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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14]그 해 여름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2월5일 00시00분    조회: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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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2)

▩조려화(도문)

10여년전 부모님을 모시고 유람길에서 남긴 가족사진(왼쪽이 필자 조려화)

며칠전 시장에 갔다가 친정에 들렸다. 아빠의 3년제를 치른 뒤 엄마는 부인이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고 친정은 평소에 늘 비여있는 터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5년 철에 접어들지만 아직도 집에 들어서면 아버지가 그렇게도 즐기시던 술의 향기가 남아있고 담배냄새가 배여있는 것 같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습관처럼 집안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는 사진첩을 찾아들었다. 추석에 아버지한테 술 한잔 올리고 나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 갑자기 사진들도 보고 싶어졌다.

한장 한장 추억의 사진첩을 펼치니 옛날 생각도 나고 픽 웃음이 나올 정도로 촌스러운 사진들도 많이 보였다.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지나온 세월들이 남아있는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추억에 잠겨있던 나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아버지의 환갑 해에 식구들이 함께 북경에 유람 갔을 때의 사진들을 발견했다.

벌써 십년이 넘게 된 사진 속에서 아버지, 엄마, 동생, 나 넷이서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진). 그 해 여섯살이던 조카가 찍어준 사진이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건강하셨고 엄마도 기운이 넘치셨다. 나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동생도 지금과는 다르게 살집이 좀 있는 몸매였다. 그번 유람은 우리 식구가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유람이여서 더욱 애틋했고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2007년은 아버지의 환갑 해였다. 지금은 다들 오래 앉으시니까 환갑을 쇠지 않는 것이 이미 대세가 되였고 아버지도 쇠지 않으시기로 했다

“그럼 유람을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는 동생과 상의하고 부모님의 의향을 여쭈어보았다. 그래도 환갑인데 그냥 보낸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었다.

“그게 좋겠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나야 좋지.”

평소에도 휘발유 냄새가 고소하다시며 차를 타고 종일 다녔으면 좋겠다던 아버지였기에 선뜻 동의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식구가 처음으로 함께 유람이란 걸 떠나게 되였다. 목적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으시다던 수도 북경으로 결정하였다.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아버지는 부대에서 제대할 때 가져온 솜옷을 씻어입고 엄마랑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감자 한바가지, 옥수수쌀 한바가지를 가지고 세간을 나서 남의 집 사랑방에서 시작한 살림살이는 너무나도 고되였다고 한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세월에 나와 동생의 뒤바라지까지 해야 하니 도문에 한번 올라가는 것도 우리한텐 사치였다.

엄마는 큰이모가 계시는 연길도 몇년에 한번 밖에 다녀오지 못하셨다. 어쩌다 한번 큰맘 먹고 엄마가 아버지더러 나를 데리고 큰이모네 집에 다녀오라고 해서 갔는데 큰 시가지에 가니 집을 찾지 못해 하루종일 연길의 골목을 헤맸던 일이 생각난다. 다니시는 걸 그리도 좋아하시는 아버지였지만 나와 동생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람은 꿈도 꾸지 못하셨을 것이다.

북경으로 향하는 렬차에서도 엄마랑 나랑 동생은 멀미 땜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데 아버지는 처음으로 북경에 가시는 것이 좋으신지 별로 주무시지도 않고 종일 서성이셨다. 차창 밖으로 바깥경치를 구경하시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시기도 하셨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은 표를 사지 않고도 북경으로 갔다 올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가보지 못하셨단다. 북경으로 가는 길에서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가? 들뜬 기색이 력력한 아버지를 보면서 자식으로서 여직껏 부모님을 모시고 제대로 된 유람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것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북경역에 내려 우리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사진을 찍는 일이였다. 나중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으니까 추억을 많이 남기자고 가기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셨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셨다. 북경의 명승지를 돌면서 가이드의 해설을 듣기보다 사진을 찍기에 더 열을 올렸다. 나랑 동생은 젊으니까 아무때라도 다시 올 수 있지만 부모님은 다시 오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될수록 사진을 많이 찍어드렸다.

북경의 여름은 무더웠다. 우리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더위였는데도 아버지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씽씽 다니셨다. 늘 제일 먼저 일어나셨고 제일 먼저 준비를 다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군 하셨다. 오늘은 또 어떤 곳에 갈가 많이 기대되고 궁금하셨나 보다. 천안문광장을 시작으로 고궁, 이화원, 천단공원, 북해공원… 가는 곳마다 부모님은 흥미진진하게 둘러보시였고 아버지는 더군다나 즐거워하셨다.

나는 가슴이 한켠으론 시려오면서도 한켠으로는 뿌듯해났다.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모시고 유람을 온 것이 너무나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였고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효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북경 유람 사흗날의 목적지는 만리장성이였다. 여섯살 난 조카도 씽씽 기운 내서 오르고 등산이라면 꼼짝 못하는 나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먼발치 앞서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성에 올랐다. 우리가 유람하는 며칠 동안 북경의 날씨는 좀 더울 뿐 얼마나 맑게 개였는지 모른다. 저 멀리 푸른 하늘과 푸른 산이 잇닿아있는데 푸른 산등성이로 뻗은 장성이 꾸불꾸불 꿈틀대는 룡처럼 누워있었다.

기나긴 력사의 숨결을 느끼고 로동인민들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탄복하면서 오른 장성, 나는 그 곳에서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띠목걸이를 사드렸다. 우리 가족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다 가고 이제는 좋은 일만 남았으니 부모님 제발 오래오래 건강하게 앉으시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위대한 인류의 유산인 만리장성의 기운을 받아 부모님이 꼭 건강하게 오래 앉으실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잊지 않고 가족사진도 남겼다.

“아버지, 좋습니까?”

“좋지 그럼!”

원래 말주변이 없는 아버지인지라 짧게 대답을 하셨지만 얼굴에는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으시였다. 만리장성에 오르시니 기분도 한껏 들떠있으셨다. 엄마도 동생도 조카도 모두가 행복한 모습을 보니 내가 여직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이번 유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엄마와 나는 그 해 가을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 그런데 건강하게 잘 지내실 줄만 알았던 아버지는 그 이듬해에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였고 6년의 힘든 투병 끝에 2014년에 끝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술을 그리도 반가와하셔서 끝내는 술 때문에 병을 얻고 돌아가셨는데도 아직도 좋은 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살아계셨으면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시는 술을 실컷 드실 수 있을 텐데 조금만 더 앉으시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난다.

지금은 추억이 되였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람, 나는 오늘도 사진을 보면서 내 인생의 가장 값지고 아름답던 그 해 여름을 떠올린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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