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26]81세에 겪은 풍찬로숙의 고행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월25일 00시00분    조회:22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4)

▩김수철(룡정)/오기활(도문) 대필

김수철 교수. 김교수는 이 토배기 현미경에 의거해 자신이 채집한 2600여종의 식물표본을 사생하였다. /오기활 찍음

나의 식물채집은 만년에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고행을 겪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6년 9월 10일에 나는 81세 나이에 식물조사의 지점을 룡정시 지신으로 택했다.

룡정에서 지신 성남까지는 택시로 멋스레 갔다. 다음부터는 도보이다. 식물조사는 부득불 ‘11호차’만 리용해야 할 뿐 다른 여지가 없다. 하기에 이 일은 남들에게는 아주 괴로운 일처럼 보인다. 나도 떠날 때는 다소 걱정이 되지만 일단 현지에 도착하면 내가 보고픈 초목들로 흥에 겨워 종일 다녀도 고단하기는 하지만 성취감에 피로감이 압도된다.

지신의 이 계절은 송이 사냥군들이 산을 메주 밟듯 헤매니 수림 속의 풀밭에 남긴 그들의 발자국으로 나는 비록 혼자몸이지만 외롭다는 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내가 만나려는 식물마다 저들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나에게 끊임없이 전달해주는 데서 나는 눈고픔과 귀고픔을 말리는 매력에 도취되여 다른 여념을 가질 겨를이 거의 없었다.

한식경 남짓 송림 속에서 헤매느라니 뜻밖에 동북해방무명렬사비석을 만났다. 비록 주위는 잔디풀로 깔렸으나 우거진 나무숲 속에 숨겨진 데서 쉽게 찾아볼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마음이 언짢았다.

나는 혁명렬사들의 혁명정신 위압에 눌려 불시에 내 몸이 작아지는 감을 느꼈다. 그리고 혁명사업에 보귀한 생명을 바치고 고이 잠든 그들에 비하면 지금의 나의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나는 머리 숙여 렬사 비석에 경의와 추모의 묵도를 하고 나니 혁명렬사들이 나를 고무하고 격려하는 감이 느껴졌다.

‘혁명의 로근거지인 연변은 가는 곳마다 원쑤들과 용맹하게 싸우다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진 무명 혁명렬사들이 그 얼마일가!?’

한동안 이런 생각으로 모대기던 나는 당년에 부르던 추도가를 맘속으로 불렀다.

가슴 우에 손을 얹고 쓰러진다 혁명군

가슴에서 흐르는 피 푸른 풀에 질벅해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

후- 긴 한숨 따라 눈굽이 젖어나며 머리 속에는 “오성붉은기에는 조선혁명렬사의 붉은 피가 슴배여있다”고 한 모택동 주석의 말씀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만약 세상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대신으로 죽는 법이 있다면 비록 늦었다고는 해도 이 나이에 내가 렬사를 대신해 죽어지고 이름 모를 렬사가 회생하여 장가전이면 장가를 가고 분단된 조국일지망정 한번 다녀왔으면 얼마나 좋을가…’

나는 이런 생각으로 혁명렬사들의 바람이 바로 오늘의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되여 마치 잠에서 깬 사람마냥 불시에 새 힘을 얻고 계속하여 숲속을 헤치며 찾고저 하는 식물에만 눈정신을 팔았다.

‘큰쓰레산’ 바위 속에 드문드문 차지한 가둑나무 숲에 이르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나는 큰 바위를 의지하여 준비하였던 비닐박막으로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비닐하우스를 꾸미였다. 지금은 맹수들이 거의 없고 또 이 나이를 먹으니 귀신도 두렵지 않았다. 단 겁이 있다면 비바람의 공습 뿐이였다. 10월이 당금인 데도 다행으로 밤 날씨가 좋았기에 혼자몸으로 심산 속에서 순리롭게 야영을 하였다.

새날이 희붐히 밝으니 또 길도 없는 수림 산속으로 향하였다. 남쪽 벼랑에 이르니 2~3메터 높이의 기둥 모양으로 된 석림 천불지산(天佛脂山)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1985년 룡정현 지명지는 “하늘의 법사가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하여 ‘천불지산’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였다.

천불지산 정상에 오르면 오봉산, 큰쓰레 노름바위 등 두만강의 이북 산봉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길림신문 》에서 본 룡정시 오정묵씨의 천불지산 얘기이다.

나와 천불지산의 인연은 이상하게 맺어졌다. 1990년대 초반의 어느 날, 등산길에서 약재 캐는 로인을 만나 이 말 저 말을 나누던 끝에 산 이름을 물었더니 천불지산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로인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허망한 전설로 마이동풍으로 흘려보냈는데 후날에 자료들을 찾아보니 그 전설 속의 인물이 실존인물로(룡성스님) 그가 유명한 반일지사라는 것을 알았다.

천불지산을 바라보며 “절승경개는 여기로다…”란 시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천불지산의 경관을 연길 모아산에 옮겨다 심는다면 얼마나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끌 것인가는 속셈도 해보았다.

‘아쉽도다! 지금은 관광객이 나 혼자 뿐이니 천불지산이 독수공방 신세로구나!’

이런 아쉬운 심정으로 천불지산을 등지고 한참을 걸으니 발목까지 풀썩 빠지는 습지에서 키다리로 자란 키다리바비꽃의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졌다.

지신에서 삼합으로 넘어가는 접경지에 이르니 지신림장 일군들이 내 볼 바엔 멋스러운 집을 짓느라고 한창이였다.

“아바이는 어디서 오십니까?

“오기는 지신에서 오는데…”

“무얼 하러 오셨습니까?”

“식물채집이지요”

“아바이, 이곳은 식물채집이 금지된 구역이니 다시는 오지 맙소. 한번만 용서하꾸마.”

“그렇게 하오리다. 그런데 여기서 대명동(지금의 부유촌)까지 가려면 몇리나 걸어야 하오?”

“70리꾸마.”

뜻밖에도 한 젊은이가 70리라는 말에 내가 주저하는 눈치가 보였던지 나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대명동이 70리가 안됩니다. 17리나 되는데 날이 저물기 전에 아바이는 이곳을 빨리 떠나가십시오.”라고 알려줬다.

나는 사람냄새가 나는 젊은이의 말에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해주니 정말 고맙구려…”라는 인사말을 대충 남기고 동남쪽으로 열린 골짜기를 향해 걸었다.

기실 내가 생각이 나는 대로 그들에게 “지신림장에서 한동안 일을 본 적이 있는 김상래를 아시오? 내가 상래의 아버지요…”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도 그들이 이 주책없는 늙은이에게 잠자리도 마련하고 때시걱도 반반히 차릴 것이지만 내가 그들에게 페를 끼치기보다 차라리 숲속에서 나 홀로 마음을 푹 놓고 야영을 하는 편이 퍼그나 편안하겠다고 생각하고 갈길을 재촉했다.

나는 남들에게 페를 끼치는 것이 송구스러워 질색한다. 지금도 남에게 부담되는 일이 마음에 걸려 심지어 90을 넘긴 로친까지 딸집에 보내고 고군작전을 하면서 《길림성식물지》를 편찬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길가에서 엄청나게 큰 독활(獨活)을 만나니 ‘여기는 확실히 심산이 옳구나’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두운 산곡간의 길을 걸으면서 곡간으로 흐르는 내물을 건너갔다가는 또 그 내물을 다시 건너오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나의 경험과 이미 걸은 짐작으로 25리는 잘되게 걸었는 데도 17리 가량 된다는 대명동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럴 즈음에 변덕스럽게도 “꽈르릉…” 하고 귀청을 울리는 우뢰소리가 이 늙은이를 경악케 한다. 게다가 급하게 내물을 건너다가 어림증으로 돌에 걸려 넘어져 온몸이 물참봉이 되였다.

더는 갈 수 없게 되였다. 앞뒤가 어두워서 좀처럼 방향과 행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촌보난행의 시각에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소낙비까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물가에서 꽤나 굵직한 버드나무를 꺾어 두 버드나무 사이에 가름대를 걸고 거기에 비닐박막으로 주머니 모양의 하우스를 겨우 만들고 그 속에 몸을 숨겼다.

실로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몸가짐으로 비닐박막 주머니를 쓰고 서있는 꼴이였다. 물판에 앉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어제 숲속에서 만난 혁명렬사를 다시 생각하며 총탄이 비발치는 최전선에 비하면 이까짓 비방울은 아무 것도 아니였다.

비를 맞아 물참봉이 된 내가 홀로 지낸 이번 길이 결국은 2박3일의 힘겨운 야영길이였다.

날이 밝자 바람으로 자리를 떠나 산곬을 따라 내려가니 하마 양식장의 사나운 집지키기 개가 길을 막아나섰다. 집주인이 나와서 돌아가는 길 문을 열어줬다.

넓은 시야에 삼합청천저수지가 안겨왔다. 다행히도 대명동(부유촌)에서 삼합진으로 달리는 빈 택시를 만나 잡아타고 거침없이 룡정 집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만년에 호기심으로 떠난 2박3일간의 식물조사는 나에게 찬비를 맞게 하고 이틀이나 나홀로를 寒渡를 시켰어도 하느님이 돌본 덕분으로 감기도 안 걸리고 성공적으로 이어졌으니 나에게는 대단한 축복이였다

(김수철, 95세, 연변농학원 교수)

2017년 김수철 교수가 훈춘에서 박영호 제자의 식물육종 시험기지를 돌아보고 있다. /오기활 찍음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자료사진 서로 수십년을 그리워하던 남녀가 끝내 다시 만나 결혼식을 올려 화제다. 현지시간으로 12일, 영국 BBC 방송이 65년만에 부부의 연을 맺게된 이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영국 더비셔주에 살던 86세 데이비 목스씨와 82세 헬렌 안드레씨는 1951년에 결혼을 약속했던 ...
  • 2016-11-14
  • [백성이야기39] —흑룡강성 시골출신 현진성, 김길순 부부의 도시진출이야기 안해(김길순)가 불어주는 멋진 쌕스폰연주에 남편(현진성)이 멋진 노래가락 뽑는다/김성걸기자 현진성(58세), 김길순(57세) 부부의 요즘 일상은 “이번에는 어느 곳에 유람을 떠나볼가” 하는 행복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 2016-11-12
  • ‘carrot(당근)’이 ‘karat(금의 순도 단위)’을 돌려주러 나타났다. 밭일 도중 잃어버렸던 결혼반지가 3년 만에 당근에 끼인 채로 주인 앞에 나타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독일 빌트지 등 외신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바트 뮌스터라이펠에 사는 82세 노인...
  • 2016-11-09
  •   11월 4일 오전,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서 진행된 “효심소녀”-최영진학생을 위한 의연금모으기행사 현장. -록원구조선족소학교 사생, 학부모들 2만6천여원 의연 -조선족 네티즌 근 5천원 의연 장춘시의 “식물인”조선족남편을 5년째 극진히 돌보는 한족안해 장방의 사연이 《...
  • 2016-11-07
  • “이 시대의 여론감독의 역할, 기자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것, 그것이 우리 기자들의 의무이며 일하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1일, 연변라지오TV방송국 뉴스쎈터 사무실에서 만...
  • 2016-11-04
  • 척추를 다쳐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던 25세 신부는 결혼식장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난 8월 미국 ABC 뉴스는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끝없는 노력을 통해 결혼식장에서 두 발로 선 신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사는 재키 곤처(Jaquie Goncher)는 지난 2008년 17살 때 친구 집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 2016-11-02
  • 헤이스 "10년 고민…미국에는 죄책감"…"한점도 팔지 말아달라"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외국인으로부터 기증받은 미술품으로는 최대 규모인 미국 텍사스 주(州) 헤이스 부부의 컬렉션은 왜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을까.  미국 일간 뉴욕타...
  • 2016-10-29
  • 지난 10월 12일, 연변대학 로간부처, 연변대학 로과학기술사업자협회, 연변로교수협회 책임자들과 김수철교수의 학우대표들이 김수철교수(92세)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제4기 연변농학원 졸업생일동은 “福如東海 壽比南山”“21세기‘리시진’김수철교수에게 드립니다”는 글문을 새긴...
  • 2016-10-28
  • [연해지역 조선족 인물탐방] 광주2 - 만년이 즐거운 “광주시 조선족로인협회” 개혁개방 이후 동북삼성의 조선족 창업자들이 연해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이들을 동반한 조선족 로인군체도 연해지역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광동성의 경우 6-700여명 조선족 로인들이 거주하면서 심수, 동관, 혜주, 광주 등...
  • 2016-10-21
  • '미각'양꼬치 서용규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나춘봉 서울특파원 = '미각'양꼬치 서용규 사장 한국에서 ‘친구간에 동업과 금전거래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금기사항을 깨고 친구들끼리 서로 도우며 아름다운 성공신화를 써가는 이들이 있다. 흑룡강성 경안현 서광촌에서 함께 자란 &lsq...
  • 2016-10-19
  • 하루밤 부부라도 만리장성 쌓는다 -“식물인”조선족남편에게 정성을 다하는 한족안해 장방의 이야기 오전 11시반이다. 장춘시 조양교부근의 모 보험회사 문어구, 많이 허술해보이지만 그나마 깔끔한 옷차림을 한 40대 초반의 한 녀인이 문을 나서더니 자전거에 씨잉 올라탄다. 씨엉씨엉 페달을 밟아 부리나케 록...
  • 2016-10-18
  •   14일,연변성보장학재단은 연변대학에서 2016년도 연변성보장학금발급식을 가지고 연변대학의 20명 연구생에게 인당 4000원씩,19명의 본과생에게 인당 3000원씩,도합 39명의 연구생,본과생에게 13만 7000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날 장학금을 받아안은 연변대학 약학원 조방일학생은“성보장학금은 우리에게 ...
  • 2016-10-18
  • 칭다오민족사회 백혈병 어린이 구조에 발벗고 나서 한때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승리양(오른쪽)   (흑룡강신문=칭다오) 장학규 특약기자=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은 어느새 말라버리고 냉랭한 금전관계로 변질되고 있는 가운데 칭다오 민족사회 전체가 떨쳐나서서 백혈병에 걸린 조선족...
  • 2016-10-17
  • 조선족 가정에서 출생, 한국에 와서 완전한 이방인 돼 조선족 형제의 꿈을 찾아가는 여행에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래와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찾은 수많은 조선족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길 원하며, 그들을 향한 관심이 표현되기를 또한 소원합니다. 다음은 노숙인 사역을 하며...
  • 2016-10-14
  • [이데일리 e뉴스 김민정 기자] 3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치솟는 집값과 물가 등의 이유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일컫는 신조어다. 요즘은 그 이상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청년층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인구 1000명당 혼인 ...
  • 2016-10-13
  •   본사소식 10월 13일,  83세의 원 목단강군구정위 김강희장군이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에 사랑의 성금 5천원을 또 기부했다.    김강희장군은 리직후 심양시내 여러 중소학교와 대학들에 다니며 혁명전통보고를 해주는것이 중요한 일과로 되여왔다 그런데 얼마전 오랜 지병이 도...
  • 2016-10-13
  • 연길시 수상시장 부근에 있는 카페 “인가비(寅咖啡)”는 얼핏 보면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지만 북적북적한 거리 한켠에서 아담한 디자인을 갖추고 하루종일 그윽한 커피향을 퍼뜨린다. 녀자친...
  • 2016-10-12
  • 자기소개를 하고있는 선남선녀들 10월 5일 길림시에서 해내외 조선족 싱글남녀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상해, 북경, 대련, 장춘, 서울 등 해내외 각지의 조선족 청년남녀 30여명이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행사장을 찾은 최용걸(32세)씨, 세살우 다섯살아래 현숙한 조선족신부감을 찾는것이...
  • 2016-10-08
  • 수십년만에 닦쳐온 이번 홍수는 우리 연변지구에 크나큰 재앙을 가져왔슴니다. 이제 곧 한달만 지나면 수확을 앞눈 양수진 논벌은 하루밤사이에 진흙탕물에 매몰되고 병풍처럼 둘러싸여있던 옥수수밭은 맥없이 쓰러져있습니다. 풍비박산된 집앞에서 령혼없이 서있는 농민들보니 넘넘 가슴아파서 목이 멥니다. 인정이 점점 ...
  • 2016-09-30
  • 심양농업대학교 수리학원 토목공정전업 3학년 김성룡씨의 이야기  아버지를 업고 대학교에 다니는 한 조선족학생이 있다. 그가 바로 심양농업대학교 수리학원 토목공정전업 3학년생 김성룡씨다. 고향이 무순시 청원현 남산성진인 김성룡씨는 소학시절에 부모가 리혼해 줄곧 아버지와 의지해 생활해왔다. 그가 6학년에...
  • 2016-09-29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