륨, 비타민 등이 함유되여있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린다. 필수 콜레스테롤, 아미노산과 메사이오닌, 시오틴 같은 합황 아미노산이 많아 100그람당 139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있기에 인체 면역력 제고와 체질 증강에 보귀한 음식물이다. 또한 손재간 없는 사람도 쉽게 맛나는 료리를 만들 수 있는 흔하고 친근한 식품이다. 이토록 질 좋은 식품이건만 ‘루명’도 많이 쓰며 외면당하는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안해가 싫어하는 닭알을 먹을 때마다 닭알이 귀하여 가슴 앓던 때의 일이 떠오르군 한다.

1974년 1월, 우리의 첫 애기 림산 때의 일이다. 그 때 안해는 동불사의 본가집에서 호주노릇하며 출근하고 나는 돈화시에서 사업하는 외기러기였다.

조선족은 해산하면 미역국이 우선이지만 한족들은 닭알이 우선이고 닭알을 많이 먹은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여 나도 그 때가 되면 안해에게 닭알을 마음껏 먹여보리라 은근히 작심했다. 그런데 정작 닥치고 보니 안해의 림산기가 바로 음력설 좌우인 엄동설한이여서 닭알이 그렇게 귀할 줄이야.

그 때 돈화시에는 량식창고에 자그마한 양계장이 있었다. 그래서 량식국에서 일하는 한족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며칠 후 량식창고 주임의 도장이 찍힌 ‘두근’이라고 쓴 쪽지를 가져다주는 것이였다. 비록 너무 적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보배 같았다.

가격은 한근에 겨우 70전, 나는 새알보다 좀더 커보이는 하얗고 맑은 닭알 22개를 사들고 왔다. 여러개는 껍질에 피자욱도 있었다. 숙소에 들고 와 안전한 그릇에 담으면서 보니 한놈은 살짝 금이 갔었다. 나는 종이에 풀을 발라 터진 닭알을 땜질하여 맨 우에 올려놓았다.

상업국 식료품공사에도 찾아가 사정해보았는데 닭알은 ‘특수공급’으로만 비준한다며 퇴를 맞았다.

며칠 후 연길 출장길에 적지만‘최다'의 닭알 22개를 대감 모시듯 조심스레 들고 와 장모님에게 바쳤다. 그 날이 해산날 10일 전이였다.

그런데 사위가 왔는데 반찬거리가 없다며 장모는 그 자리에서 닭알 두알을 깨여 나에게 닭알국을 끓여주는 것이였다. 산모를 먹이려고 쉽지 않게 얻어 조심스레 들고 온 것을 나더러 먹으라 하니 너무도 난처하였다. 먹기도 어렵고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만삭이 된 안해도 옆에 앉아 웃으며 권장하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가슴에 아련하게 찔려온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때 여덟살이던 막둥이 처남이 너무 보채여 장모님은 역시 그 닭알 두알을 장려했다는 것이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우리의 첫 애가 태여나는 날 장모는 닭알을 산모에게 먹이며 힘을 주었다. 얻기 힘든 닭알 덕분인지 닭알 18개를 대접받은 산모는 무난히 고비를 넘기였고 젖도 많이 돌아져 아이도 건강했다.

그토록 희귀하던 닭알 얻기를 평생 잊을 수 없다.

1년 후 딸애의 돌을 쇠고 우리는 드디여 돈화시에 단란한 새 가정을 꾸리게 되였다. 장모는 병아리 몇마리 사주었다. 그 후로부터 우리 집에도 암탉이 있어 닭알을 생산할 수 있게 되였다. 아이들의 입살이에는 충족하였다. 혹시 불시에 술손님이 찾아와도 너무 막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직 개체경제가 허용되지 않아 농촌에서는 해마다 닭알 판매 임무를 떨구고 공소사에서 수매하였다. 돈이 나올 데 없는 농민들은 닭을 은행(鸡屁股银行)이라 불렀다. 그제날에 학용품을 사려면 닭알을 들고 공소사에 갔고 할아버지들이 정통편을 사도 닭알로 바꾸었다.

소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족 가는 날에는 꼭 차례지던 삶은 닭알, 그렇게도 맛있을 수가 있을가!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60년대, 우리 집에서는 닭 몇마리 길렀다. 엄마는 작은 그릇에 닭알을 깨여서는 소금물을 넣고 잘 저은 후 밥가마에 쪄내여 아버지의 도시락 반찬으로 하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찐 닭알을 떠내 도시락에 담아보내고는 아직 닭알이 좀씩 붙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장려하군 하였다. 나는 그 ‘밥도적’을 그릇에 숟가락 자리가 나도록 긁어먹었는데 그 별미의 짭짜름한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몆해 전 나 절로 그 때의 엄마를 본따 닭알반찬을 만들어보았는데 소금냄새 뿐 아무 맛도 없었다. 닭알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내 입이 변했는지…

내가 알건 대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실 때에 “닭알은 녀자들이 먹는 것이 아니야.” 하며 닭알반찬에 저가락도 안 대더니 어머니 역시 그 습관이였고 녀동생에게도 차례지지 않다 보니 지금도 나의 녀동생은 닭알은 “비린내 나서 싫다”며 먹을 줄 모른다. 나도 닭알은 아버지들만 많이 잡숫고 남자애들이나 조금씩 맛보는 줄로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닭알은 여전히 우리들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객이다 보니 여러가지 품질의 닭알이 대량 생산되는 한편 인조닭알도 나오고 지어 가짜닭알도 나오는 현실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닭알맛도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알은 여전히 고급 식품으로 대우받아야 함이 틀림없을듯하다.

닭알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장래에도 사과와 함께 제사상 잔치상에 빠질 수 없는 흔하면서도 귀한 식품이다. 다만 남성들에게 영양보충으로만 쓰이던 닭알이 아니고 애들을 어르기만 하던 반찬이 아니다.

없어서 못 먹던 그 세월이 오늘은 싫어서 먹지 않는 시대로 되였건만 오늘도 나는 해산할 안해에게 닭알을 푸짐히 대접 못한 죄책감에 모대긴다. 닭알만 보면 떠오르는 아픈 추억이다.

나는 지금도 외출하면 아침식사 때 꼭 튀긴 닭알 한알씩 먹으며 그 옛날을 되새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4) ▩김수철(룡정)/오기활(도문) 대필 김수철 교수. 김교수는 이 토배기 현미경에 의거해 자신이 채집한 2600여종의 식물표본을 사생하였다. /오기활 찍음 나의 식물채집은 만년에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고행을 겪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6년 9월 10일에...
  • 2019-01-25
  • - 글 / 박선희-        중국의 작은 시골에서 태여나고 작은 도시에 나와 공부하고 작은 꿈 안고 한국으로 유학가고 지금은 여기 일본에서 사네   태여난 곳 산 좋고 물 맑은데 공부하던 곳 아담하고 정겨운데 유학했던 곳 우리 말 친숙한데 낯설고 언어가 안 통하는 여기에 사네   태여난 곳 ...
  • 2019-01-21
  • 음력설을 맞으며 연변무역협회(회장 남룡수)에서는 1월 18일, 연길시 의란진 룡연6대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중증장애인위탁양성센터를 방문하고 입살, 콩기름,우유,옹기된장, 이레네 유기농사과 등1만여원에 달하는 생필품을 전달했다.   회원들은 연변중증장애인위탁양성센터 관계자의 안내하에 모의미용원, 모의상점...
  • 2019-01-1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김규칠(화룡) 1974년 7월, 화룡현 동성공사 해란소학교 제5회 졸업 기념사진. 앞줄 왼쪽 세번째가 필자. 해마다 청명, 추석이면 나는 어김없이 진정부 소재지 동네에서 10리 가량 떨어진 해란촌에 있는 어머님 산소로 찾아간다. 해란촌은 전에 내가 15년 남짓 때묻...
  • 2019-01-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신기덕(장춘) 글의 주인공 박정양선생님 이 세상에 돈이 존재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든다. 부유하다와 가난하다도 그 돈을 기준으로 하여 나뉘여지며 도적과 강탈 사건도 많은 경우 그 돈 때문에 생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
  • 2019-01-16
  • 단동시조선족로인들의 우스개 같은 진담 1989년 2월 27일 성립된 단동시조선족로인협회는 지난 30년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건실하게 발전해왔다. 협회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쳐 로인협회를 진정으로 로인들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즐거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단동시조선족로인협회...
  • 2019-01-1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9) ▩윤미란(장춘) 어린 시절 필자(오른쪽 뒤)가 형제, 사촌들과 함께. 지난 세기 80년대에 태여난 우리를 80후라고 부른다.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중국의 40년을 거쳐 이룬 성과를 몸과 마음으로 감수하면서 성장한 우리 세대이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품어왔던 많...
  • 2019-01-10
  • 일본 관광길에서 필자부부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일년내 주문하였던 각종 잡지들을 류별로 정리하다가 10월호를 그만 빼놓고 읽지 않은것을 발견했다. 하여 모든 일을 접어놓고 늦게나마 잡지를 펼쳐들게 되였다. 권두언에 림중수적(林中水滴)이 쓴 문장 《마무리를 잘하라》가 눈길을 끌어 읽었다. 1964년 일본땅에서 ...
  • 2019-01-07
  • 10일 사이 진흥총회 등 조선족 단체 개인 백혈병환자에게 수만원 기부 2018년 12월 27일, 길림신문 인터넷,  위챗 공식계정을 통해 백혈병에 걸린 안해 고양(29살)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조이고 있는 조선족 조금룡(30세)가정의 사연을 담은 글 가 발표된 후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회원과 매체인, 사회 각...
  • 2019-01-07
  • 태여난 지 두살 반 되는 아이가 부득불 엄마의 품을 떠나 할머니와 함께 있게 되였습니다. 지난 7월말부터 29살 나는 애 엄마가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12월 25일, 우리는 환자가 입원한 길림대학 제1병원 종양중심에서 환자의 남편 조선족 조금룡(30세)을 만났습니다. 12월 25일 오후 길림...
  • 2018-12-27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6)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 필자 전영실 나는 단위 종업원 운동대회를 비롯해 운동경기에 자주 출전하는 스포츠맨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나는 소학교 2학년 때 하학길에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다리를 상했는데 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
  • 2018-12-26
  • —나어린 손녀, 반평생 남호촌에서 살아온 할머니를 글로 쓰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서 동남쪽으로 50키로메터 쯤 가면 ‘송이버섯 고향'으로 불리우는 삼합진이 있다. 삼합진정부 소재지에서 7리 가량 더 가면 조선의 함경북도 회령시와 두만강을 사이두고 있는 남호촌이 보인다. 할머니네 집에...
  • 2018-12-19
  • 명동서예사랑총동문회 애심부 회원들과 연변문자예술협회 당지부에서는 12월 12일, 룡정시 신광촌에 위치한 고아원- 을 찾아가 애심과 문화를 전달했다. 이에 앞서 명동서예사랑총동문회에서는 지난 12월 10일 운영위원회의를 개최하고 년말을 맞으며 애심활동을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당일 전체 회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
  • 2018-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 일본관서지역조선족망년회가 오사카에서 지난 12월 9일 열렸다.   이번 망년회는 일본관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과 조선족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 약 70명 가까이 모여 타국에서도 고향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망년회는 관서지역에서 현재 활약하고 있는 관서조선족...
  • 2018-12-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2) ▩조려화(도문) 10여년전 부모님을 모시고 유람길에서 남긴 가족사진(왼쪽이 필자 조려화) 며칠전 시장에 갔다가 친정에 들렸다. 아빠의 3년제를 치른 뒤 엄마는 부인이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고 친정은 평소에 늘 비...
  • 2018-12-05
  • 연변항공승무학교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길' 통해  빈곤가정 어린이들에게 1만원 후원      "이 추운 겨울 어떻게 날가?" 걱정하는 이들이 있어 이 사회는 더욱 아름답고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난 11월 24일, 연변한공승무학교(교장 최옥금)의 사생들은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 2018-12-04
  • —치부의 ‘코기러기’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촌민위원회 주임 김만혁의 이야기   방천촌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 김만혁 연변에서 최근년간에 변화가 제일 큰 마을을 꼽으라면 아마도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을 대야 할 것이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외국의 전기...
  • 2018-12-0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1) ▩원죽순(화룡) 필자 원죽순 부부 1976년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우리 부부의 꿈은 먹고 입을 걱정 없이 아담한 집에서 아기자기 잘살아보는 것이였다. 70년대의 생활수준은 집집마다 거의 가난에 쪼들렸다. 병약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우리 가정도 례외가 아니...
  • 2018-11-28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0) ▩최금란(대련)     텔레비죤 화면을 통하여 당대표와 인민대표, 정치협상회 위원들이 북경에 모여와 인민대회당에서 국사를 의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솟구치는 감회를 금할 수 없다. 인민대회당을 건설하던 의무로동의 잊지 못할 나날들이 어제런...
  • 2018-11-23
  • ‘로3기’를 새중국 력사에서 가장 전기적 이야기가 있는 한 세대라고 말한다. 올해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온 ‘로3기’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농촌으로 내려간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2018년 11월 14일 오후, 통화시조선족학교 ‘로3기’ 학우들의 주최와 통화시조선족학교의 주관하에 &...
  • 2018-11-17
‹처음  이전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