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09] 닭알에 깃든 구구 사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2일 00시00분    조회:148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시달려 굶주리다 시장경제 시대를 만나 여유족족 행복을 누린다. 이 모든 것이 개혁개방의 덕이라 하겠다.

8월의 삼복 무더위를 이기며 어느 일요일 나는 안해와 함께 모아산 등산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시원히 국수나 먹읍시다.”

자기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즐기는 걸 아는지라 안해는 랭면옥으로 걸었다. 11시도 안되였는데 하남 민족식당 랭면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였다.

잠간 자리를 기다리는 기간 나의 목젖은 벌써 방아를 찧었다. 드디여 자리가 생겨나 우리에게도 국수 두그릇이 올랐다. 저가락을 집어든 안해는 닭알을 집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였다. 자기 몫의 닭알을 잡숴달라는 것이다. 미안해하는 그 눈길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담낭이 나쁘기에 닭알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처음이 아닌 동작이기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끄덕였다.

옛날에는 메밀국수가 많았는데 메밀은 껍질부터 송곳 같은 뾰족날이 많이 서서 그 가루가 아무리 미세한 분말이라 해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역시 가시가 많이 돋은 과립체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배속에 들어가면 점막을 ‘찌르는’ 자극이 있기에 옛날 선조들로부터 메밀국수를 먹을 때에 꼭 먼저 닭알을 먹어 위점막을 포장해주라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국수에 닭알은 궁합 음식이기에 랭면을 먹으며 닭알을 먹지 않는 것도 틀린 습관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식객들이 삶은 닭알을 먹기 싫어 남겨버린다. 랭면옥에 물어보니 반수 이상의 손님들이 닭알을 버린다는 것이다. 여름철 더운 날이면 랭면 2000여그릇씩 판다니 천여개의 닭알이 구정물에 들어가는 셈이다. 너무나도 아깝고 끔찍한 랑비다.

닭알에는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린, 철, 칼륨, 비타민 등이 함유되여있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린다. 필수 콜레스테롤, 아미노산과 메사이오닌, 시오틴 같은 합황 아미노산이 많아 100그람당 139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있기에 인체 면역력 제고와 체질 증강에 보귀한 음식물이다. 또한 손재간 없는 사람도 쉽게 맛나는 료리를 만들 수 있는 흔하고 친근한 식품이다. 이토록 질 좋은 식품이건만 ‘루명’도 많이 쓰며 외면당하는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안해가 싫어하는 닭알을 먹을 때마다 닭알이 귀하여 가슴 앓던 때의 일이 떠오르군 한다.

1974년 1월, 우리의 첫 애기 림산 때의 일이다. 그 때 안해는 동불사의 본가집에서 호주노릇하며 출근하고 나는 돈화시에서 사업하는 외기러기였다.

조선족은 해산하면 미역국이 우선이지만 한족들은 닭알이 우선이고 닭알을 많이 먹은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여 나도 그 때가 되면 안해에게 닭알을 마음껏 먹여보리라 은근히 작심했다. 그런데 정작 닥치고 보니 안해의 림산기가 바로 음력설 좌우인 엄동설한이여서 닭알이 그렇게 귀할 줄이야.

그 때 돈화시에는 량식창고에 자그마한 양계장이 있었다. 그래서 량식국에서 일하는 한족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며칠 후 량식창고 주임의 도장이 찍힌 ‘두근’이라고 쓴 쪽지를 가져다주는 것이였다. 비록 너무 적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보배 같았다.

가격은 한근에 겨우 70전, 나는 새알보다 좀더 커보이는 하얗고 맑은 닭알 22개를 사들고 왔다. 여러개는 껍질에 피자욱도 있었다. 숙소에 들고 와 안전한 그릇에 담으면서 보니 한놈은 살짝 금이 갔었다. 나는 종이에 풀을 발라 터진 닭알을 땜질하여 맨 우에 올려놓았다.

상업국 식료품공사에도 찾아가 사정해보았는데 닭알은 ‘특수공급’으로만 비준한다며 퇴를 맞았다.

며칠 후 연길 출장길에 적지만‘최다'의 닭알 22개를 대감 모시듯 조심스레 들고 와 장모님에게 바쳤다. 그 날이 해산날 10일 전이였다.

그런데 사위가 왔는데 반찬거리가 없다며 장모는 그 자리에서 닭알 두알을 깨여 나에게 닭알국을 끓여주는 것이였다. 산모를 먹이려고 쉽지 않게 얻어 조심스레 들고 온 것을 나더러 먹으라 하니 너무도 난처하였다. 먹기도 어렵고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만삭이 된 안해도 옆에 앉아 웃으며 권장하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가슴에 아련하게 찔려온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때 여덟살이던 막둥이 처남이 너무 보채여 장모님은 역시 그 닭알 두알을 장려했다는 것이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우리의 첫 애가 태여나는 날 장모는 닭알을 산모에게 먹이며 힘을 주었다. 얻기 힘든 닭알 덕분인지 닭알 18개를 대접받은 산모는 무난히 고비를 넘기였고 젖도 많이 돌아져 아이도 건강했다.

그토록 희귀하던 닭알 얻기를 평생 잊을 수 없다.

1년 후 딸애의 돌을 쇠고 우리는 드디여 돈화시에 단란한 새 가정을 꾸리게 되였다. 장모는 병아리 몇마리 사주었다. 그 후로부터 우리 집에도 암탉이 있어 닭알을 생산할 수 있게 되였다. 아이들의 입살이에는 충족하였다. 혹시 불시에 술손님이 찾아와도 너무 막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직 개체경제가 허용되지 않아 농촌에서는 해마다 닭알 판매 임무를 떨구고 공소사에서 수매하였다. 돈이 나올 데 없는 농민들은 닭을 은행(鸡屁股银行)이라 불렀다. 그제날에 학용품을 사려면 닭알을 들고 공소사에 갔고 할아버지들이 정통편을 사도 닭알로 바꾸었다.

소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족 가는 날에는 꼭 차례지던 삶은 닭알, 그렇게도 맛있을 수가 있을가!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60년대, 우리 집에서는 닭 몇마리 길렀다. 엄마는 작은 그릇에 닭알을 깨여서는 소금물을 넣고 잘 저은 후 밥가마에 쪄내여 아버지의 도시락 반찬으로 하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찐 닭알을 떠내 도시락에 담아보내고는 아직 닭알이 좀씩 붙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장려하군 하였다. 나는 그 ‘밥도적’을 그릇에 숟가락 자리가 나도록 긁어먹었는데 그 별미의 짭짜름한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몆해 전 나 절로 그 때의 엄마를 본따 닭알반찬을 만들어보았는데 소금냄새 뿐 아무 맛도 없었다. 닭알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내 입이 변했는지…

내가 알건 대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실 때에 “닭알은 녀자들이 먹는 것이 아니야.” 하며 닭알반찬에 저가락도 안 대더니 어머니 역시 그 습관이였고 녀동생에게도 차례지지 않다 보니 지금도 나의 녀동생은 닭알은 “비린내 나서 싫다”며 먹을 줄 모른다. 나도 닭알은 아버지들만 많이 잡숫고 남자애들이나 조금씩 맛보는 줄로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닭알은 여전히 우리들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객이다 보니 여러가지 품질의 닭알이 대량 생산되는 한편 인조닭알도 나오고 지어 가짜닭알도 나오는 현실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닭알맛도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알은 여전히 고급 식품으로 대우받아야 함이 틀림없을듯하다.

닭알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장래에도 사과와 함께 제사상 잔치상에 빠질 수 없는 흔하면서도 귀한 식품이다. 다만 남성들에게 영양보충으로만 쓰이던 닭알이 아니고 애들을 어르기만 하던 반찬이 아니다.

없어서 못 먹던 그 세월이 오늘은 싫어서 먹지 않는 시대로 되였건만 오늘도 나는 해산할 안해에게 닭알을 푸짐히 대접 못한 죄책감에 모대긴다. 닭알만 보면 떠오르는 아픈 추억이다.

나는 지금도 외출하면 아침식사 때 꼭 튀긴 닭알 한알씩 먹으며 그 옛날을 되새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