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화를 내는 순간 못생겨진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9일 14시41분    조회:170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청명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에 다녀왔다. 이번 청명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잠깐 절만 올리고 급하게 산소를 떠났다. 제사는 불과 10분만에 마치고 나머지는 산 사람들의 술자리다. 저승의 사람들을 위한 제사인지 이승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포의 자리인지 올해따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호텔에서 학교 선배님 부부를 만났는데 이렇게 물어온다.

“부모님 산소에 왔는가봐요? 효자네요...”

과연 내가 그럴가?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가끔 고상한 모자를 쓰고 사심이 가득한 일을 한다.

한가지만은 진심으로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항상 함께 산소에 다녔던 사촌녀동생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작년 청명날 이튿날에 저세상 사람이 됐는데 언제나 허~허~ 하면서 성격 좋은 친구였다. 묘소에서 차린 음식에다 배갈을 함께 기울이던 친구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삼삼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웃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천하절색의 연예인도 캡처사진에서 망가지는걸 보게 된다. 사람마다 그런 순간이 있는거다. 그런데 화내는 얼굴은 순간의 문제가 아니다. 화를 내는 내내 쭉 못생겨진다.

화를 내면 얼굴은 굳어지고 눈은 꼿꼿해지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상상만 해도 못생긴 장면이다.

검으락푸르락이 무슨 상황일가?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나 사회활동에서나 심지어 가정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한번쯤은 경험한다. 당장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길이길이 뛸 때면 진짜 하늘이 두쪽 날 것 같다. 그러나 천둥번개 뒤의 소낙비에는 땅만 진흙탕이고 하늘은 금방 개인다. 결과적으로 화낸 이만 머쓱해지고 얼마 안 지나서 금방 후회한다. 그냥 못생긴 얼굴만 보여줬을 뿐이다.

설득력은 화보다도 웃는 얼굴이 훨씬 효과적이다. 일단 거부감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엄숙한 사람도 한번 또 한번 거듭되는 웃는 얼굴을 만나다 보면 원래대로 그냥 굳어져있기도 힘들다. 어떤 경우에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짓고있는 사람도 만난다. 그러나 그 권위보다 강세인 게 웃음이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 전형적인 례로 비행기 승무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웃음으로 손님을 대하라는 수칙을 철같이 지킨다. 비행기를 드문드문 타는데도 이상한 승객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직업인 승무원들은 별의별 상황을 다 만난다. 다른 비행기는 다 밥을 주던데 이 비행기는 왜 밥이 없냐고 따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비여있는데 공무석에 앉으면 어떻냐며 버티는 손님도 있다. 그래도 승무원들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차근차근 해석해 준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다 받아주는 승무원한테 대한항공의 땅콩회항과 같은 경우를 빼고는 끝까지 시비를 걸 승객은 드물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들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강아지들은 밝은 표정으로 꼬리를 살살 흔들며 친화적인데 간혹 짖어대며 험상궂은 얼굴에 이발을 드러내는 개들도 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개가 사람이 무서워서 일부러 짖는다고 한다. 개나 인간이나 속이 허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건 똑같은가 보다. 누가 어쩌지 않는데 괜히 자기를 무시하는가 해서 언성을 높이며 자존감을 찾는 거다. 물론 주인이 옆에 없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화보다는 약하지만 그 사촌으로 불만이란 정서가 있다. 역시 보기좋은 얼굴표정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먼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해결안을 찾는게 아니고 일단은 부정을 해놓고 해결될 수 없는 구실을 찾는다. 그리고 암울한 면만 들여다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약점을 많이 찾는다. 이렇게 불만이 많고 남의 약점을 캐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는다. 혼자 남은 사람은 웃을 일이 없다.

골프를 치다 보면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때가 있다. 그래서 풀숲을 뒤지며 찾는데 고맙게도 그 전의 치던 사람이 찾지 못하고 포기한 공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내 공은 잃어버렸지만 다른 공으로 미봉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순간에 락심하는 표정들이 있다. 자기 공도 함께 찾았더면 공이 두개였을텐데 하나밖에 못 찾았으니 우울한 거다. 그러면 함께 찾아주던 사람들도 괜히 뭘 잘못한 것 같고 까닭없이 미안해지면서 기분이 가라앉는다.

슈퍼에서 계산대에 줄을 서 기다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들고있던 주머니를 계산대에 던지며 화를 낸다.

“어디 도적질한 물건이라도 들어있나 뒤져봐요.”

그러자 점원아주머니도 언성이 높아지며 만만치 않게 맞선다.

“당연히 검사해야죠!”

그러고는 주머니에 든 물건을 전부 쏟아서 하나하나 검사한다.

“지금 뭐하는거예요? 어디 아픈거 아니예요?”

“이봐요, 누가 아프다는거예요? 말 가려서 하세요.”

결국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넘어갔지만 끝까지 툴툴거리는 할아버지와 입안에서 중얼거리는 점원의 원망은 끊이지 않는다. 다음 계산 차례가 된 고객의 기분도 괜히 언짢아진다.

사실 할아버지는“주머니를 보관함에 두고 왔어야 되는데 미안하다”면 되는 일이고 점원은“미안한데 규정상 주머니 물건은 꺼내서 확인을 해야 된다”면 그만이다. 서로 언성을 높여서 둘은 물론 다른 고객의 시간과 기분에까지 영향줄 필요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렇다치고 이쁘장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참 아쉽다.

긍정적인 사람의 내심에는 항상 선량함과 고마움이 안받침돼 있다. 이 두가지 마음만 가슴속에 새겨두면 얼굴이 자연스럽게 밝아지게 돼 있다.

사람은 화를 내는 순간 지력상수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순간 바보가 된다.

궁금이/중앙인민방송넷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세 언니들은 나보다 12살, 10살, 5살 많아서 나는 누구보다도 언니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랐다. 아쉬운 것은 나이 차이가 커서 한집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이 짧은 편이였고 큰 언니가 학교문을 나서면서부터는 네 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앉기도 쉽지 않았다. 큰 언니는 으로 농촌에 내려가 6년동안이나 힘든 집체호 생활...
  • 2019-07-24
  • 캐나다 조선족 협회에서는 얼마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G로즈 로더팍에서 여름 야유회를 개최하고 조선족 동포사회의 단합과 정보교류및 친목을 도모했다. 이번 행사는 김춘식 회장, 최남 수석 부회장, 최동춘 비서장을 비롯한 협회 운영진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여러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하에 비록 짧은 만...
  • 2019-07-19
  • 첫째날의 기록 ...흥분과 감격속에서 맞이한 고향 프랑카드를 들고 공항에 마중나온 친척 친우들 나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선샤인(햇빛) 스테이트(주)라 불리우는 플로리다주 수부 탈라하시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탈라하시는 시정부와 대학교중심의 중소형 행정도시에 속하며 바다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4...
  • 2019-07-19
  • 손익규,윤송죽 부부가 막내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장면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철 기자=손익규, 윤송죽 부부는 지난 1961년부터 옌타이시에 거주하면서 옌타이조선족사회의 산 증인으로 불리며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옌타이시 중조어업협정 옌타이판공실 통역, 옌타이시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 옌타이...
  • 2019-07-18
  •     - 글 / 고향련 -   2000년 4월 25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중국땅을 떠나서 일본 류학길에 올랐다.   당시 한창 류행됐던 일본류학의 붐에 떠밀려서이기도 하고 4년간 공부했던 회계전업이 나하고 맞지 않은듯 하여 다른 공부가 하고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보다 중요한건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
  • 2019-07-17
  • 90년대 초만 해도 연변에는 가정용전화기가 없는 집이 태반이였다. 그때 나에게는 간절한 바램이 하나 있었다. 집에 전화기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정든 모교이자 사업터인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에서 조선어문 교원으로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결혼한지 2년반밖에 안 되는 남편은 한국 류학길에 올랐다. 중한수교 이듬...
  • 2019-07-16
  •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시골마을을 다시 찾은 박춘금,그녀의 고향건설 다시 시작된다 연길에서 찾아온 배구애호가들이 배구를 즐기고 있다. 지난세기 80년대부터 고향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고향 떠나 룡정으로, 연길로 가기 시작하더니 점차 더 멀리 청도로, 북경으로, 상해로, 광주로 떠났고...
  • 2019-07-11
  • [일본글짓기응모]    나의 행복 - 글 / 정미화 -       "엄마,우리 온천 가요."   "온천?어느 온천?"   "군마쪽으로 가려는데...어디로 가겠어요?"   "글쎄, 구사쯔는 가보았는데, 참 좋았어..."   "이가호와 구사쯔, 어느쪽으로 갈가?"   일년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딸이 ...
  • 2019-06-24
  • 얼마전 한 로인과 그의 가족들이 통화현조선족학교를 찾아 목숨을 구해준 두 학생에게 감사기를 전했다. 5월 29일 점심, 통화현조선족학교 9학년 학생 권예령, 안미현 두 학생은 통화현 산수화성 아빠트 서쪽 교통강부근에서 60세좌우되는 녀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발견하였다. 불시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어떤 사...
  • 2019-06-24
  • 57년전에 꼬마친구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해방군 아저씨(뒤줄 좌가 김일룡, 앞줄 우가 박정숙, 중간이 최송림) 57년 후 만난 해방군 아저씨와 꼬마친구(좌로부터 배영애, 김일룡, 최송림, 박정숙) 지금으로부터 57년전인 1962년, 길림성 무송현에서 장춘에 와 병 치료를 받고 있던 해방군 전사가 있었다. 그는 조...
  • 2019-06-12
  •     요즘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곧잘 듣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려행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소리높이 대답한다.        몇달전에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5박6일의 일정으로 두바이려행을 다녀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을...
  • 2019-06-03
  • 저자는 10년의 수련 끝에 정상을 앞둔 36살 신경외과 의사다. 사회에서 인정 받고, 일류대학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다. 저자가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그는 페암말기 선고를 받는다. 그는 대학 시절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고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더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의사가 되어서 문학...
  • 2019-05-31
  • '어린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거에요' 6.1절을 맞으며 연길 청아성형외과(원장 안향화)에서는 21일, 20여명의 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성금 1만원을 연변TV "사랑으로가는 길(219회)"프로를 통해 빈곤가정의 어린이에게 전했다.   안향화 원장은 "우리 청아성형외과는 외모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 2019-05-24
  • 오늘은 나도 자랑많은 추억렬차의 기관사가 되련다.추억의 렬차를 몰고 서서히 현재를 떠나 고동을 울리며 칙칙폭폭 과거로 추억려행을 떠나련다.추억의 벌판을 지나고 추억의 고개를 넘고 추억의 굽이를 돌아 녀인들의 애환이 서린 아득히 먼 70년대 생산대의 벼모 꽂는 현장으로 가련다. 안도현 석문공사 무학대대에서 태...
  • 2019-05-23
  •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 배영애의 차세대 교육사랑 2015년 북경에서 열린《중국홰불》잡지사 창간 20주년 대회에서 발언한 배영애, 회의 기간 그는 중국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고수련의 접견을 받았다. “아무리 죄를 졌다 해도 우리들의 차세대가 아닙니까?” 이는 길림성미성년범관리교...
  • 2019-05-22
  • 김선생가사도우미쎈터 대표 김경자의 퇴직 후의 보람찬 인생이야기 김경자 프로필: 1959년 반석현 출생 반석사범학교 영어전업 전공 반석3중 영어교원, 담임교원 력임 길림조선족중학교 영어교원 2014년 길림조선족중학교에서 퇴직 ...
  • 2019-05-08
  • 최근 인터넷에서 한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두 다리가 없는 예쁜 소녀이다. 그녀는 물구나무서기, 팔굽혀펴기부터 스케이트보드, 농구, 배드민턴, 수영까지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 소녀의 이름은 웨이메이뉘(渭梅女)이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그녀의 미소에는 자신감...
  • 2019-05-03
  •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내가 18살 되던 해에 음력설을 닷새 앞두고 아버지의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한가지 감성적인 처사로 하여 받은 아버님의 첫 꾸지람이다. 하지만 그 꾸지람은 해마다 설날이 돌아올 때면 나의 머리 속에 기분좋게 떠오른다. 한것은 그 꾸지람 뒤에 아버지의 너그러운 처사가 이어져 나를 ...
  • 2019-04-22
  • 고요하던 집안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은 받는 사람이 없자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다. 복녀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느라고 처음 울린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무섭게 허둥거리며 전화기가 놓여있는 탁상쪽으로 뛰여갔다. 말이 뛰여갔지 걷는 것과 진배없었다. 복녀는 한달째 아침에 ...
  • 2019-04-19
  • 청명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에 다녀왔다. 이번 청명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잠깐 절만 올리고 급하게 산소를 떠났다. 제사는 불과 10분만에 마치고 나머지는 산 사람들의 술자리다. 저승의 사람들을 위한 제사인지 이승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포의 자리인지 올해따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호텔에서 학교 선배님 부부를 만...
  • 2019-04-09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